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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Jan 22. 2021

90년대생이 회사에 현타를 느낄 때

1일 1현타를 느낀다면 탈출하십쇼

벌써 4년 차입니다만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회사원이었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열두 살 무렵의 나는 장래희망 조사서에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큼지막하게 써서 제출했었다. 고 3, 열아홉 살의 나는 담임선생님과의 진로 상담 시간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해 반드시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외교관이 될 것이라며 포부를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던 것 같다.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공부자극‘

꿈은 명사여선 안되고 동사여야 한다는 최태성 선생님의 말씀을 10년 일찍 들었으면 인생이 달라졌으려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랬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채 여느 평범한 삶을 벗어나지 않는 대한민국의 회사원 1이 되어있었다. 신입사원이던 시절에는 그나마 사회에 첫 발을 디딛는 만큼 뭔가 성장한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어느덧 4년 차. 긴장감이 잔뜩 배어있던 신입사원은 사라지고, 묻는 말에 '넵' 이외에 다른 말은 하기도 싫은 진정한 4년 차 넵충이 되었다.


90년대생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90년대생이 거의 없고 삼촌 내지는 아버지뻘의 선배들로 가득한 남초 회사를 다니다 보니 종종 이런 말을 듣곤 한다. "90년대생은 왜 그래?", "90년대생은 이런 건 싫어하지?", "90년대생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우리 애들도 이해가 안 간다니깐."


'저는 부장님/차장님/과장님의 자녀분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가는걸요. 저 같아도 그럴 듯'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기에 그럴 때면 챗봇처럼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ㅎㅎ"라고 슬그머니 쌓여있는 업무 더미로 손을 뻗으며 이야기를 중단시키곤 한다. "90년대생은 말입니다. 이런 거 묻는 게 제일 싫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직장인이 회사에 현타를 느낄 때


직장인으로서 회사에 현타를 느끼는 순간은 너무나 많다. 열심히 추진한 프로젝트가 엎어졌을 때, 기껏 열심히 일했더니 공은 다른 사람이 가로챘을 때, 나보다 능력도 없어 보이는 직원이 정치질 or 남자라고 나보다 승진 먼저 할 때 등등. 하나하나 열거하기엔 너무 입 아플 정도로 많은 순간 우리는 현자 타임에 빠진다.


출처: 대학일기(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79519)

차라리 현자 타임의 단어 뜻 그대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처럼 직장생활이 황홀했으면 모르겠지만, 현타가 오기 전에도 직장생활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비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새가 되어 벌레를 잡아먹을 마음도 없는데 미적거리며 '아 진짜 회사는 언제까지 다녀야 할까' 하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오조오억만 번도 더 하게 되니깐 말이다.


그렇다면, 90년대생은 어떨까


90년대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느 다른 직장인들처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일 때 현타를 느낀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90년대생은 기본적으로 본인에게 '부당한 것'이 있을 때 다른 세대보다도 더 크게 현자 타임에 빠지는 것 같다.


출처: Photo by Yi Liu on Unsplash(No인 듯)

직장에서 능력보다는 나이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선배들을 보게 되었을 때.

연차나 나이에 따라 어울리는 업무는 따로 있다고 말하며 나에게 업무를 몰아주는 팀장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보다 월급을 배로 더 받아가는데도 업무량은 1/2보다도 더 적어 보이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부당함을 느낀다. 특히 90년대생 직장인으로서 나는 부당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그럼에도 그 분노를 풀 수 없을 때


현타를 넘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입사한 이래 내 또래의 주니어들은 현타와 자괴감을 넘나들며 이직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채용공고를 백만 번도 더 들여다보며 현실을 직면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래 왔고 그러는 중이다. 참 우습게도 이러한 마음이 늘 있는 건 아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다른 곳도 다 똑같을 거야' 하고 체념하다가도 '그래도 더 좋은 곳에서 일하고 싶어' 하며 자기소개서를 써대며 행복 회로를 돌리며 마음이 이리 갔다가 저리 가버린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고는 하나, 주변만 봐도 90년대생이 특히 직장에서 현타를 더 많이 느낀다. 딸린 식솔들도 없거니와 여러 세대 중에서도 특히나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세대인데, 직장생활이 아무리 부당해도 묵묵히 일해야 한다니. 현타에 빠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수밖에.


답은 정해져 있다.


역시 답은 하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어릴수록 떠나기 쉽겠지만, 나이 말고도 중이 다른 절로 떠나기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게 필요하다. 나는 바로 그게 능력이라 생각한다. 90년대생은 특히 나이와 연차가 다른 선배들보다 낮음에도 그들만큼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증거물이 필요하다. 이에 어울리는 건 정치질도, 화려한 입담도, 인맥도 아니다. 바로 능력이다.


능력을 보여주는 일은 정말 어렵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경력기술서에 '다채로운 프로모션을 통한 매출 증대'만 적어놓는 사람이라면 그 능력은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아무리 자기소개서에 본인의 능력을 잘 어필했어도 업무 환경에서 '일머리' 조차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꽝. 그러니 지금은 90년대생 직장인으로서 우리 모두 능력을 키울 때다.


능력을 키우고 나서 해야 하는 일


출처: 이누야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짤이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라는 대사를 보고, '언젠간 반드시 저 이미지를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하고 회사에서 사라지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90년대생은 특히 사회에서 기대하는 바가 더 크다. 60,70년대생이 직장생활에서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신인류 같은 후배이며 동시에 가장 어리고 배운 게 많아 보이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회사에 현타를 느끼는 순간이 오면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빨리 빠져나와 능력을 키우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그럴수록 현타를 느끼는 이 회사를 더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그것은 떠나는 것


얼마 전, 몇 년 만에 회사에 신입사원분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보면서 문득 나의 신입시절은 어땠을까 추억을 회상했는데, 역시나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현타를 느끼며 이 회사에 얼마나 다녀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니 능력이 부족한 내가 보였다. 현타를 느낄 시간에 능력을 쌓고 있었다면 지금쯤 직장인 생활 만렙은 찍고도 남았을 텐데.


만렙은 못 찍었지만, 우리 모두 언젠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나게 될 날이 반드시 분명히 올 것이다. 그 날이 더 빨리 올 수 있도록 능력자로서 성장할 우리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이만 글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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