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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May 19. 2020

취향을 말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저는 사실... 스포를 좋아해요.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사람들 앞에서 취향을 고백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마다 손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머릿속은 새하얘진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친한 친구들 속에서, 혹은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 아니면 가족들 곁에서. 내 주위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나는 때때로 다른 사람이 된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선 먼저 다가갈 줄 아는 적극적인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사람으로 나 자신을 포장한다. 회사 동료들 앞에서는 마치 영혼이 나간 사람인처럼 단조로운 말투, 아무리 화가 나도 혹은 기뻐도 감정이 섞이지 않은, 높낮이 조차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이 된다. 그러다가 친구나 가족을 만나면 무장해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자발적 외톨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엉뚱한 행동과 아재 개그로 상대방을 웃기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와 어디에 있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취향을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저는 사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운을 뗀다면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할까. '우리가 이렇게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특이한 취향에 대해 논할 정도로 친한 사이일까.'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사회에 적응하는 생명체로 삶을 유지하고자 '적당한 취향'을 갖고 있는 '나'를 탄생해냈다. 종종 친구들과 만나 목이 쉴 때까지 근황 토크를 하며 이를 드러내고 웃는 '나'. 아주 평범한 일상에도 오늘 하루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맥주 한 캔을 따는 '나'. 딱 그 정도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나의 취향 아닐까. 


사실 나는 남에게 고백할 수 없는 이상한 취향이 있다. 

오이는 좋아하지 않지만 피클은 좋아하는 나. 

노래방은 좋아하지 않지만 코인 노래방은 좋아하는 나.

밤새 노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가끔 밤새 미친 듯이 놀아야 하는 나. 

밀가루는 좋아하지 않지만 파스타는 좋아하는 나.

친구를 만날 때, 둘보다 셋이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넷이서 만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나. 


가장 특이한 취향은 바로... 스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책을 열어 첫 장을 읽기 전, 아니 책을 구입하기도 전에 나는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네이버에서 책 제목과 함께 [스포 주의], [결말 포함]을 검색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어느 아주 친절한 블로거들이 줄거리와 결말을 스포 해주신 덕분에 책 한 권을 다 읽은 느낌이 든다. 결말이 마음에 들면 바로 구입 완료. 


영화도 마찬가지다. 

추리 영화라면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난 후 영화를 봐야 하고, 로맨스 영화라면 주인공들의 결혼식 장면인 엔딩을 장식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결말을 알 수 없다면 적어도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지 새드엔딩으로 끝날지 단서만이라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는 더하다. 

드라마가 마지막 회를 방영할 때, 나는 보기 시작한다. 요즘 핫하다는 부부의 세계도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취향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내 취향을 고백할 때면 다들 내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도대체 결말을 알고 나면 무슨 재미로 본단 말이야?'


그래.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그런데 나는 미래를 알 수 없을 때 거기서 느껴지는 불확실함이 싫다.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내 인생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만든 창작물이라면, 늘 끝은 정해져 있다. 영화라면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게 될 나는 마치 신처럼 그들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 그 점이 좋다. 스포가 금지되어있다면, 나의 선택권도 줄어들겠지. 무방비로 콘텐츠에 노출되는 것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치 변태처럼 스포 당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교묘하게 줄거리나 결말을 알려주진 않는다. 그건 피해를 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조용히 스포를 즐길 뿐. 


영화나 소설같이 내 인생의 결말도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없음을 충분히 알기에, 취향 고백을 했다간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기에 오늘도 나는 적당한 한 취향을 가진 '나'의 뒤에 서서 은밀하게 때론 음침하게 스포를 즐길 뿐이다. 그러다 보면 용기가 필요한 취향 고백에 대해선 까맣게 있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 그냥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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