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결말은 결국 살아봐야만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안 읽은 사람이 없게 해 주세요

by 남수돌

한 권의 책만 챙길 수 있다면


갑자기 내일 세상이 멸망해 딱 한 권의 책만 갖고 방공호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나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The Midnight Library)]을 품 안에 껴안고 서둘러 길을 나설 것이다. 한번 읽은 책은 정말 재밌거나 혹은 감동적이거나 삶에 있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다시 펼쳐보지 않는 성격인데 작년에 산 이후로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 다섯 번 이상 읽어도 늘 읽을 때마다 좋다. 이전에 밑줄 쳤던 구절도 아닌데 새롭게 마음을 두들기고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분명 다 알고 있는 줄거리임에도 빨리 결말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겨난다.


한참 이 책에 빠졌을 때 친한 지인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면 빌려주거나 사 줄 테니 제발 읽어봐 달라고 하소연을 한 적이 있었다. 신간도서로 나오자마자 푹 빠져서 읽었는데 그 후로 금세 베스트셀러에 올라가고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을 보니 책을 보는 내 눈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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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


이 책의 작가 매트 헤이그는 과거 우울증을 앓던 환자였다. 소설을 쓰면서부터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주옥같은 책을 선물할 수 있었다. 한국에 정식으로 출간되기 몇 년 전 아마존에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원서를 읽을 자신이 없어 줄거리만 살펴보고선 '외국인들이 딱 좋아할 만한 스토리네' 하고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내 생각은 틀렸다.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스토리가 아니라 한국인을 포함해 전 세계인들이 열광할 스토리였으니깐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노라 시드'는 삶이 지루하다고 여기는 한 사람이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자 죽기로 결심한다. 이윽고 죽은 줄 알았던 순간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존재하는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가게 된다. 거기서 그녀는 과거 자신에게 한없이 친절했던 도서관 사서 '루이스 앨럼' 부인을 만나게 되고, 후회의 책을 통해 후회들을 지워나가며 '나의 인생' 속 두 번째 기회를 얻어 그토록 꿈꿔왔던 완벽한 인생을 찾고자 여정을 떠나게 된다.


완벽한 인생을 찾기 위해 그녀는 슈퍼스타도, 아내도, CEO도, 빙하학자도, 교수도, 피아니스트도, 동물보호소 직원도, 펍의 주인도 되면서 정말 다양한 삶을 산다. 하지만 후회가 남아 해보지 못했던 인생들 속에서도 완벽한 인생이란 없음을 서서히 알게 된다.

gratisography-61H-free-stock-photo.jpg 출처: Photo courtesy of Gratisography

소설 속 그 구절


외국 소설이 한국에서 사랑받으려면 보통 스토리가 정말 탄탄해서 재미있거나, 번역한 사람이 정말 매끄럽게 번역을 잘해서 한국 소설 같아야 하는데 이 소설은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췄다. 특히 소설을 읽으면서 전혀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대사 하나하나가 참 번역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정말 모든 문장이 명언이고 가슴을 울렸는데, 특히 다음의 두 개의 구절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걸 목표로 하다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나 자신이 되는 걸 목표로 하세요. (이하 생략) 가장 '나다운 나'가 되는 걸 목표로 하세요. (138 page)


주인공 '노라 시드'의 후회 중 수영을 그만두기로 선택했던 것을 지우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다녔던 강연 연상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기 계발을 위한 TED 강의 속 한 구절처럼 보였으나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선 이 책을 보다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문장은 없음을 깨달았다. '나다운 나'가 되는 것,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꿈을 살려고 노력하지 말 것. 그것이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가장 명쾌한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날 보고, 그들이 원하는 온갖 다른 모습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어렵지 않다. (이하 생략)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살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후회 그 자체다. (391page)


그녀가 SNS에 남긴 '내가 배운 것들'이라는 글을 보고 있자면 20대를 살아오면서 했던 수많은 나의 후회들이 떠올랐다. 정시모집 때 다른 대학에 원서를 내볼 걸, 국어국문학과로 전과를 할 걸, 그 사람을 만나지 말 걸, 교환학생을 다른 나라로 가볼 걸, 취업준비를 더 일찍 시작할 걸, 시간이 주어졌을 때 더 많이 여행해볼 걸. 후회는 후회를 남기고,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며 놓친 기회를 탓하느라 바쁜 사이에 내 사람이라고 여기던 이들 사이에서 나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문제는 후회 그 자체였다.

KakaoTalk_20220115_005819536.jpg 출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책(포스트잇으로 읽을 때마다 추가되는 감동적인 구절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으리라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아보지 않고서는 불가능을 논할 수 없으리라'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동안의 후회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후회 때문에 낭비한 시간이 아까웠지만, 후회보다도 불가능을 먼저 논했던 지난날 그로 인해 놓칠 수밖에 없었던 기회들이 더 아까웠다. 그중에서도 다른 이들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느라, 하기도 전에 불가능할 거라 미리 단정 짓고 포기한 나의 진짜 꿈이 그리웠다.


어린 시절부터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 몇 번 상을 탈 정도로 글 쓰는 것이 좋았으면서도 건강이 좋지 않은 부모님을 보며 의사가 되고 싶었다. 수학은 좋아했지만 과학에 소질 없었던 나는 스스로 의사는 못 되더라도 돈 걱정 없이 부모님의 의료비를 낼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외교학과를 꿈꿨다. 그러나 대학에 지원할 때쯤 이 모든 것들은 부모님이 바란 길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길도 아니었음을 깨닫고 부모님의 뜻대로 홍보광고학과에 진학해 마치 남의 인생을 살 듯 내 길이 아닌 길을 걸어왔다.


사실은 글을 계속 쓰고 싶었던 건데. 그래서 코로나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본격적으로 내 삶에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을 본 후로는 글을 쓰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더 많은 분들이 글을 읽어주시길 바라며 점차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처음에는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지만, 강의도 했고 모임도 운영해봤으며 강연에서 연사도 해봤다. 아직까진 크게 성공했다고 볼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못했다'로 끝나는 결말이 아니라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잘 해낼 것이야'라며 진행 중인 스토리가 아닐까. 결국 내 작가 인생에 불가능은 없었다. 그것을 살아보고 나니 또 해보고 나니 그리고 도전해보고 나니 알게 되었다.


이만 마치며


아주 좋은 소식이 있는데 이 책이 '어바웃 타임' 제작사에서 영화화한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소식만 들어도 팬으로서 기대되는데, '어바웃 타임' 제작사라니. 영화 속 그 따뜻한 색감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뇌리에 남는 스토리가 아직도 여운을 남기는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어떻게 영화 속에서 그려낼지 듣기만 해도 설렌다.


영화를 볼 때쯤이면 나는 삼십 대의 삶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을 텐데. 영화를 보며 후회를 떠올리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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