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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r 31. 2021

카오스 같았던 유럽 호스텔의 남녀 혼숙 도미토리

충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입니다.

유럽여행의 시작


때는 바야흐로 6년 전,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다녔던 대학교는 실내 수업보다도 현장에서의 체험학습을 더 장려하는 편이었는데, 내가 들었던 수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체험학습이 끝나면 우리나라로 따지면 중간, 기말고사 없이 남은 수업시간이 숙제로 대체되곤 했는데, 이때 주말을 껴서 참 많은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을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잘 활용했던 것 같다. 국제학생증과 학생비자를 지참한 만 24세 미만 대학생이라는 신분 덕택에 미술관, 박물관 등 각종 문화시설을 모두 무료로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보다 저가 항공사가 더 많이 취항했던 에인트호번 공항이 집 근처에 있었기에 대략 100유로 안팎으로 영국, 이탈리아 등 옆 나라를 제 집 안방 드나들듯 다녀올 수 있었다. 

출처: 내 사진첩(스페인 가우디 성당의 모습)

호스텔을 선택한 이유


교환학생 시절 총 14개국을 여행하면서 단 한 번도 호텔을 이용해본 적이 없다. 매달 집세와 생활비 명목으로 부모님께서 약 60만 원 정도를 송금해주셨지만, 집세 35만 원을 내고 나면 남은 15만 원으로 생활했어야 했기에 늘 돈이 부족했다. 그때 쌈짓돈 털듯 인턴 시절 모아두었던 600만 원을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인출했다. 당시 IS로 유럽이 안전하지 못할 때라 교환학생 가는 것도 찬성하지 않았던 부모님께 유럽에서 이곳저곳 여행 다니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던 때였다. 그런 내게 호텔은 사치였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호스텔이었다.


남녀 혼숙 도미토리라고?


호스텔에도 방을 혼자 쓰냐, 두 명이 쓰냐, 혹은 그 이상이 쓰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매번 제일 저렴한 '남녀 혼숙 도미토리(다인실)'를 선택했다. 대부분 한국으로 치면 기숙사 같은 크지 않은 방에 최소 5인 이상의 남녀가 함께 머무르는 공간이었고, 이층 침대 혹은 삼층 침대가 닭장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였다. 대부분의 남녀 혼숙 도미토리의 침대에는 다행히도 커튼이나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이마저도 없는 곳에선 가끔 늦게까지 놀고 온 청춘 남녀들에 의해 내 얼굴 위로 핸드폰 손전등의 빛이 쏟아지는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교환학생 신분으로 함께 살던 한국인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남녀 혼숙 도미토리를 예약했다고 하니, 다들 모르는 남자랑 어떻게 같은 공간에서 지내냐고 반문했었다. 나도 그땐 유교걸이었는데, 막상 실제로 하루 이틀 숙박해보니 남녀 혼숙이라 해도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었다. 어차피 샤워실이나 화장실은 대부분 공용 공간에 있었고, 옷은 샤워실에서 갈아입었으며 오히려 같은 공간에 머무르다 보니 외국인들과 금세 친해져 여행 다닐 때 여행 메이트로 다 같이 식사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출처: 내 사진첩(뉘른베르크의 어느 호스텔의 모습/'좋았던'기억으로 남은 남녀 혼숙 호스텔이 되시겠다)


그럼에도 빌런은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추억만 가득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어딜 가나 빌런은 있는 법. 특히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인 크리스마스 시즌에 독일을 2주 동안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경험한 남녀 혼숙 도미토리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다 나름대로 추억인데, 그때는 어렸던 탓일까.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자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펐던 적도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겪었던 카오스 같았던 유럽 호스텔의 혼성 도미토리 경험담을 늘어놓고자 한다. 


01. 님들, 여기 러브호텔이 아닌데요?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가장 최악의 경험부터 털어놓자면 뮌헨에서 겪었던 일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해 2주 동안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독일이라면 뮌헨이지!"라는 유럽인 친구들의 말을 듣고 무작정 뮌헨을 여행한 적이 있었다. 독일은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예약 가능한 객실이 있는 호스텔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간신히 '유로 유스 호텔 뮌헨'이라는 곳을 찾았지만,  다른 조건의 객실은 투숙객으로 만실이라 혼성 도미토리룸으로, 그것도 8인실로 어쩔 수 없이 예약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부킹닷컴 호스텔 소개 이미지 캡처(http://www.booking.com/Share-zj6GWx)


여행 첫날, 체크인을 마치고 하루 종일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다니다가 밤 11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밤이라 조용히 침대에 누우려고 방 문을 연 순간, 발코니에서 이상 야릇한 소리가 들렸다.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 혹시 누가 아픈가 하고 창가로 다가간 순간 그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닌 두 명임을 알아차렸다. 커튼을 살짝 치우고 나니 어두워서 실루엣으로만 보였지만, 확실히 여자와 남자가 발코니에서 '사랑의 몸짓'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추운 날씨에 탈의까지 한 것인지 발코니로 나가는 문 틈 사이로 옷가지가 포개어져 있었다. 

출처: 부킹닷컴 당시 남겼던 후기(ㅋㅋㅋㅋㅋ 가 그날의 심정을 말해주는 듯)


유교걸로서 너무 놀란 나머지 바로 아래층에 있는 호스텔 직원을 호출했고, 당황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뱉은 'S'로 시작하는 단어 덕에 직원도 사태의 심각성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숙소로 올라와 발코니에는 가지 않은 채, 그 방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깨울 만큼 큰 소리로 퇴실 처리될 테니 나가라고 소리쳤다. 술에 취해서 부끄러움을 모르는지 그들은 옷을 챙겨 입고 웃으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고 쓸쓸히 짐을 챙겨 나갔다. 동물의 왕국 같았던 그때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선명한데,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듯싶다. 


02.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머물렀을 때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성 도미토리룸은 이미 만실이라 6베드 혼성 도미토리룸을 예약했었다. 체크인할 당시만 해도 어떤 일도 없이 순조로웠다. 아직 침대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말을 믿고 캐리어를 1층 보관소에 맡긴 채 이곳저곳 구경을 하고 돌아왔을 무렵 뭔가 예감이 싸한 기분이 들었다. 캐리어를 찾은 뒤, 체크인할 당시 배정받았던 객실로 들어가니, 웬걸. 처음 보는 낯선 백인 남자가 떡하니 내 침대에 상반신을 탈의한 채 누워있었다. 깨워서 자초지종을 물어보려 해도 덩치도 큰 데다가 당시 객실에 둘 밖에 없어 조용히 1층으로 내렸다.

출처: 부킹닷컴 호스텔 소개 이미지 캡처(https://www.booking.com/hotel/it/ostello-bello-grande.ko.html)


직원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자, 의아해하며 함께 올라가자고 했다. 객실에 도착해서 직원이 그 남자를 깨우고 이름이 뭐냐고 이 침대는 당신 것이 아니라고 하니, "아, 여기가 아닌가?"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예약자 명단에도 없었는데, 백인일 뿐 비영어권 국가 출신이라 더 이상의 대화가 어려웠다. 당황한 나를 앞에 두고 직원과 그 남자의 실랑이를 보다가 조용히 "나 그냥 방 바꿔줘"라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그 뒤로 그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는 미스터리로 남은 채, 직원이 사과하며 업그레이드 해준 객실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출처: 부킹닷컴 당시 남겼던 후기(그때 그 남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03. 남자들만 있는 혼성 도미토리룸이란?


마드리드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새해를 맞이해 스페인으로 꽤 오래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시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나는 다른 객실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마드리드에서 그래도 꽤 유명하다는 호스텔의 혼성 도미토리룸으로 예약했었다. 체크인 당일 숙소에 들어왔더니, 많은 직원들이 분주히 제 일을 하고 있었지만 여자 직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싶어 체크인을 하고 여행을 다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방문을 여니, 정확히 6인실에 여자는 나 혼자였고, 나머지 5명은 모두 남자였다. 시선을 어디다 둘까 싶었던 나는 굉장히 친하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남성네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채 내 침대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출처: 부킹닷컴 호스텔 이미지 캡처/지금은 다인실은 운영하지 않는 듯하다.(http://www.booking.com/Share-hyojey)


'혼성 도미토리룸이니, 남성들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래도 다 남자인데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한 건 역시나 기우가 아니었다. 남자들, 그것도 혈기 왕성한 백인 남성 5명의 코 고는 소리는 천장을 뚫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샤워를 잘하지 않는지 한 겨울에 방에서 땀냄새가 진동을 했다. 또 대부분이 밀라노 클럽을 순회공연하셨는지 새벽이 다되어서야 들어오는 탓에 문 바로 앞에서 잠을 자던 나는 늘 인기척과 소음에 깨야만 했다. 그렇게 3일 동안 있으면서 단 한 명의 여자도 입실하지 않은 채, 나는 남정네들과 계속 지내야 했고, 마치 대학교 남학생 기숙사에서처럼 거의 반나체 상태로 방에서 돌아다니는 그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아침 일찍 나와 밤늦게 숙소에 들어갔다. 


출처: 부킹닷컴 당시 남겼던 후기(그때 진짜 힘들었지,, 소음이여,,,)


밀라노는 다른 도시와 달리 구경할 거리가 많지 않은 도시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남정네들 덕분에(?) 유럽 여행 기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숙소가 아닌 밖에서 보내며 이곳저곳 밀라노의 구석구석을 잘 구경하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 


보너스) 언니들 옷 좀 입어줄래?


남자만 있는 혼성 도미토리룸도 문제였지만, 남자 1명에 여자 7명이 있는 혼성 도미토리룸도 카오스 같다. 특히 그 한 명이 한국인 남성일 때 무안함은 나의 몫이었는데, 암스테르담에 있는 호스텔에서 머물렀을 때 여자 7명 중 하나가 나였다. 다른 6명은 모두 북유럽 출신의 백인 여성들이었는데, 가을임에도 더운지 그들도 역시, 한국으로 치면 거의 반 나체 패션으로 숙소에서 머물렀다. 게다가 옷을 갈아입을 때 화장실로 가지 않고, 모두 방에서 탈의를 하는 탓에 딱 봐도 그 남성분이 불편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옷을 좀 입어줄 수 있겠니?"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라 생각해 묵언수행을 하며 남성분과는 말을 섞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때 그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끝 마치며


호스텔 그것도 남녀 혼숙 도미토리룸에서 하루라도 머무르라면 이제는 억만금을 준다 해도 싫다 하겠지만, 여행을 못 가게 된 요즘엔 그것마저도 아쉬워져 몇 자 적어봤다. 오늘따라 코로나 19가 아주 밉네, 왜 19니 너는 18이야. 이 코로나..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길 소망한다. 


저보다 더 다이내믹한 경험담을 갖고 있으신 분들이 계실 텐데, 댓글로 들려주시면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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