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여행을 추억하는 방법
삼 년 전, 그러니깐 2018년에 나는 여행에 미쳐있었다. '한 달에 한번 다른 나라로 여행하기'라는 콘셉트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가까운 일본, 대만부터 호주, 미국, 유럽에 이르기까지 여권에 잉크가 마르려고 하면 무작정 휴가 신청을 한 뒤 배낭을 메고 떠났었다. 그중 대학생 때부터 매년 빠지지 않고 여행하는 제2의 고향과도 같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태국이었다.
태국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에게 "태국 요리 너무 맛있더라, 진짜 입맛에 맞았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애국심이 생겨나듯 흡족해졌다. "그렇지, 진짜 태국 음식 맛있어! 내가 그것 때문에 매년 태국을 가잖아"하며 맞장구를 치곤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태국 여행을 추천해줬던 지인들이 다녀와서 하나같이 여행 만족도 최강이라는 리뷰를 들려주다 보니 괜히 뿌듯함에 취했던 것 같다.
여하튼 태국요리는 참 오묘하지만 맛있다.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시즌1에서 방콕이 등장했을 때 길거리 음식인데도 하나같이 다 맛있어 보여서 여행객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워낙 태국 현지 물가도 저렴하고 한국인 입맛에 맞다 보니 노점상에서 먹는 팟타이마저 한국의 레스토랑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맛을 자랑했기에 한국인들에게 방송 이후 방콕 여행이 더 인기를 끈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시즌 1 방콕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fcajLhkJXX4]
태국에서 쌀국수를 먹을 때면 깊이 있는 맛이 느껴지는 가운데, 고수에서 나는 세제 냄새가 희한하게도 국수와 어울려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었다. 팟타이를 먹을 때면 기름진 면과 야채 사이에서 달콤한 향신료에 듬뿍 적셔진 오동통한 새우를 만날 수 있는데 이 또한 일품이었다. 흔히 반찬처럼 먹는 쏨땀은 또 어떻고. 파타야 샐러드는 본연의 새콤함이 미각을 자극해 식욕을 돋우는 에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직항이 있어 비교적 비행시간을 아낄 수 있는 방콕도 좋아하지만, 태국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나는 치앙마이를 가장 좋아했다. 치앙마이가 왜 좋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배낭여행자로서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호텔에서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태국 왕실에서 국가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고자 Royal Project의 일환으로서 치앙마이에 예술 대학교를 세우고 예술사업을 장려하고 지원했었다. 그 덕에 치앙마이에 가면 치앙마이 대학교 출신의 실력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대거 포진하며 아트 플리마켓과 전시회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고산족이 아편 재배로 인해 피폐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염려한 태국의 한 공주님 덕택에 커피 산업도 발전하여 치앙마이에 가면 마치 연남동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색 있고 다양한 로컬 카페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래서 치앙마이에선 스타벅스에 들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과 커피가 있으니, 이보다 더 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치앙마이에서는 취업에 합격한 후 입사 전까지 몇 개월 정도 시간이 남았을 때 한 달 살기를 했던 터라, 이 세상의 자유와 행복을 치앙마이에서 충분히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한 지 2년이 다돼간다. 2020년 초만 해도 올해 연말쯤이면 갈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2월이 지나 3월쯤 되었을 때 코로나 확진자부터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여행은 물론 국가 간 자유로운 왕래가 불가하고 격리기간이 생김에 따라 이제 여행은 당분간 하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일상도 마비되는 데, 여행이 뭐 대수일까' 하는 생각으로 좀 더 기다리자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국내 여행조차도 쉽게 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너무나 가고 싶은 나머지, 얼마 전 치앙마이를 다녀왔습니다"라고 하면 분명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놀라실 것 같다. 그렇다, 사실은 치앙마이를 진짜로 다녀오지는 못했다. 대신 태국 요리를 먹으며 치앙마이를 다녀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제일 좋아하는 태국 북부식 쌀국수를 먹으면서 '그래, 나는 지금 치앙마이야'하고 제 자신에게 주입식 교육을 진행했다. 그리고 입가심으로, 태국식 카페를 벤치마킹한 어느 카페에 들려 태국 수박주스를 원샷-! 오랜만에 즐기는 치앙마이 여행이었다.
일상 속에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요즘, 만약 그리운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의 음식을 먹으면서 지난날을 추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고 먹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
이상 치앙마이의 여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