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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y 02. 2021

어느새 봉미선과 나이가 같아졌다

서른의 문턱에서 '눈 떠보니 서른'을 읽고

봉미선과 동갑이 되었습니다만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가 있었다. 바로 '짱구는 못 말려'였다. 만화 속 주인공보다도 항상 주인공의 장난에 휘말려 고생하는 인물에 눈길이 갔는데, 그 인물이 바로 '봉미선', 바로 짱구의 엄마였다. 말괄량이 짱구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적어도 30대는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최근 조회 수 4백만 회를 가뿐히 넘긴 '93년생이 짱구 엄마 봉미선을 만나는' 영상을 본 뒤 내가 어느새 짱구의 엄마 봉미선과 나이가 같아져 버렸다는 것이 실감 났다.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RaDvskwwWA

출처: Pixid의 "너도 29살이야?" 93년생과 짱구 엄마의 대화 (feat. 성우 강희선)/ 꼭 한번 보세요. 감동 줄줄.


내가 꿈꿨던 서른


고등학교 2학년이던 열여덟 살의 어느 봄. 국어 수업이었나 자기 주도 학습 시간이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장래희망에 대해 짧은 글을 쓰는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멋진 삶을 살고 있을 서른 살의 나의 모습에 대해 상상하며 정성스레 글을 써냈다. 글 속에서 나는 외교관이 되어 자유롭게 전 세계를 누비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살고 있는 서른 살의 커리어우먼이었다. 친구들 앞에서 그 글을 큰 소리로 읽으며 반드시 꿈을 이뤄 진짜 그렇게 살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었다. 

출처: https://jjalbot.com/jjals/Q54BKehvN (무한도전) /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로 말할 걸.


현실, 서른의 문턱에서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고, 외교관을 꿈꾸던 여고생이었던 나는 부모님의 권유로 광고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게다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여대에 들어오게 되어 똑똑하고 자기주장 강한 여자들 속에서 4년간 고군분투하며 나름대로의 생존 기술을 습득한 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시절이 끝난 후 취업하여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어느새 직장인 4년 차이자 서른의 문턱에 서 있는 29살의 평범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서른은 무언가 다른 삶일 줄 알았는데, 내가 꿈꾸던 서른은 이런 삶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기대보다 훨씬 평범한 어른이 된 것 같아 서른이 다가올수록 점점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출처: https://theqoo.net/square/1456848433 / 잘 가라.. 20대 여...


눈 떠보니 서른


그러다가 최근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이십 대 후반을 위한 추천 도서 선반에서 '강혁진' 작가님의 '눈떠보니 서른'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강혁진' 작가님의 이력을 확인해보니 '월간 서른'이라는 30대를 위한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으신 대표님이었다. 이력만 보고 있자니, 누구보다 서른을 위한 뼈 때리는 조언을 잘해줄 것 같은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났다.


게다가 '인생의 변곡점을 건너고 있는 30대를 위한 34가지 조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는데, 그 무엇보다도 이 부제에 강하게 끌려 어느새 책을 구매하고선 바로 근처 카페에 달려가 첫 페이지를 넘겼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91158512088


서른을 위한 조언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 서른을 코 앞에 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필요한 조언이 가득한 책이었다. 부제에 나와있었던 '인생의 변곡점을 건너고 있는 30대를 위한 34가지 조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조언은 첫 페이지 첫 장에 실려있었다. 

첫 번째 조언: 부자가 되기 위해 일하지 말 것


주식이니, 비트코인이니, 스마트 스토어이니, 투잡이니 온 나라가 돈을 벌기 위해 떠들썩 한가운데 작가의 이 같은 조언은 현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첫 페이지임에도 집중해서 읽었다. 그러다가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돈은 따라오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다시 말해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고, 유튜브를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유튜브가 재밌어서 구독자를 모으다 보면, 스스로를 위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과정의 끝에  결과물로써 돈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


서른을 앞두면서 무언가 이대로 20대가 끝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작년 말부터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겠다고 욕심을 냈었다. 그러다 보니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문만 듣고 주식에 뛰어들었다가 마이너스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얻게 되었다. 대참사였다. 유튜브가 돈이 된다고 해서 또 찔끔, 비트코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소식에 또 찔끔 발만 담그다가 끝나버렸다. 돈은 과정의 결과물일 뿐인데. 그 사실을 망각한 채 목적과 결과를 뒤바꿔 살고 있던 내 뼈를 때리는 조언이었다. 


아쉬웠고, 잘했고, 잘하고 싶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대부분 30대 만을 위한 것이 아닌 20대들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20대 중반에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친구들보다도 아주 약간 성숙한 20대 후반을 보내지 않았을까. 


20대를 돌이켜보면 어떤 건 아쉽고, 어떤 건 잘 해낸 것 같아 뿌듯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살았던 것이 아쉽고, 잘한 것이라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 덕택에 20대 초반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화의 다양성을 몸소 경험한 것이다.  


20대 끝자락에 서있는 이제는 잘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일도 더 잘하고 싶고, 운동도 더 잘하고 싶고, 공부도 더 잘해서 석사도 따고 싶고, 책도 내고 싶고. 정말이지 잘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밤도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20대가 아쉬운 게 아닐까. 


잘하고 싶은 것들을 먼 미래에 하려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해보면, 1년 뒤 서른의 나는 지금보다도 '잘 해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출처: 내 사진첩( 인상 깊은 조언이 나올 때마다 책장을 접었더니 거의 모든 페이지가 접힌 듯)

이만 마치며


오늘 엄마와 카페에서 티타임을 갖는데 엄마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인생을 두 번 산다면 어떨까. 한 번은 그냥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이미 한번 살아본 인생이니깐 두 번째로 살 땐 최고로 멋진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거지"


엄마 말처럼 인생을 두 번 살아보면 얼마나 좋을까.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삶이기 때문에 더 잘살고 싶고, 더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서른이 된다는 것이 무섭기도 하면서 앞자리 3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숫자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조바심이 났었던 것 같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오히려 서른이 기다려진다. 조언들을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서른 살의 내 앞엔 또 어떤 삶이 펼쳐져있을지 기대가 된다. 이번에는 꿈을 꾸지만 말고, 반드시 이뤄내기 위해 진심을 다해보려 한다.

출처: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 / 서른이여 어서 오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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