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의학 드라마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환자를 살리면서 인생의 큰 보람을 느끼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래, 저게 진짜 직업이고 인생이지' 싶어 무작정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자라면서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히면서 꿈은 점점 소박해졌다.
그렇게 꿈의 크기를 줄이고 또 줄여 현실 속 내게 맞추다 보니 어느새 원대했던 포부와 이상, 그리고 꿈은 현실의 나를 따라 크기를 줄이느라 너덜너덜 해졌다. 한순간도 노력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는데...최선을 다해 산 결과였다. 그마저도 대학을 졸업해 학교를 벗어나자마자 마치 정글과도 같은 혹독한 사회생활을 하느라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학 동기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나는 친구들과 회사 욕을 하고 상사 뒷담을 즐기며 내 인생에 대해 때때로 한탄했다. 며칠 전에도 2022년이 다 지나가는 마당에 올해 내가 이룬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인생이 보잘것없이 신세 한탄을 했다. 그러고선 밤이 늦어져 서둘러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문득 지하철에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막차였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기관사님의 스타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강 다리를 건너던 4호선 지하철에서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께서 남은 하루를 기분 좋고 편안하게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전 운행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있어 오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갈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출처: 조석 마음의 소리(아마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까)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이런 마음일까 싶었다. 그리고 문득 돌아봤다. 오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감에 감사를 느껴야했는데 이를 잊고 그저 불평만 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입사해 한참 일을 배울 때 나는 모든 일이 다 재밌게 느껴졌다. 내심 내가 참 재밌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남수돌씨는 참 파이팅이 넘쳐, 보기 좋아"라고 할 때 나 자신에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빠르게 불이 붙은 열정은 그만큼 빠르게 식었다. 6년 차의 나는 결국 어린 시절 내가 꾼 꿈은 어느새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가슴속에 늘 사표를 품고 다니는 그런 재미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인생의 모든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며, 꿈을 이루지 못했음에 한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닮고 싶지 않았던 재미없는 어른이 나는 되고야 말았다. 그저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인데, 재미없는 어른으로서 매일 평범하고 똑같은 일상을 견뎌야 하는 사람이 되고야 말았다. 작년 같았으면 신년을 맞이해 신난 게 올해 목표가 어떻고, 계획은 또 어떻고를 늘어놓았어야 했는데 올해는 정량화된 목표나 계획을 세울 수 없을 것 같다.
올해는 그저 재밌는 어른이 되자. 그리고 대충 살아보자.
두 개인 듯 하지만, 사실 하나의 목표. 작년까지 아등바등 살다가 제 풀에 나가떨어져 재미없는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올해는 대충 살아보려 한다. 대충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좀 더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재밌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인생이 재미없다고 술에 취해 하소연하는 시간은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