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아차 하고 싶었던 순간
직장에서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가끔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바로 '사람 위에 일이 없다'는 사실을 종종 간과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천불이 난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일과 사람을 동시에 놓고서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그 사람을 마치 최악의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물론 직장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성격이 모난 사람도, 게으른 사람도 아닌 일을 '잘'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만,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실은 내가 정해놓은 틀에 상대방을 억지로 끼워 넣어 속단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그런 일이 있었다. 협력사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일주일 넘게 회신이 오지 않아 애가 타던 상황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리 급히 필요한 자료는 아니었지만, 요청한 자료의 양이 매우 적고 그 수준도 낮아 요청할 당시 1시간 내외면 바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자료를 받기까지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게 의아하던 참이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을 때, 전화를 걸었지만 담당자와 전화 연결이 어려웠다. 연락할 방법을 찾던 와중 갑자기 해당 담당자의 콜백 전화로 휴대폰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담당자님 000입니다. 혹시 제가 요청한 자료는 아직인가요?"
"죄송합니다. 000님. 지금 제 가족이 수술하느라 병원에 있어 그동안의 메일을 못 봤습니다. 다시 복귀하면 바로 송부드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물론 내가 해당 담당자의 가족분께서 수술을 받는다는 사정을 알았더라면 저런 독촉 전화는 하지 않았을 테지만, 담당자로부터 죄송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순간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물론 일만 놓고 본다면 일주일 넘게 회신도 주지 않은 담당자의 잘못이 크겠지만, 그저 일이 늦어지는 담당자에게 협력사 굳이 말하자면 갑의 입장으로서 을에게 잘못을 묻고자 했던 내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회신이 종종 늦어 내게 '일처리가 늦은 사람'이라고 낙인찍힌 담당자가 이번에도 분명 다른 일 때문에 메일 확인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급한 자료였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 아차 싶었다.
하루빨리 회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고 나서 딱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일이 뭐라고.' 일이 대체 뭐길래 이 담당자는 수술한 가족을 앞에 두고 협력사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어야 했고, 무엇이 나를 그런 사람에게 전화를 받을 때까지 몇 번이고 전화를 하게 만들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 했더니, "그러라고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 거잖아."라고 했다. 그래, 그래서 내가 월급 쟁이지. 월급쟁이니깐 당연히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하지 않거나 못했을 때는 죄송하다는 말을 써야 하는 거지.
그렇지만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나는 계속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저 담당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일이었어? 그놈의 일이 뭐라고. 힘든 사람에게 너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게 만들었어?"
그놈의 일이 뭐라고.
이날의 에피소드는 상대방을 향한 미안함이 돌덩이가 되어 마음을 짓누른 하루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