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예린의 Square 직캠을 보고 난 후 쓰는 글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외국 어느 여행지에서, 낯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데 살랑 바람이 얼굴을 쓸고 지나가면서 한국에서는 한 번도 맡지 못한 어떤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힐 때.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했다.
'지금 이 순간의 온도와 바람, 향기와 날씨로 이번 여행을 추억하겠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순간이라 너무 아쉽네..'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을 사진 찍듯 머릿속에 저장해버렸다.
그러다가 일상 속에서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이 찾아오면 지난날 여행지에서 저장했던 그 추억 속 행복했던 '나'를 떠올리며 지금의 힘든 '나'를 위로했다. 그것이 우리가 여행의 순간을 추억하는 방법이었고 여행을 하는 진정한 목적이었다.
2015년 당시 교환학생 신분으로 네덜란드의 Tilburg라는 지역에서 6개월 동안 거주한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언어와 인종이 다른 친구들과 같이 살다 보니 내게 네덜란드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었다.
가을/겨울 학기에 간 터라 네덜란드에서의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변덕쟁이 같은 날씨 앞에서 늘 추위와 싸웠던 것이다. 매일 저녁마다 하우스 메이트 들과 거실에 모여 앉아 라디에이터 온도를 있는 대로 높이고는 EDM을 들으며 뜨거운 코코아를 호호 불면서 마셨던 기억이 난다. 뜨거운 코코아에 생크림을 가득 올려 한 숟가락 입에 넣었을 때 울려 퍼지던 그 달콤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차가웠던 코끝, 방안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온기, 친구들과 나눠 마셨던 달달한 핫초코 한잔, 국가와 인종은 달라도 서로를 위해서 한마디라도 더 들어주고 공감해주기 위해 애쓰던 마음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그래서 꿈에서라도 언젠가 한 번쯤 다시 만나고 싶은 장면처럼 그것들은 내게 남았다.
한번 보고 나면 유튜브에 접속할 때마다 자동으로 출석체크를 하게 만드는 마성의 직캠, 백예린의 'Square' 영상은 정말이지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대 뒤 천막도 야자수로 만들어버리고 비바람도 봄바람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이 문장은 유튜브 댓글에서 인용함).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댓글을 통해 찬사가 쌓였는데 그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내 삶의 온도가 딱 이 정도였으면 좋겠다.] 노래와 영상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글쓴이의 재주가 참 부러웠다. 살랑이는 따스한 봄바람을 연상케 하는 이 노래 속 온도는 추운 눈도 녹일 것만 같은데. 이 정도의 온도가 우리의 삶의 온도면 얼마나 좋을까.
※ 참조: 백예린 Square 직캠 영상 링크(https://www.youtube.com/watch?v=_md16sTcnPM)
댓글을 보자마자 앞서 이야기했던 네덜란드의 온기와 코코아 한잔, 친구들과 행복했던 바로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던 "따스한" 온기 앞에서 우리는 모두가 행복했었다. 그때의 추억이 백예린의 Square 노래와 함께 내 머릿속에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순간에 대한 그리움으로 피어올랐다.
뭔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잊지 않았음에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기에 동시에 잔인한 일이다. 나의 네덜란드에서의 순간도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가을이 지나고 추운 겨울이 슬며시 찾아오는 이맘때쯤이면 라디에이터가 있는 한쪽 벽면에 착 달라붙어서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꽁꽁 싸맨 채 한국 드라마를 보던 네덜란드의 내가 떠오른다.
외국에 나와서까지 영어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보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막상 닥치니 외로운 외국 시골생활 속에서 한국말이 들리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본 것 같다. 지금처럼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많이 보지 않았던 때라 유일한 낙은 응팔을 보는 것 정도였지만 걱정이 없으니 행복은 배로 느껴졌었다. 당시엔 고민이 '저녁에 뭐 해 먹을까' 하는 정도였으니,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조건 없이 행복하고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 않았을까 싶다.
네덜란드에서 나를 포근하게 감싸던 그때의 그 온기 정도만이라도 내 삶의 온도가 닮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그리 춥지는 않지만 가끔 공허하고 외로울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게다가 요즘 같이 하늘길, 바닷길도 모두 막힌 채 어쩌다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면 단 한 사람과도 이야기해보지 못한 채 방에서만 있다 보면 홀로 있음에 숨이 막혀온다.
내 삶의 온도가 네덜란드의 온도를 닮아 공허하고 외로운 하루에 행복이라는 온기를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예린의 Square를 들으며, 때때로 추억이라는 트리거를 통해 내 삶의 온기를 채워 넣으며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를 버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