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수돌 Oct 29. 2020

네덜란드의 온도가 그립다

백예린의 Square 직캠을 보고 난 후 쓰는 글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외국 어느 여행지에서, 낯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데 살랑 바람이 얼굴을 쓸고 지나가면서 한국에서는 한 번도 맡지 못한 어떤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힐 때.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했다. 


'지금 이 순간의 온도와 바람, 향기와 날씨로 이번 여행을 추억하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순간이라 너무 아쉽네..'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해버렸다. 


그러다가 일상 속에서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이 찾아오면 지난날 여행지에서 저장했던 그 추억 속 행복했던 '나'를 떠올리며 지금의 힘든 '나'를 위로했다. 그것이 우리가 여행의 순간을 추억하는 방법이었고 여행을 하는 진정한 목적이었다. 

출처: 내 인스타그램(네덜란드에서 모든 순간은 추억으로 남았다.)


내게 있어 네덜란드는 여행지 이상의 나라였다


2015년 당시 교환학생 신분으로 네덜란드의 Tilburg라는 지역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언어와 인종이 다른 친구들과 같이 살다 보니 내게 네덜란드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가을/겨울 학기에 간 터라 네덜란드에서의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변덕쟁이 같은 날씨 앞에서 늘 추위와 싸웠던 것이다. 매일 저녁마다 하우스 메이트 들과 거실에 모여 앉아 라디에이터 온도를 있는 대로 높이고는 EDM을 들으며 뜨거운 코코아를 호호 불면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뜨거운 코코아에 생크림을 가득 올려 한 숟가락 입에 넣었을 때 울려 퍼지던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다. 

출처: 내 페이스북(그때의 그 휘핑크림 잔뜩 얹은 코코아 한잔)

그때의 차가웠던 코끝, 방안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온기, 친구들과 나눠 마셨던 달달한 핫초코 한잔, 국가와 인종은 달라도 서로를 위해서 한마디라도 더 들어주고 공감해주기 위해 애쓰던 마음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래서 꿈에서라도 언젠가 한 번쯤 다시 만나고 싶은 장면처럼 그것들은 내게 남았다. 

출처: 내 사진첩(당시 브라질 친구에게 받았던 생일선물인 여행 파우치/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다.)


백예린의 Square 직캠을 보다가 오랜만의 네덜란드의 온도가 생각났다. 


한번 보고 나면 유튜브에 접속할 때마다 자동으로 출석체크를 하게 만드는 마성의 직캠, 백예린의 'Square' 영상은 정말이지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뒤 천막도 야자수로 만들어버리고 비바람도 봄바람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이 문장은 유튜브 댓글에서 인용함).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댓글을 통해 찬사가 쌓였는데 그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내 삶의 온도가 딱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 노래와 영상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글쓴이의 재주가 참 부러웠다. 살랑이는 따스한 봄바람을 연상케 하는 이 노래 속 온도는 추운 눈도 녹일 것만 같은데. 이 정도의 온도가 우리의 삶의 온도면 얼마나 좋을까.


※ 참조: 백예린 Square 직캠 영상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_md16sTcnPM)

출처: 백예린의 Square 직캠 영상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_md16sTcnPM)

댓글을 보자마자 앞서 이야기했던 네덜란드의 온기와 코코아 한잔, 친구들과 행복했던 바로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던 "따스한" 온기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행복했었다. 그때의 추억이 백예린의 Square 노래와 함께 내 머릿속에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피어올랐다. 


순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


뭔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잊지 않았음에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기에 동시에 잔인한 일이다. 나의 네덜란드에서의 순간도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슬며시 찾아오는 이맘때쯤이면 라디에이터가 있는 한쪽 벽면에 착 달라붙어서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꽁꽁 싸맨 채 한국 드라마를 보던 네덜란드의 내가 떠오른다. 

출처: 내 사진첩(그 당시의 우리집, 저기 보이는 라디에이터 옆에 착 달라붙어서 한국드라마를 보곤 했다. 날씨에 따라 사진 색감마저 선명하게 달랐다.)

외국에 나와서까지 영어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막상 닥치니 외로운 외국 시골생활 속에서 한국말이 들리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본 것 같다. 지금처럼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많이 보지 않았던 때라 유일한 낙은 응팔을 보는 것 정도였지만 걱정이 없으니 행복은 배로 느껴졌었다. 당시엔 고민이 '저녁에 뭐 해 먹을까' 하는 정도였으니,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조건 없이 행복하고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 않았을까 싶다. 


이만 마치며: 내 삶의 온도가 딱 네덜란드의 온도를 닮았으면


네덜란드에서 나를 포근하게 감싸던 그때의 그 온기 정도만이라도 내 삶의 온도가 닮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그리 춥지는 않지만 가끔 공허하고 외로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게다가 요즘 같이 하늘길, 바닷길도 모두 막힌 채 어쩌다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단 한 사람과도 이야기해보지 못한 채 방에서만 있다 보면 홀로 있음에 숨이 막혀온다. 


내 삶의 온도가 네덜란드의 온도를 닮아 공허하고 외로운 하루에 행복이라는 온기를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예린의 Square를 들으며, 때때로 추억이라는 트리거를 통해 내 삶의 온기를 채워 넣으며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를 버텨야겠다. 

출처: 내 사진첩(네덜란드에서 살았을 때 찍었던 가장 아름다웠던 어느 노부부의 모습이었다.)


이전 06화 어느 날 갑자기 베를린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