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way the wind blows..

지금도 어딘가를 유랑하고 있을 Bohemian에게.

by 수크림


직업 상, 또 여행을 좋아해서 비행기를 자주 타지만 아무리 자주 타도 이륙 직전에는 살짝 긴장이 된다. 이상하게 오늘 따라 이 비행기는 사고가 날 것 같고, 비행 중 사고가 나면 탈출하는 상상,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죽는 억울함까지 줄줄이 연상된다. 물론 대체로(가 아니라 전혀) 아무 일도 없었기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공포심은 비행기 안이 단절된 세계라는 데서 온다. 비행기 안은 기본적으로 외부와의 소통이 자유롭지 않고 소속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오롯한 '나만의' 세상이다. 비행기 안은 내가 있던 곳과, 도착할 곳과 다른 시간의 세상이기도 하다. 유럽에 있다가 돌아와서 그 곳에 남아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면, 나는 내일이 되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어제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시간의 정주행을 거스르는 Rocket ship. 중력 제한으로부터의 탈출. 땅에서 발이 떨어져 있어서, 땅에 있는 사람들과 시간이 다르게 흘러서, 그들과 연락이 안되어서... 비행기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우리 모두는 어디론가부터 와서, 어딘가로 가고 있는, 유랑객이다.


그런데 만약 한 평생을 이런 유랑객으로 산다면 어떨까, 한 없이 자유롭고, 외로운,

Bohemian.


몇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Queen'이다. 해서 일찌감치 해외여행 가고 싶은 나라로 영국을 정했다. 물론, 런던이었다. Beatles도 좋았고 Radiohead도 좋았고 거기에 Oasis, Travis까지... Britpop의 전성기다 보니 영국이 드림랜드긴 했지만, Queen이 없다면 영국은 의미가 없었다.


이십 대, 그토록 바라던 런던에 발을 딛었다. 다음 날 눈을 떠 집 밖에 나가자마자 'Beatles shop'이 김밥천국처럼 좁은 간격으로 있었다. Beatles의 Goods를 사는 일이, 교통카드 사는 것보다 쉬웠다.


그런데 Queen은 어디에도 없었다. 피카디리에 Queen의 뮤지컬을 공연 중인 극장이 있어 딱 한 번 관람한 외엔(그나마도 매우 엉성한 뮤지컬이었다), 런던 어디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었다. 'Beatles tour' 같은 'Queen tour'는 당연히 찾을 수 없었고, Queen museum이라든가 기념품 샵도 없었다. 열흘 가까이 런던 곳곳을 여행했지만 클럽이 즐비한 거리를 걸으면서도, Queen tribute band가 공연을 한다는 포스터 정도를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헷갈릴 정도다. (런던에 클럽이 흔한 골목을 가면, 온갖 밴드의 트리뷰트가 성행하고, 잘 모르겠는 밴드의 트리뷰트의 트리뷰트 밴드까지도 존재한다.)


Yesterday가 Beatles의 노래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Beatles를 모르진 않는다. 다만 노래와 밴드를 연결짓지 못한 것이다. Beatles는 그 자체로 워낙 유명한 브랜드인 덕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Yesterday의 멜로디보다도 Beatles라는 밴드명을 먼저 알게 된다. 반면 Queen의 곡들은 마치 'Unknown Musician'의 노래처럼, 곡 그 자체로 유명한 경우가 많다. 흡인력 강한 멜로디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CF와 스포츠 중계의 메인 테마를 차지하고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강렬한 클라이막스의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 Too much love will kill you...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덜 유명했던 'Under pressure'가 현대카드 CF에서 흘러 나왔을 때, 나는 한편으로 슬프기까지 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나는 저 딩딩딩디리딩딩'이라는 곡을 안다고 하겠지만, 여전히 Queen은 모른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밴드로서의 Queen의 브랜드 파워는 평가절하 될 대로 되어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영국은 그들을 자랑스러워하며 박물관이라든가 기념품샵을 만들어주지 않았고, 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방송 역시 Beatles에 비하면 한없이 빈약하다. 동성애자, 마약, 파키...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그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럽지 않았을 여왕. 때문에 음악사에 길이 남을 천재 퍼포머이자, 보컬이자, 작곡가, 작사가인 프레디 머큐리가 남긴 수많은 곡들은 그의 이름이 주는 후광 없이 저 홀로 세계를 유랑하였다. Beatles가 여왕의 훈장을 받을 동안, 또 다른 여왕은 옐로 저널리즘의 먹이가 되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시달렸다. 프레디 머큐리와 몽쉐라 카바예가 불렀던 '바르셀로나'는 당시 끝끝내 올림픽 주제가로 지정되지 못하였고, 프레디 머큐리는 죽어 홀로그램이 되어서야 런던 올림픽을 울릴 수 있었다.


얼마 전, 제대로 집계가 되지 않아 그렇지, Queen의 앨범 판매량이 세계 3위일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그럼 그렇지, Queen이 곱지 못한 평가를 받는 동안에도 Unknown musician의 곡들은 강렬한 생명력 그 자체로 홀연히 살아남아 온 것이다.


이쯤에서 수 십 년 전 락동아리 친구들과 신촌 Police에 갔던 일이 떠오른다. 드림 합주실 뒤 쪽에 있는 그 곳 역시 70~80년대 락음악을 쾅쾅 틀어대는 곳이었다. 출입문 맞은 편 커다란 스크린에 Bohemian Rhapsody 뮤직비디오가 나와, 친구들과 큰 소리로 따라 불렀더니, 옆 테이블의 아저씨들이 젊은 친구들이 Queen도 알고 기특하다며 하면서 술값을 모두 내주었다. (해서 그 다음부터 라이브 클럽에서 Queen의 노래가 나올때마다 어깨동무를 하고 따라 불렀지만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진 않았다. -_-;)


지난 해에는 Queen의 Live aid 공연을 다룬 영화, 'Bohemian Rhapsody'가 개봉하여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Queen의 set list가 훌륭한 덕에 국경을 넘나든 흥행이 가능했다는 평론을 보았는데, 천만에. Queen의 set list는 십 년 전에도 훌륭했고, 이 십 년 전에도 훌륭했고, 그 전에도 국경을 넘나든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 십 년 전에는 동성애자 밴드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 덕에 프레디 머큐리는 없이 곡만 살아 남아 있다가, 이제서야 그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드디어 동성애자가 주인공인 것보다, 음악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온건가.


여튼 영화의 흥행 덕에, 지금까지 Police가 있었다면 이제 그 곳을 찾은 20대 친구들은 죄다 Bohemian Rhapsody를 따라부를 수 있겠지 싶다. 웸등포(웸블리 영등포, Bohemian Rhapsody를 여러 차례 특별 상영해,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 곳, 영화의 마니아가 된 팬들이 이 곳에서 영화를 수 차례 재관람하며,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서서 영화를 즐기고 곡을 따라 불렀다고 한다)에서 단련된 팬들이라면 네 명이서 아카펠라 파트 분담이 가능할지도... -_-;


그래, 분명히 좋아졌다. 오늘 쯔음 런던에 가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엄격한 영국 왕실도 마음을 바꿔먹고, Queen의 업적을 다시 기린다든가 Queen 뮤직 페스티벌 같은 걸 준비하고 있을까? 글쎄. 하지만 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더 이상 런던에서 Queen과 프레디 머큐리의 흔적을 찾지 않는다. 런던이 아니라 잔지바르, 몽트뢰,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프레디 머큐리의 흔적을 찾지 않을 것이다. 그 어느 곳도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행기 안이, 프레디 머큐리를 회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 것 같다.


가장 최근 탄 런던발 인천행 비행기에서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상영하고 있었다. 'I'm rocket ship', 지금도 어딘가를 유랑하고 있을 그의 영혼이, 일생을 괴롭혔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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