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수돌 May 10. 2021

엄마, 참치마요

오뚜기푸드에세이에 글을 냈고 똑 떨어졌습니다.

눈물즙을 짤 수 있도록 감정을 꼭꼭 눌러 담아 글을 썼는데, 결론은 수상하지 못했습니다:D

이대로 글을 버리기가 아까워 브런치로 연재합니다. 잘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출처: Photo by Samia Liamani on Unsplash

보통 부모에겐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아픈 손가락은 있다. 마흔 살에 어렵사리 가진 나는 우리 부모님의 다섯 손가락 중 깨물 수 있는 유일한 손가락이었으며, 깨물지 않고 보기만 해도 아픈 손가락이었다. 자식이 없었던 탓에 하나만 낳아서 잘 키워보겠다던 부모님의 다짐도 무색하게 나는 온갖 이름 모를 병들을 달고 태어났다. 가장 나를 괴롭히던 병은 천식이었는데, 고등학생 때까지 체육 시간에 툭하면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학교 양호실에서 산소마스크에 의지하며 지내야 했었다. 그러고 나면 진이 빠져 남은 수업을 이어가지 못해 조퇴하곤 했는데,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엄마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참치마요 주먹밥을 만들어 놓고선 나를 기다렸다. 


몸은 좀 괜찮은지 물어봤더라면 울컥 했겠지만, 다행히 엄마는 아무 말 없이 힘든 내색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나에게 참치 마요 주먹밥만 내밀었다. 

“이거 먹어봐, 엄마가 너 좋아하는 참치랑 마요네즈 팍팍 넣었어.”

참치의 기름을 쏙 뺀 다음, 고소한 마요네즈를 있는 힘껏 짜서 밥과 비비고는 참기름을 휙 한번 두르고 김 가루를 솔솔 뿌린 엄마표 참치 마요 주먹밥. 고소한 참기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조퇴 후 지친 발걸음으로 힘들게 집에 온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을까. 흔한 참치마요 주먹밥은 엄마의 손끝에서 다른 곳에선 절대 사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 지난날 내가 힘들 때마다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과거는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처음엔 어린 시절 병약했던 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건강해진 지금의 모습으로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전 세계를 혼자서 여행해보겠다는 딸을 부모님은 결국 막지 못했다. 그 뒤 정말 쉬지 않고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내 기억 속에서 엄마표 참치마요 주먹밥은 빠르게 잊혀 갔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출국하기 하루 전날, 친구들이 잠시 한국을 떠나게 된 나를 위해 열어준 파티에서 정신없이 놀고 있었는데, 나를 찾는 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전화도 받지 않고 친구들과 더 놀고 싶었던 나는, 저녁 전까지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어긴 채 밤늦게 집에 들어갔고 식탁 위에는 차가워진 참치마요 주먹밥만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저녁을 이미 먹고 들어온 나는 그 주먹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방으로 서둘러 들어가서 출국 준비를 했고, 그렇게 한국을 떠났다. 


귀국을 한 달 앞두고 같이 유럽 여행을 하다가 함께 귀국하고 싶다고 엄마가 내게 먼저 여행을 제안했다. 혼자서 가이드 없이 예순다섯의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이곳으로 오는 것이 걱정되었지만, 엄마의 출국을 함께 준비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기에 무사히 내가 있는 이 나라에 올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던 나는 엄마가 일찍 도착하기를 바라며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저 멀리 엄마의 실루엣이 보이는 데 그때 울컥하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터져 나왔다. 어릴 때 집에서 아픈 내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던 엄마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갑자기 눈물이 눈앞을 흐리는 탓에 엄마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항 한복판에서 대성통곡하며 엄마와 다시 만난 순간에 대한 기쁨을 나눴다. 


엄마와 함께 손을 잡은 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먹으러 나가려고 했다. 그때 엄마가 내게 오랜만에 해주고 싶은 음식이 있다며, 여행 가방을 열었는데 그때 참치캔과 마요네즈, 즉석밥이 제일 눈에 띄었다. 

“엄마, 나 참치 마요 주먹밥 해줘”

 김치도 있었고, 즉석 미역국이나 삼계탕도 있었는데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참치마요 주먹밥이었다. 예상했다는 듯이 엄마는 시차로 인한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내 앞에서 참치 마요 주먹밥을 만들어주었다.

 

“엄마가 너 어렸을 때 아파서 조퇴할 때마다 이거 만들어준 거 기억나니? 그때 네가 오면 어린 네게 어떤 위로를 해줘야 할지 몰라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기다렸던 건데. 괜히 네가 건강해진 게 이 참치 마요 주먹밥 덕분인 것 같아서 네가 네덜란드 가기 전에 먹이고 싶어 만들었는데 먹이지도 못하고 출국해서 마음이 쓰이더라.”


출국 전날 내가 마주한 참치마요 주먹밥이 그런 의미였다.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울면서 참치마요 주먹밥을 먹었다. 그 뒤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참치마요 주먹밥을 찾곤 하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음식을 먹는 내 앞에서 엄마는 눈물을 참고 있지 않았을까. 그 시절의 엄마를 만난다면 이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엄마, 그 눈물을 참지마요.

매거진의 이전글 9만 8천 원짜리 운전연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