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까지 간 이유를 말씀드리자면요
2015년 12월 네덜란드에서의 겨울은 몹시 추웠지만 전 세계에서 모인 16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느라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전쟁'이라는 주제가 나왔다.
남북으로 분단된 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여전히 이산가족으로, 전쟁의 희생자로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하는 내게 한 친구가 조용히 이렇게 이야기했다.
"Sophie,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베를린에 가보는 게 어때?"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힙스터의 성지라 불리던 곳이었지만, 내가 유럽에 머무르던 당시만 해도 힙스터라는 말은 유행하지 않았던 때였다.
대신에 유럽에서도 전 세계인이 모이는 탓에 굉장히 글로벌하고 트렌디한 도시라는 명성은 자자했었는데, 잡지나 영화에서 그동안 봐왔던 베를린 특유의 삭막함과 공허한 모습이 관광지로 보이지는 않아 대답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한국처럼 분단되었다가 통일된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베를린에 한국인으로서 한번 가보는 게 좋겠다고 권유한 그 친구에게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였다.
그러고는 얼마 뒤, 베를린으로 유학 가서 자리를 잡은 고등학교 동창에게 유럽으로 교환학생 온 거면 네덜란드와 가까우니 베를린으로 놀러 오라는 SNS 메신저를 받게 되었다.
때마침 연말이라 한국인 친구들이 그리워질 때라, '이렇게 베를린이 나를 부르니, 한번 가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여행보다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마음에서 가볍게 길을 나섰다.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입구역과 같은 곳으로 마중을 나왔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성별이 달라 그리 친하지 않았었는데, 머나먼 이국에서 보니 마치 어린 시절 죽마고우를 만난 느낌마저 들었다.
만나자마자 배고프지 않냐며, 친구는 내게 케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런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오, 안돼.. 나 케밥 냄새 때문에 못 먹어. 시도도 안 해봤는걸? 다른 음식 먹자"
"베를린의 케밥은 네가 못 먹었던 지난날의 케밥과 전혀 다를걸. 나를 믿어봐"
케밥을 먹으러 가기 싫다고 강하게 거부하는 나와, 여기까지 왔으면 그것을 꼭 먹어줘야 한다는 친구 간의 작은 다툼 끝에 친구가 '사주는 것'으로 협의하고 억지로 친구가 추천하는 '무스타파 케밥'으로 향했다.
작은 식당을 예상했었는데, 멀리서 노점상 같이 보이는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광경을 목격하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대체 케밥이 뭐길래, 저렇게 줄을 길게 서 있을까.'
호기심이 생긴 나머지 먹기 싫다고, 차라리 맥도널드에 가자고 역에서 내리던 그때까지도 강하게 거부했던 나 자신은 벌써 잊어버린 채 기다리던 사람들 뒤로 얼른 줄을 섰다.
한 30분 정도 지났을까 순번이 돌아와 친구와 함께 무스타파 케밥 집으로 주문을 위해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모두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재료들만큼은 참 신선해 보였다.
주문을 하려고 보니 내가 지금 베를린에 있는 건지 터키에 있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게 점원도, 요리도, 쓰인 말들도 모두 터키의 그것들이었다.
베를린에 이렇게 터키 음식점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데다가 추운 겨울 날씨에도 길게 줄 서서 사 먹는 것이 신기해 네덜란드에서 함께 살고 있던 터키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었다. 맛이 어떤지 꼭 전해 달라는 인사를 뒤로 한채 터키 친구들이 추천해준 대로 가장 기본 메뉴를 주문했다.
못 먹는 야채는 참 많은데요, 일단 고수도 못 먹고 오이도 못 먹고 피망도 안 먹어요...라고 설명하고 있던 내 말을 친구는 가뿐히 무시해주고, 베를린에 왔으니 일단 무스타파 케밥은 본 재료를 다 넣고 먹어보라고 권유했다. 사주는 대로 받아먹겠노라 대답하곤 잠자코 메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내가 주문한 무스타파 케밥이 자태를 드러냈다. 분명 내가 싫어하는 채소가 한껏 들어있는 데다가 평소 같이 살던 터키 친구들의 땀냄새 비슷 무리한 게 나서 처음엔 정이 가지 않았다.
한번 눈 딱 감고 먹어본 다음 맛이 없으면 옆에 있는 맥도널드로 달려가야지 하는 생각에 한입 베어 물고 나니 눈이 반짝 뜨였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맛이 생생한 건 베를린을 여행하던 일주일 내내 그 케밥을 먹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터키에 가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터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이었다면 상상할 수 있을까.
잘 만든 빵 위에 신선한 야채들과 함께 씹으면 육즙이 베어 나오는 고기와 전혀 불쾌감이 느껴지지 않는 향신료까지. 샌드위치라기보다는 정성스럽게 만든 하나의 요리같이 느껴졌다.
먹기 싫다고, 맥도널드 가자고 외치던 친구가 게눈 감추듯 그 자리에서 하나를 다 먹어버리는 모습을 본 친구가 말한 게 아직도 생각난다.
"거봐, 맛있지? 시도해보지 않는 것을 시도하는 게 여행이야.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것을 베를린에서 해봐!"
호스텔을 예약해두었던 지역은 베를린의 동쪽에 있는 미테지구였는데, 이미 숙소에 가느라 동베를린을 경험했다면 이번에는 서베를린을 안내해주겠다며 친구는 나를 쿠담거리로 안내했다.
가기 전까지 베를린 여행 가이드북을 보면서 공부해 갔지만,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의 모습이 실제론 얼마만큼 다를지 도착하기 전까진 예상할 수 없었다.
베를린 서쪽 한국의 청담동 거리와 비슷하다는 쿠담거리에 도착하니, 미테지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확실히 베를린의 동쪽과는 다르게 마치 모든 거리는 깨끗했고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만 봐도 평온하고 안정되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거리 곳곳에서 사진처럼 모두가 파티를 즐기고 있었는데, 평소 영화나 책에서 보던 베를린의 공허하고 삭막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유럽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사람들이 들떠 보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본 서베를린의 모습은 확실히 동베를린을 비롯해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 있는 유일한 자본주의 진영의 도시였던 점에서 기인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베를린을 뒤로한 채 친구와 헤어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붐비는 플리마켓을 발견했다. 어딘가 폐건물 같은 곳에서 클럽 노랫소리와 함께 불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는데, 밤이 늦어 그다음 날 방문했다.
낮에 들렸는데도 저녁에 하는 플리마켓처럼 사방이 어두 었으며 천장에 달린 전구의 불빛만이 환하게 마켓을 비추고 있었다. 확실히 낮에 보니 폐건물이 맞았다. 철근이 벽을 뚫고 나오는 건물에서 아티스트들의 크고 작은 전시회들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 예술품을 사느라 바쁜 아트플리마켓이었다.
전날 봤었던 서베를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어딘가 낡고 공허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이 그동안 영화나 각종 미디어에서 접했던 베를린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낡은 것들 사이에서 동베를린만이 가질 수 있는 쿨함, 힙함 등등 고유의 멋이 느껴졌다.
서베를린이 밝고 온화한 분위기였다면, 동베를린은 어둡고 공허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었다. 두 지역의 모습이나 풍기는 분위기, 느낌이 이렇듯 전혀 다른데도 둘 중 더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를 수 없었다. 그것은 두 지역이 품고 있는 그들만의 매력을 무시하는 행동이라 여겨졌다.
하나의 도시에서 상반된 두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도 베를린을 꼭 가봐야 할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베를린이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베를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와보고 싶었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추모관)에 들렸을 때, 나치의 대학살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후 방문한 곳은 그 이름도 유명한 베를린 장벽이었다. 베를린의 동쪽과 서쪽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을 두 눈으로 보고 싶어 찾은 이 곳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연도인 '1989'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베를린 장벽을 보고 있자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때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을 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었다.
베를린에서 보낸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유럽에서 보낸 그 어떤 날들보다도 더 만족스러웠다. 저렴한 물가 덕택에 주머니 걱정 없이 맘껏 베를린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소시지 위에 케첩과 커리케첩을 뿌린 커리부어스트는 내 입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였다.
호스텔에서 국가도 인종도 달랐지만 여행자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이들과 친구가 되어 밤새도록 맥주를 마셨다. 눈뜨면 호스텔 근처에 이른 아침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쌀국수 가게로 달려가 뜨거운 육수로 해장을 하고선 발길 닿는 대로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녔다.
학생이라는 신분 덕택에 베를린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었고 외국인 그것도 그들 눈에는 작고 귀여운(?) 아시아 여자였기 때문에 위험한 순간 없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오가며 무심한 듯 툭툭 친절을 베푸는 베를리너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베를린의 츤데레 같은 매력인가 싶었다.
코로나19로 여행길이 막힌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교환학생 시절 내게 베를린을 추천해줬던 친구가 없었더라면, 고등학교 동창이 갑자기 SNS로 놀러 오라고 베를린에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베를린이 이렇게 멋진 도시였음을 알 수 있었을까?
고민하고 또 재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기회들을 놓치고 날려버렸을까 후회하려던 참에 갑자기 베를린이 떠올랐다. '아, 그래도 크게 고민하지 않은 덕택에 베를린 여행이라는 좋은 추억이 생겼네'하는 생각에 그 시절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베를린 여행기를 몇 자 적어봤다.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정말 좋은 추억을 안겨줬던 베를린. 이 곳을 다녀온 그 시절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