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하고 싶었던 일
마음속에 '죽기 전 하고 싶은 일 10가지' 목록쯤은 가지고 살아가는 게 현대인의 미덕인 줄 알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어도 현대인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시간도, 노력도, 돈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깐.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다 할 수는 없는 게 세상 이치라 여기며 할 수 없는 이유를 백만 개 만들어, 마음속에만 담아 두었던 To do list가 참 많았었다.
그러다 올해 초 코로나 19가 세계를 뒤흔들면서 이런 마음에도 균열이 찾아왔다. '하고 싶은 일들을 이렇게 단지 마음속에만 담아 두다가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무엇을 해야 죽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래,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바로 해보자'라는 결론에 이르자, 가장 먼저 장롱면허를 탈출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나는 그 유명한 이명박 정부 때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다. 어느 정도로 유명하냐면 직장 상사들에게 이명박 정부 때 운전면허를 발급받았다고 하면 그 누구도 내 차에 타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장롱면허라 운전대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말에 발끈하며 "저 운전면허 3일 만에 땄어요"라고 하면 바로 "그래서 못 탄다니깐"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 이명박 정부 때 운전면허 간소화로 인해 학과 시험은 문제은행식으로 바뀌었고, 11가지 기능시험은 2가지로 대폭 줄어드는 등 누구나 쉽게 운전면허를 딸 수 있던 시기였다. 고3 수능이 끝나자마자 동네에 뽀빠이 캐릭터가 그려진 모 운전면허 학원에서 이틀 하고도 반나절만에 운전면허를 딴 나 자신이 참 뿌듯했었다.
얼마 뒤 그 뿌듯함은 운전면허학원에서 배운 기초적인 운전 지식과 함께 먼지처럼 사라졌고 거진 8년째 운전대를 잡지 못하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간단했다. 운전면허를 너무 쉽게 딴 나머지 도로에서 어떤 행복한 가정을 사고라는 이름으로 무너뜨릴까 봐 걱정하며 스스로 절운(운전을 금했다는 이야기다)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운전면허 시험 간소화에 대한 내용은 아래 기사 참조)
https://www.nocutnews.co.kr/news/4333409
절대 운전을 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했건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꼭 운전을 해보고 싶었다. 코로나 19로 여행을 가지 못해 생긴 답답함이 목 끝까지 차오를 무렵,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국내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운전을 능숙하게 해내는 친구들을 보며 면허가 있어도 운전을 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이었다.
정. 말. 부끄러웠다. 나보다 늦게 운전면허를 취득했지만 바로 운전을 한 덕택에 친구들은 어느새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었고 내게 자유로운 삶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느새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국 갑자기 죽어도 후회하지 않고자 운전하기로 결정했다.
차가 없다 보니 자차로는 운전연습을 할 수가 없어 고민하던 터에 친구에게 방문 운전연수를 추천받았다. 도로주행 강사님이 차를 끌고 우리 집 앞으로 오면 마음의 준비만 한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업체를 통해 강사님을 소개받아 예약했고 드디어 주말에 꽉 막힌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운전연습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시간에 2만 8천 원. 10시간 코스로 28만 원만 있으면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첫날 3시간 코스가 끝났을 때 이 모든 것은 큰 오산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중간에 그만두는 것은 정말 하기 싫었지만, 방문 운전연수의 퀄리티가 너무 낮아 수업을 모두 마쳐도 장롱면허 신세를 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코스를 중단해버렸다.
가장 크게 실망한 것은 강사님의 수업 태도였다. 먼저 기본기를 가르쳐주지도 않은 채 무작정 자유로 코스에서 운전연습을 시켰고 나중에 아버지, 지인들로부터 이 같은 코스가 얼마나 운전연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복잡한 서울 코스를 연습해야지, 차가 없고 직진 코스인 자유로 코스는 운전강사들 사이에서도 '드라이브'코스로 불린다고 한다.)
게다가 강사님이 수업 중간에 계속 휴대폰으로 다른 수강생들과 수업 약속을 잡거나 연락을 취하는 탓에 나는 운전하는 내내 '이 사람이 내가 위험에 처해도 브레이크 봉을 잡아줄까'라며 두려움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죄송하지만, 휴대폰 좀 그만 보시면 안 될까요? 제가 너무 불안해서요"라는 내 조심스러운 한마디에 "멈출 때만 보는데요? 사고 나면 전적으로 수강생이 집중하지 않거나 신호를 제대로 못 봐서 그런 거지 제 잘못이 아니에요"라고 하는 강사님의 말을 들으며 아 여기서 그만둬야겠다, 더 이상 했다간 사고라도 날 수 있게 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수업은 종료되었다. 3시간 동안 운전연수를 받았지만 중간에 10분밖에 쉬지 않았으므로 나머지 쉬는 시간 20분 포함 여차 저차 해서 3시간 30분 연수받은 것으로 결제했다. 그렇게 9만 8천 원짜리 운전연수를 받고 내 인생에 다시는 사설 운전연수를 들이지 않겠다 다짐했다.
연수를 받고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3시간 30분밖에 운전연수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운전대를 잡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운전을 잘하는 친구가 같이 가는 것이고 서울보다 차도 적은 데다가 제주도에서 충분히 연습한 후에 운전대를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어 렌터카 예약 때 나도 운전자로 등록해버렸다.
제주도 여행 당일 렌터카를 받고 친구가 운전해보라 했을 때 떨려서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운전연수 날의 악몽이 떠올랐지만 겁내지 말고 최대한 시속 60km를 넘지 않는 선에서 자동차 엑셀을 밟았다. 친구에게 연수를 받아가며 여행 내내 운전 시간을 점점 늘려 마지막 순간엔 40분 동안 주행부터 주차까지 혼자 힘으로 해내고 말았다.
여러 번 실수가 있었지만(운전하면서 본넷을 열고 다녔던 일부터, 로터리에서 출구 방향을 잘못 알아 유턴을 해야 했던 일 등등 포함하여) 결국 무사고로 제주도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운전은 무서운 것이라 늘 겁부터 내고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는데, 참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운전이 재밌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 아쉬웠다. 비록 9만 8천 원짜리 운전연수였지만 그래도 한 게 낫긴 낫나 보다 싶었다.
앞으로 To do list로만 간직했던 모든 하고 싶었던 일들을 운전연수처럼 실행에 옮겨나가려 한다. 운전연수처럼 어려운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해보니 쉬운 일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들도 있을 것이다. 해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니깐 지레 겁먹는 건 이제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무작정 겁먹지 않은 채 부딪혀보고 그러면서 더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는 내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