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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Apr 12. 2020

한 발짝 멀어진 대신, 마음은 한 뼘 더 가까워진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힘

1월을 기억한다.

설 때만 해도 코로나19가 이렇게 확산되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우한에서 시작해 중국 전역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을 때만 해도, 전 세계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리라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2월을 기억한다.

당시 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따뜻한 봄이 오기 전까지 주말에는 되도록이면 집에 있자 가족들과 이야기를 끝낸 후였다. 분명 ‘선택’에 의한 행동이었지만, 연휴가 끝나고 상황은 달라졌다.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주가는 폭락했고, 외국인들은 서둘러 한국을 벗어나 고국으로 돌아갔으며 우리 회사는 ‘자택 근무’를 시행했다. 그때부터 전 세계에서 비자발적인 ‘외출금지’가 시작되었다.


3월을 기억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세 자릿수를 기록했을 때, 전 세계는 한국인을 바이러스 보균자로 취급했었다.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고, 어느샌가 우리나라는 무서운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한국의 대처방법, 확진자들의 감소 추세가, 한국은 더 이상 위험한 나라가 아님을 증명해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처음 탄생하던 때를 기억한다.

누가 이름 하나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하고자 공공장소 등을 피하고 사람들과 나와의 물리적 간격을 두자는 말이지, 그것이 정서적으로 멀어지자는 것이 아님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네이밍이었다.


사회적 거리를 두는 대신, 정서적으로는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나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우리집 엘레베이터에 붙여져있던 작은 쪽지

바로 우리 집 엘리베이터였다.

평소에는 몇 층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조용한 우리 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런 쪽지가 붙여져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시행 후 오랜만에 마스크 사러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쪽지 하나. 쪽지가 붙여진 위치로 보나 글씨체로 보나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일 듯싶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엔 우리 동에는 그런 아이가 없었다. 과연 누구일까.


그러다가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저 쪽지를 썼을법한 아이를 마주쳤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부끄러워졌다. 얼마나 이웃들 간의 왕래가 없었는지 우리 동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을까. 어쩌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기 더 이전부터, 우리는 이웃들과 혹은 사람들과 사회 속에서 ‘정서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덕에 요즘 오히려 예전에는 몰랐던 일상의 행복을 그리고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사무적인 대화로만 끝났을 협력사 담당자와의 통화해도 끝에 ‘건강 꼭 챙기시고 조심하세요’를 붙이게 되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과의 간격을 유지하고자 좀 더 급한 사람이, 노약자나 임산부가 먼저 탈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영업자들께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배달앱 대신 전화주문을, 점심시간에 사내식당보단 팀원들과 평일 점심 회식을 이어가고 있다.


다 같이 힘든 이 시기를 분명 우리는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

집에만 있기엔 날이 너무 좋다. 2020년 봄이 이렇게 사라지는 게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건강히 살아있으면, 매년 올해와 똑같이 꽃이 흩날리는 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헌팅 술집 대신, 클럽 대신, 봄나들이 대신, 교회 대신, 공공장소 대신 한 발짝 멀리 떨어져 있어 보자. 분명 사람들 곁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진 대신, 우리를 둘러싼 이들과 마음의 사이가 한 뼘 더 가까워졌음을 저절로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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