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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Feb 19. 2020

크면 당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절대 커피와 주스를 못 마시게 하셨다


키 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요, 몸에 좋지 않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대신 우유를 많이 마시라고 하셨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나는 부모님 몰래 커피를 마시곤 했고, 그때마다 엄마한테 혼나고는 했다. 내가 안쓰러웠는지 아빠는 어른이 되면 마실 수 있다며 살살 달래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나는 어른이 되길 꿈꿨다


어른. 어른이 되면 나는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어른이 되면, 엄마 아빠 앞에서 커피를 병째 들고 마셔야지' 하고 생각했던 7살이 어느덧 커서 부모님께 커피를 사드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당시에 즐겨먹던 우유가 병에 담겨있어서, 커피도 병에 담겨 파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몸이 자라나는 속도를, 마음은 따라잡지 못했나보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어른의 정의


어른을 네이버에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뜻을 확인할 수 있다.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4.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

2~3번은 아직 젊으니 패스, 4번은 평생 될 수 없는 말이니 패스하면 결국 1번이 남는다. 몸만 보면 다 자란 사람이 맞는 듯한데,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스스로 의문이 든다.


그저 그런 어른이 아닌, 커피를 병째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추억 속 내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은 늘 멋있고 굉장한 사람이었다. 점점 커가며 내가 바라는 어른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변해갔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장래희망에 대해 그림으로 설명해야 했던 어느 미술시간에 짝꿍과 서로 대통령이 될 거라 우기며 싸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중학생 때는 의사를 다룬 드라마에 흠뻑 취해, 의대에 진학하겠노라 선언하며 엄마에게 수학 과외 좀 알아봐 달라고 떼쓴 적도 있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법과 사회'라는 과목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해, 법대에 들어갈 거라고 떠벌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성인이 되었고, 나는 세상이 정의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다는 말. 아직 어른이고 싶지 않다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누군가 내 속마음을 엿보고 그대로 술술 써 내려간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눈을 떠보고 나니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나 자신도 책임지기 벅찬 내가, 내가 꿈꾸던 모습은 하나도 이뤄내지 못한 내가, 과연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되었다고 인정해버리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 힘듦을 오롯이 견뎌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퇴근길 아빠의 양손 가득 들린 꽈배기처럼, 그날의 힘들을 짊어진 아빠의 모습처럼.




그저 그런 어른이 된 것 같은 나는, 그래서 어른이 되었다 말하기가 싫다


4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시고 계신 아빠와, 아직까지도 집안일에 소홀히 하시지 않는 엄마를 보며 내가 꿈꾸던 어른의 모습은 얼마나 제한적이고, 추상적이었는지 요즘 들어 깨닫곤 한다. 결국 어른이란 멋진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일을 책임질 수 있는, 더 나아가서 진짜 멋진 어른이란 나를 둘러싼 세상, 사람들까지도 책임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더 그저 그런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어른이 될 준비도 안되었는데, 몸만 큰 이 느낌.


언젠가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대로 좋은 어른이 되었는지, 좋지 못한 어른이 되었는지는 또 그때의 나에게 평가를 맡기겠지만, 부디 좋은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만약 먼 미래의 내가(먼 미래가 아니면 더욱 좋고.) 이 글을 본다면, 제발 지금 내 곁으로 순간이동해서, 어른이 되는 AtoZ나 어른이 될 수 있는 꿀팁을 알려주고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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