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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Apr 05. 2020

리스본, 그곳에 반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인생 에그타르트부터 세상의 끝까지 품은 곳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끝나기 일주일 전, 이후의 계획을 세워야 했었다.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참가할까, 겨울 북유럽 여행을 떠날까 행복한 고민 속에서 갑자기 스페인 여행 때 시간이 부족해 가지 못했던 포르투갈이 떠올랐다. 검색해보니 겨울엔 우기라 여행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으나, 이미 네덜란드 날씨로 인해 추위나 비바람엔 단련이 되어있다 판단했다.


포르투갈=리스본이라 생각했던 그 당시의 나. 그래서 리스본으로 떠났다.

리스본의  밤거리 모습

밤 9시,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은 칠흑 같은 어둠만 남아있었다.

비가 왔었는지 빗물이 잔뜩 고인 길 위를 캐리어를 끌며 걸어가다가 문득 혼자 밤길을 걷고 있음에 겁이 났다. 호스텔에 다다랐을 때, 저 멀리 환하게 새어 나오는 트램과 가로등 불빛을 발견하곤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게 짧은 리스본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리스본의 명물, 에그타르트를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리스본 원조 에그타르트 가게 Pasteis de Belem 

리스본 제로니모스 사원 옆에 1837년부터 이어진 에그타르트 맛집 'Pasteis de Belem'에 들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는 것에 한번 놀라고, 그 가격에 두 번 놀랐으며, 마지막으론 처음 먹어보는 부드러운 맛에 놀랐다.

시나몬 잔뜩 묻힌 1.05 유로의 맛

가게 안에서 먹기 위해 기다리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한 개를 테이크 아웃해 가게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같이 먹었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먹자마자 가게로 다시 들어가 오랜 시간 기다린 다음 카푸치노 한잔을 새로 시켜 진득하게 앉아 에그타르트를 음미했다. 역시. 달랐다. 


그건 아마도 기다림의 맛이었을까. 

그 후 틈날 때마다 가게에 들린 덕분에 어느새 가방은 에그타르트 박스로 가득 찼다. 그렇게 인생 에그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며 트램을 타고 리스본 한 바퀴를 돌았다.

리스본은 생각보다 도시 크기가 작아 시내를 도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리스본 이곳저곳을 가보고 싶어 구글맵에 의존한 채 트램에 올라탔을 때, 승차/하차하는 법 조차도 몰라 애를 먹었었다. 낯선 이방인, 그것도 당시 리스본에선 거의 볼 수 없었던(2016년이었으므로) 동양인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신기하게만 보였던 리스본 사람들은 참 많이도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다. 

리스본 한 바퀴를 돌았던 어느 낮, 트램 안의 모습

그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리스본의 풍경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안개로 자욱했던 리스본 뒷 골목길을 지나쳤을 때, 호스텔 옥상에서 구름이 걷힌 붉은 지붕의 향연을 바라봤을 때, 우연히 들어가게 된 무료 연주회 덕분에 귀가 호강했을 때, 그리고 마침내 리스본의 야경을 마주했을 때 

깨닫고야 말았다.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나도 모르게 리스본에 반하고야 말았다는 것을.


짧았던 리스본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세상의 끝, 호카곶]으로 서둘러 떠났다.

이곳이 세상의 끝인 호카곶임을 알려주고 있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 호카곶은 리스본에서도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었다. 사실 리스본 여행 일정을 짰을 때만 해도 갈 생각이 없었던 내게, 호스텔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 여행객들이 이렇게 묻곤 했다. 

너 호카곶 갔다 왔니?

'아니, 호카곶이 대체 어딘데 왜들 이렇게 묻지?'하고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유럽인들이 대항해를 시작하기 전, 세상의 끝이라 믿던 곳이라 했다. 절벽 위에서 사람들은 가보지 못한 세상을 동경하거나 꿈꾸지 않았을까, 어떤 매력을 가진 곳이길래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걸까 궁금했다. 


도착하고 나니 이곳에 오기까지 걸린 노력과 시간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곳은 아니었다.

세상의 끝, 호카곶 절벽에 도착했을 때

그러나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절벽 위에 서있는 십자가도, 이곳이 호카곶임을 알려주는 안내판도, 최서단에 도착했음을 증명해주는 증명서 발급소도 아니었다. 절벽 위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볼 것 없는 곳임에도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여행에서 모든 순간은 다 그것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는 말처럼, 세상의 끝에 왔다는 상징성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온 여행객들은 모두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리스본 여행 마지막 날, 날씨가 너무 좋아 샘이 났다. 

'왜 하필 내가 여행한 기간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날이 좋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늦게 올걸,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또 오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언젠가 날이 좋을 때, 이곳에 온다면 그때는 리스본의 모습을 한눈에 다 담으려 노력하지 말고, 나만의 리스본의 모습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었던 리스본. 지금 가면 얼마나 달라져있을까. 언젠가 갈 수 있기를 꿈꾸면서 오늘의 리스본 추억여행은 여기서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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