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소원 앞에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니 한 7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유치원 여름 방학이 끝난 후, 오랜만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여름에 한 일들에 대해 서로 자랑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한 친구가 부모님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미술관 앞에서 찍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러면서 유럽에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는데, 참 그 모습이 어린아이였던 내 눈에도 멋져 보였다.
외국은 대체 어떤 곳일까.
그 친구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쿵, 설렘을 느꼈다. 사람들의 키가 도깨비만큼 크고, 모두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곳, 그곳의 이야기를 들으며 유럽 어느 한 명소 앞에 서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래서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에게 떼쓰며 나도 외국여행을 보내달라고 소리쳤다. 그때 엄마는 진지하게 "아직은 어려서 어렵지만 조금 더 크면 꼭 보내줄게"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얼른 더 크고 싶다는 생각에 우유도 먹고, 나름 한글과 숫자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던 것.
우리 집이 가족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시 아빠는 외환위기 이후 좋지 못한 회사 사정으로 인해, 전기 기술자라는 위험한 일도 그만둘 겸 퇴사를 한 상태였었다. 그리고 엄마는 결혼 후 직장에서 일해본 적이 없으셨던 전업주부셨고, 두 분 다 남들 같으면 은퇴를 바라볼 나이에 늦게 낳은 나를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해외여행을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당장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철없는 어린아이의 소원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라니.
아직은 어려서 어렵지만, 조금 더 크면 보내줄게
라고 말했던 그날의 우리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날 엄마는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심정으로 나를 달랬을까.
해외여행을 가자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나는 '한번' 소원을 내뱉고, 그것을 실현시키고자 '몇 번' 노력한 척밖에 한 것 이 없다. 그래서일까. 친구의 여행 이야기를 들은 후, 일주일 만에 해외여행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접어 벼렸다. 이렇게 떼쓰고 엄마를 설득 할바에는 집 앞 놀이터에서 노는 게 낫겠다 라는 진리를 깨달아서였던 것 같다.
마흔 살에 얻은 외동딸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엄마.
해외여행 가자고 울며 떼쓰던 나의 모습은 그런 엄마의 가슴에 아주 날카로운 상처를 냈던 것 같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딱 10년 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잠시 한숨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형편이 나아져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때마침 이모네 가족이 발리로 패키지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들은 엄마의 추진 아래 우리도 합류할 수 있었다.
발리로 떠나는 날 아침, 처음 본 인천공항의 모습은 크고 웅대했다.
"사람들이 많으니 엄마 놓치지 말고 꼭 붙들고 있어" 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엄마 딸 벌써 고등학생이야, 7살 애한테 하듯 하지 마" 하며 웃는 내게 이어진 엄마의 말이 아직까지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것만 같다.
그러게, 진작에 네가 그때 가자고 조를 때 가까운 곳이라도 가볼걸. 엄마가 너무 미안해, 약속을 늦게 지켰네.
딸은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라, 어릴 때 해외여행을 가자고 했었는지도 까먹었는데.
어린아이가 철없이 던진 말들이 엄마에게는 바늘보다 더 뾰족한 가시가 되었었나 보다.
분명 엄마의 나이는 다른 친구들의 엄마들보다도 훨씬 많았지만, 엄마도 처음 엄마가 되었으니 모든 것이 서툴렀을 텐데. 게다가 가정형 편도 좋지 못한 때에 딸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것은 엄마의 가슴 응어리가 되어 오랜 시간 엄마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그날의 나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성인이 된 이후로 1년에 2번 이상 무조건 해외여행을 가고 있다.
그때마다 엄마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어릴 때 가지 못했던 게 한이 되어서 지금 저렇게 역마살 낀 것처럼 돌아다니는 거라고 걱정하신다. 걱정으로 주름 하나가 느는 것을 지켜볼 바에는 엄마를 모시고 세상을 돌아다니자 생각하며 매년 한 번씩은 가족 해외여행을 주도하고 있다.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었을 때,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아주 잠시만이라도 그날의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헤아려보고자 오늘도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