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신촌에 있는 것도 아닌데 신촌을 매일 들락거렸다. 2,000년대 신촌 그리고 홍대는 최고의 번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압구정을 누비는 오렌지족이 아니라면 적당한 대학생은 다들 신촌을 드나들었다. 나 역시 이미 교복을 벗기 전부터 신촌에 있는 락카페(실제로 락음악을 틀진 않았던 거 같은데 왜 그렇게 불렀는지)도 기웃거린 터였다.
그 신촌 작은 언덕에 교회가 하나 있고 길 건너편에 백스테이지라는 곳이 있었다. 길 가며 발견하긴 결코 수월치 않은 곳. 락음악 안나오는 락카페만 가던 시절엔 그 곳을 몰랐다. 학교 선배 아님 동기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입장하였을 텐데 처음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과연 이 아래 뭐가 있긴 할까 싶은 계단을 밟아 지하로 향하면 저 멀리서 드럼의 소리가 쿵쿵 울리기 시작하고, 이내 내장까지 진동이 전해져 장기 하나하나가 떨리는 느낌이다.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지하실 특유의 냄새와 습기가 폐 속 깊이 파고 들었다. 문을 열면 그야말로 조도라는 것이 없는 가운데 화면만 눈이 따가울 정도로 밝은 바람에, 순간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영화 큐브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처음으로 바깥 세상의 빛을 조우한 느낌이랄까.
좌석과 테이블을 구분하기 어려운 어두침침한 실내를 더듬어 아무 곳에나 착석을 하면, 아르바이트 생이 와 역시 지하의 습기를 축축하게 머금은 메뉴판을 주었고, 그럼 미처 메뉴판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당시 대학생들의 잇(it) 아이템이던 카프리를 시키곤 했다.
그 곳은 90년대 말 한창 달아오른 Video star를 영접하는 곳이었다. 컨텐츠가 귀한 시절, 해외 뮤지션에 열광하고 싶지만 열광할 방법을 모르던 이들이 밤에도 밤같고 낮에도 밤같은 그 곳에서 내내 시간을 보냈다. 라이브에이드에, 우드스탁에 가지 못한 이들이 백스테이지에 모여 앉았다.
당시 돌려따기로 힙한 카프리가 4천원 정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 기억인데, 돈 없는 락커들은 카프리 한 병 시켜놓고 낮부터 밤까지 그 곳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90년대 Video Star들의 뮤직비디오가 끝없이 쿵쾅거렸고, 카프리병은 몇 개 쌓이지 않았지만 담배 재털이만큼은 테이블마다 높이 쌓여갔다.
지금도 그렇고 (나는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 때 또한 바깥 세상이 감당할 수 없도록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느낄 때였다. 2,000년, 대부분의 인류가 만나보지 못했을 천년 단위의 해 갈이. 덕분에 Y2K가 오면 은행 시스템이 모두 다운되어 예금을 잃을 것이라고 난리가 났고 (나는 잃을 예금이 없어 걱정하지 않았다), PC의 시계를 바꿔두지 않으면 하드 디스크의 메모장이나 너구리 게임 지뢰찾기 같은 것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들 부산이었다. (나는 컴맹이라 뾰족한 수가 없어 그냥 내버려 뒀다.)
당연히 종말이 온다는 푯말을 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인 1,999년 말이었다. 하지만 윈도우도 은행도 다운되지 않았고, 종말도 오지 않은 덕에 우리는 겨울이 녹아 봄이 되듯 2,000년을 맞이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제가 오늘이 된 것 뿐인데, 사람들은 종말을 피한 게 기뻤는지 새 시대가 열렸다고 TV에서 축포를 터뜨리며 연신 악수를 했고 남산이나 한강, 올림픽도로 같은 걸 연달아 비추며 서울의 미래가 얼마나 찬란한지를 노래했다. 국민소득이 두 배가 되고 세 배가 될 듯이 다들 환호하였고, 급기야 Y2K라는 부담스러운 이름의 밴드도 등장했다.
그럴수록 나는,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느낌에 중2병이 못 견디게 괴롭힐 즈음, 백스테이지는 숨어 있기 좋은 다락방이었다. 그 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관자놀이가 멍해지도록 음악을 틀어대고 들어댔고, 작열하는 20대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더 격한 곡들을 메모지에 적어 DJ에게 건넸다. 나는 그 곳에서 Red hot chili peppers의 Other side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았고, Skidrow의 I remember you도 보았고, G&R의 Welcome to the jungle 라이브도 처음 보았다(그 많은 비디오 가운데 참으로 희안하였던 느낌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니.. 엑슬로즈에게 특별한 박수를..). Radiohead의 No surprise 뮤직비디오에서 톰 요크가 물에 잠겨 처연한 표정을 짓는 것도, 마릴린 맨슨도 람슈타인의 두하스트도 처음 보았다. 피가 절절 흐르는 블랙 메탈 뮤직비디오들을 볼 때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지만 호기심이 느껴져 자리를 뜨지 못했고, 마지막엔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끼기도 했다.
때로 어떤 비디오의 앞뒤엔 MTV의 로고가 가득 펼쳐졌다. 백스테이지에 앞서, 팡세 같은 커피숍을 가면 가끔 MTV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곤 했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볼 수 없는 과감하고 선정적인 장면이 난무하는 덕에 그 이후에는 왠지 MTV로고만 봐도 엄빠한테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어쨌든 국내에선 볼 수 없는 해외 뮤직비디오, 판매금지된 음악들이 백스테이지의 영사기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렇게 바지런히 백스테이지를 다니던 어느 날, 백스테이지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마 그 때쯤 모던락을 틀던 몇 걸음 지척의 백스테이지2는 이미 문을 닫았던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백스테이지에 간 날, 나는 내가 카프리를 매번 한 병만 시키고서 너무 오래 앉아 있어 백스테이지가 문을 닫는 줄 알고 미안함과 죄책감이 느껴져 거금을 들여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추가로 시키고 (그렇지만 평소 때와 똑같이) 오래도록 그 곳에 머물렀다. 당시 백스테이지는 화장실 문 앞에 라디오헤드 런던 공연 포스터라든가 당시로 굉장히 진귀해 보이는 포스터들을 붙여 두었는데, 이 포스터 한 장만 주면 안돼요 라고 말해보고 싶었지만 역시 내가 백스테이지를 문을 닫게 한 대역죄인이라는 생각에 포스터를 만지작 거리기만 했다.
(방음이 되기에 유독 두껍고 무거운) 백스테이지의 문을 마지막으로 닫고 나온 날.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카프리 뚜껑 닫는 소리가 아니라 아날로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의 시절에 관뚜껑을 닫는 소리인 동시에, 디지털 콘텐츠의 시대의 포문을 알리는 총성이었다. 아직 유튜브를 보진 않았지만 다음카페가 발빠르게 자리 잡고 있었고 해외 뮤지션들의 팬카페가 속속 생겨났다. 느린 속도였지만 해외의 뮤직비디오나 공연실황을 퍼나르기 시작했고 몇 분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스트리밍 바가 죽었다 살았다 하다가 끝끝내 기적처럼 해외의 뮤직비디오를 조그마한 리얼 플레이어에 담아내곤 했다. 리얼 플레이어의 뒤를 이어 윈앰프가 나왔고 소리바다에서 온갖 노래를 받아 윈앰프 리스트를 만들어 댔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사진으로 윈앰프 스킨을 꾸미는 건 덤이었다. 스마트폰은 없었지만 점차 PC방에서도 집에서도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게 되어가고 있었다.
Radio star를 비주얼라이즈 하였던 Video star들이 이제는 보편적으로 본격적으로 "공급"되고 있었다. 음향이 영상으로 바뀌었다면, 이젠 그 영상의 공급 방식이 바뀐 것이다. 나만 아는 밴드의 나만 아는 뮤직비디오를 나만 아는 사람과 보는 은밀한 경험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이제 그 모든 것이 누구나 어드레스만 알면 들여다 볼 수 있는 인터넷BBS라는 곳에서 공적 경험화되고 있었다. 어떤 뮤직비디오가 몇 번 시청되는지 카운트되었고, 인기 있는 컨텐츠는 추천 순위를 점하며 snowball처럼 인기를 더해갔다.
곧 유튜브라는 거대한 플랫폼이 그 일을 통합했다. 덕분에 Video star를 만끽하는 경험이 차고 넘친 시청자들은 새로운 You를 갈구하기 시작한다. 개인 방송, 유튜버가 각광받기 시작했고 자신의 일상을 하루종일 보여주는 사생활중계 방송도 떴다. 이렇게 우리는 컨텐츠의 발전이 미디어에 종속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미 대선에서 케네디와 닉슨이 하필 텔레비전이 보급되던 시점인 60년대에 선거하여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를 반추해 본다면, 마돈나와 마이클잭슨이 간 자리에 온갖 개인들이 자리잡는 것도 참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다. - 이 부분에 관해서는 방탄소년단을 주제로 다음에 다른 글을 써 보려 한다. - Radio star는 Video star에게, Video star는 Youtube star에게 바톤을 이어준다. 그렇게 영웅들의 시대가 가고 You의 시대가 온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Video star의 팬이었던 You가, 글의 포문을 연다. 90년대의 낭만과 로망이 가득했던 백스테이지의 마지막을 운 좋게 함께 했던 기억을 가지고.
백스테이지의 주소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요가원으로 변해버린 그 곳의 주소를 찍어 보니 신촌로 46이라는 도로명 주소가 나온다. 아마 백스테이지는 당시 backstage.co.kr 같은 url 하나 갖지 못한 채 문을 닫았었겠지. 하지만 돌이켜 보면 KBS와 MBC, SBS만 있던 90년대, 백스테이지는 동교동에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시공을 연결해 준 채널이자 미디어였다.
백스테이지에서 울려 퍼진 노래들은 얼마나 스트리밍 되었는지 측정되지 않았다. 물론 앨범이 팔린 수라든가 빌보드 차트 넘버, 혹은 공연 시 소녀들의 환호 영상 같은 걸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 사람들의 마음 속을 얼마나 많이 점유하였는지 알 방법이 없다. 마케팅에서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얼마나 점유했는지에 관해 SOV, Share of Voice라는 척도를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SOH, Share of hearing 정도의 표현을 쓰면 적절할까. 어쨌든 로맨틱하게 말해, 디지털 레코드를 기록할 수 없었던 Video star들의 인기란 그들을 향유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 정성적인 기네스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내 마음 속에 기네스를 남긴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