“3화에서 카네반과의 대화를 할 때, 캐릭터 디자인의 스포티한 느낌과 코믹한 표정에 끌려서, 저도 과감하게 코믹하게 연기했습니다만, 그때 "얘는 싫은 애가 아니니까"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 세계에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아이니까, 싫은 애가 아니다, 닳은 것이 아니다, 그 조절을 신경 써달라’는 지시였는데, 그걸 듣고 저도 다시금 마츄가 가장 축복받은 아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기동전사 건담: 지쿠악스>의 주인공인 마츄(아마테 유즈리하)는 사이드 6에 거주 중인, 중상류층 출신의 소녀다. 풍요로운 고교 생활을 즐기던 마츄는 콜로니의 환경을 ‘가짜’라고 느끼며 염증을 느낀다. 그러던 찰나, 난민 출신인 소녀 냐안과 만나 건담에 탑승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지쿠악스>다. 이후 냐안을 만나 출전하게 된 클랜배틀에서 슈우지를 만나게 되고, 세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이후 냐안이 뉴타입으로의 감응능력을 발휘하자 마츄는 냐안이 자신에게서 재능에 이어 슈우지마저 빼앗아 가려 한다고 말한다. 마츄의 성우 쿠로사와 토모요는 이를 두고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착각하는 아이의 전형이라고 말한다. 마츄는 우주 콜로니에서 수영을 취미로 하는 등, 상대적으로 ‘많이’ 가진 아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없는 것을 냐안과 슈우지에게서 발견하고 이를 그들만의 정체성으로 이해한다. ‘사춘기’적인 특성이란 그러한 정체성이 살아온 과정과 서사에서 구축되는 것임에도 이를 단순히 흉내내거나 따라할 수 있다고 믿는 반동심리다.
마츄는 냐안과 슈우지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냐안이 슈우지를 좋아하는 것에 이어 건담도 탈 수 있게 되자 자신만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이는 <지쿠악스>라는 건담 프렌차이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 가령 <지쿠악스>는 <퍼스트 건담>의 일년전쟁을 모티브 삼는다. <지쿠악스>는 샤아가 아무로를 대신해 건담에 탑승한 세계선을 보여주며 이후의 전개를 뒤집은 ‘if’를 보여준다. 단편적으로 보면 <퍼스트 건담>도 이미 판타지이므로 이를 뒤집는다는 설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허구에 대한 허구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퍼스트 건담>은 1979년에 등장해 거진 50여 년이 흐른 상황에서 이미 원본의 지위를 형성, 허구에 대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수 있었다. 건담의 팬들에게 우주세기는 ‘진짜’ 현실이고 따라서 <지쿠악스>는 그런 현실에 대한 만약이다. <지쿠악스>의 마츄는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자신이 사는 세계를 의심한다. 우주에서 태어난 마츄에게 지구는 ‘진짜’ 하늘이 있는 동경의 대상이고 그래서 마츄는 지구로 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앞서 ‘사춘기’적인 특성이란 정체성에 대한 모방을 담보로 한 반동심리라고 말했었다. 우주에서 태어난 마츄는 스페이스노이드로서 우주인으로 살아왔는데 왜 지구를 동경하게 된 것일까? 중요한 건 마츄가 지구를 동경했을 뿐 그걸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마츄는 우주 콜로니의 하늘을 허구로 여기며 지구의 하늘에 ‘리얼함’을 부여했지만, 이미 스페이스노이드에게 우주 콜로니란 ‘진짜’를 대체한 ‘가짜’였다. 마츄는 지구인이지만 정작 지구를 가본 적이 없었다. 마치 원본에서 태어난 허구가 사실은 원본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지쿠악스>도 <퍼스트 건담>을 베이스로 하지만 사실 정사가 아니니까 비우주세기 작품이다. 그럼에도 <지쿠악스>는 분명 한 작품 안에 우주세기의 초창기 분기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이들 세계가 서로 같은 우주에 속해있는 것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본래 평행우주란 외벽을 두고 서로 분리되어야 하는데 <지쿠악스>는 자신을 있게 한 본래 역사를 앞서 짚어두기에 단순한 원본과 허구의 관계에만 들어서지 않는다.
우주 콜로니 개척민의 삶은 벽 하나로 ‘바깥’이 나뉘어있고 동시에 중심이 상실돼있다. 지구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바닥에 떨어지지만 우주에서는 그저 부유하는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마츄가 자신의 삶을 허구로 느꼈던 건 중심이 없고 내부가 없는 두 개의 허구에 속했었기 때문이다. 이 삶은 허구에 대한 허구가 아니라 허구와 허구의 삶, 둘 중 무엇도 뒤집을 수 없는 상황을 가정했다. 마츄는 롤모델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자신을 바로잡아줄 수 없는 세계, 중력이 없는 이 우주에서는 앞서 가는 누군가만을 따라갈 수 있다. 앞선 사람을 따라가는 삶이란 눈길을 보내는 능동과 생각을 하지 않는 무지, 둘 중 어디에 속할까. <지쿠악스>는 이 둘 사이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지구와 우주 모두 인간의 고향이 될 수 없고 단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일만이 가능하다. 마츄는 친구 간의 관계도, 자신이 사는 이 세계도 단지 극복의 대상이었다. 동시에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발을 내딛고 있을 발판이 필요했다. 비록 그게 가짜일지라도, 자신을 생각에 빠트린다면 적어도 순간만큼은 자신일 수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마츄의 성우 쿠로사와 토모요의 해석이다. 그는 마츄를 두고서 “주변에 친구가 잔뜩 있더라도 속으로는 친구로 여기지 않으며 외로워하는 타입”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나 관계를 ‘진짜’로 여기지 않으며 이를 허구로 여긴다. 그런 마츄가 도리어 냐안과 슈우지라는 친구 관계에 유달리 애정을 쏟던 건 그러한 ‘허구’가 ‘진짜’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테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이라면 모두 ‘진짜’ 같고, 이들 친구의 모습은 마치 지구처럼 자신을 붙잡아두는 세계로 여겨졌을 것이다. 냐안과 슈우지와의 갈등은 어쩌면 한 세계의 붕괴에 비견될 만한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렇게 세계가 붕괴해 바깥이 모습을 드러내더라도 정작 그곳에는 별 다른 특별한 게 없음을 알아차릴 때다. 정작 자유를 찾아 떠났던 장소에 아무런 것도 놓여있지 않을 때 우리는 다시 현실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이 도피는 많은 경우 실패에 그치고야 만다. 자신이 도피해간 현실이 당장의 현실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깥으로 향하지 않는 이상 어디까지나 ‘나’는 대체될 수 없다.
평행우주에서는 모든 일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 존재한다. 이 사건이 대체될 수 없기에 원본 우주는 소실될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원본은 바뀌거나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모든 일에 대한 ‘바깥’으로서 자리한다. 마츄가 사람들 사이에서 붕 뜬 기분을 느꼈던 건, 도리어 마츄야말로 온 세상의 ‘바깥’이었기 때문이다. 마츄는 다른 이들에게 정체성을 의탁하려 했던 게 아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점이 도리어 마츄에게서 현실감을 앗아갔을 뿐이다. 가령 무엇으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건 이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거나 평가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정의되지 않음(undefined)은 존재하지 않음(null)과 명백하게 구분되어야만 한다. 우주 콜로니와 마츄의 공통점은 딱히 중력이 작용하는 것에 정해진 방향이 없다는 점이다. 마츄는 ‘바깥’이 아니라 단순히 바라보거나 평가할 구도가 마련되지 않았던 사춘기 소녀다. 즉 마츄는 싫은 아이가 아니다. 마츄는 어느 방향에 안착할 수 없고, 어느 무엇으로 정의할 수 없는 스페이스노이드였다. 그런 점에서 <지쿠악스>는 주인공을 닮은 세계다.
원본은 단일 개체로의 현실이 아니라 마치 허구와 허구 사이를 허무는 힘처럼 변형됐다. 이따금 원본에 대한 재해석이 시도되곤 하는데, 그럼에도 원본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한다. <지쿠악스>는 원본에 해당하는 <퍼스트 건담>의 묘한 변형 판본과 그에 대한 분기 세계로 서사를 작업한다. 샤아가 죽은 세계을 살아가던 라라아 슨이 마츄의 세계로 넘어와 ‘정의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로 인해 제크노바라는 이질적인 현상이 발생하게 되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질량을 보내거나 저쪽에서 이쪽으로 질량이 넘어오게 된다. 이 현상의 핵심은 '저곳'에서 존재하지 않는 건 '이곳'에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따금 같은 디자인의 비슷한 개체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지칭되고는 하지만 이 또한 달라붙은 이름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이렇게 특정한 방향으로 바라보아지지 않는 점이 마츄의 캐릭터성에도 고스란히 반영돼있다. 지구에 가고 싶어하던 마츄는 자신이 찾던 건 실존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정체성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구인으로서 지구에 가면 무언가 안정감이 있을 것 같았지만, 정의되지 않는 건 우주와 동일했다.
허구에 대한 허구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지구를 허구로 가정하기란 어렵다. 우주시대의 사람들에게 지구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원본이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상실돼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처지는 원본 없는 허구로서 아무것도 바로잡을 수 없는 무중력의 상태였다. 그리고 우주세기의 뉴타입론은 지온 줌 다이쿤에 의해 사상으로서 정립됐다고 알려졌다. 스페이스노이드는 자신들의 삶이 진짜 세계에 속해있지 않다고 믿었기에 지온의 사상에 빠졌을 것이다. 여기서 지온이 말하는 뉴타입은 정의되지 않는 인간이다. 건담에서 처음 나온 이 용어는 ‘무언가 새로운 세대’ 즉 ‘이전과 정체성적으로 뚜렷한 구분점을 갖는 존재’를 일컫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를 겹쳐서 바라봤다. 정의되지 않는 인간들에 대한 시선은, 통제불능하기에 다른 이를 죽이는 위험천만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공감하는 과잉공급의 시선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마츄는 아무에게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감하기에 ‘그리 싫어할 수만은 없는 녀석’이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