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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Sep 04. 2020

공포의 청킹맨션과 최악의 여행

부킹닷컴 10점 만점의 4점짜리 호스텔에서 지내보신 적 있으신가요?

최악의 여행지는 어디 있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최악의 여행지는 [홍콩]이었습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홍콩은 나의 최악의 여행지였다. 그곳이 최악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내 생애 최악의 숙소를 홍콩에서 만났기 때문에. 


홍콩에서 만난 부킹닷컴 평점 4점짜리 숙소 이야기
출처 : 부킹닷컴(http://asq.kr/j56oLdr4oKP5) HK 다운타운 백팩커스 모습

때는 바야흐로 2014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무작정 스카이스캐너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출발하는 제일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 보니 홍콩행 저가항공 티켓이 있었다. 고민할 새도 없이 항공권을 결제해버렸다. 


문제는 그 뒤였다. 

항공권을 구매하고 난 뒤 숙소를 예약하려고 보니 평소에도 비싼 홍콩의 숙박비에 크리스마스 시즌이 겹쳐 1박당 최하가 30만 원 이상이었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여행비용을 마련했지만, 홍콩에서 보내는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하루에 그만큼의 돈을 숙박비로 지불할 수 있는 여건은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와 눈에 불을 켜고 부킹닷컴에서 제일 저렴한 숙소를 찾아냈다. 


그렇게 찾은 곳이 HK 다운타운 백팩커스였다. 

출처 : 부킹닷컴 內 HK다운백 팩커스 평점(http://asq.kr/j56oLdr4oKP5)

가장 큰 실수는 부킹닷컴에서 숙소를 처음 예약한다는 것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찾았던 숙소의 평점이 4점이었길래, 당연히 만점이 5점인 줄 알았다. '5점 만점 중에 4점이면 꽤 괜찮은 곳 아냐?'라고 생각하며 1박당 3만 원에 결제했다. 


결제하고 나서야 알았다. 

부킹닷컴의 만점은 5점이 아닌 10점이었다는 것을. 그래도 부킹닷컴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사진을 보면서 생각보다 잘만한 곳일 거야 라며 스스로 위로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Early-Check in 한다고 이야기했던 터라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왔다. 겨울임에도 습하고 더운 홍콩의 열기가 뺨을 데우고, 앞으로 펼쳐질 여행의 설레움이 마음을 간질였었다. 


나, 장기 팔리진 않겠지?

   

숙소를 보자마자 든 생각. 

출처 : 청키맨션의 모습 (https://zolimacitymag.com/the-world-inside-a-building-chungking-mansions/)

도착하기 전까지는 몰랐던, 숙소의 위치는 바로 중경상림의 촬영지로 유명한 "청킹맨션"이었다. 홍콩의 게스트하우스 집합소라는 명성답게 백여 개의 숙소가 위치해 있는 곳이었지만, 겉모습은 마치 할렘가 같았다. 새벽 5시에 도착하자마자 본 풍경이란, 입구부터 홍콩에 일하러 온 것처럼 보이는 아프리카계 남자들이 흰 눈으로 나를 구경하는 모습이었다. 


마음을 다잡고 들어간 숙소 안은 더 지옥이었다. 

출처 : HK 다운타운 백팩커스 내부 모습(https://www.booking.com/hotel/hk/hk-downtown-backpackers.ko.html)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으며, 침구는 언제 교체했는지 누런 자국이 가득했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방안을 가득 매워 숨 쉬기 조차도 어려웠다. 게다가 청소는 거의 하지 않는 듯, 모든 구석구석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부킹닷컴에 보이는 이미지에 완벽히 속은 나였다. 


숙소에 대한 충격으로 일주일간의 홍콩 여행 동안 기분이 좋지 못했었다. 

숙소에 머무르기 싫지만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숙소로는 옮기지 못한 채 매일 아침 가장 빨리 나와 가장 늦게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홍콩에서는 내내 걸어 다닌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최대한 많이 걷고 많이 보면서 다니느라 사실 일주일간 홍콩의 랜드마크는 다 가고 마카오까지 갔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홍콩 여행 이후로 여행을 준비할 때 단 하나도 쉽게 결정하지 않고 무조건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만약 숙소가 너무 저렴하다면 그 근처에 공사를 하거나 숙소에서 벼룩이 나오진 않았을지, 여행 루트 중에 방문하는 날 휴무 거나 너무 붐비는 장소들이 있는지, 맛집이라고 하지만 진짜 맛집인지 등. 덕분에 홍콩을 제외한 나머지 20개국은 무사히 그리고 안전히 여행할 있었다. 


왜 그때는 가난했을까. 

조금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저 숙소는 가지 않았을 테고. 내 홍콩 여행은 망치지 않았을 텐데. 돈이 없어서 저런 숙소에서 매일 각종 벌레, 쥐, 동양인 여자를 희롱하는 외국인들을 봐야만 했던 23살의 나를 28살의 내가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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