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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Jun 21. 2020

결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

관계를 끊을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 

많으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이십칠 년 하고도 육 개월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알기 전과 후가 매우 뚜렷하게 구분될 만큼 나의 성격과 태도, 마음가짐이 달라져갔다. 


천성은 바뀌지 않는 거라던데.

어떤 사람과 친한 상태인지에 따라 말투까지 달라져있는 나를 보며 나는 카멜레온과 같이 상대방에 따라 나 자신을 이리저리 바꿀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었다. 


그래서 자만했는지 모른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과 융화될 수 있다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어떤 사람이든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지금 생각하자면 당시의 나는 소위 말해 나 스스로를 "인싸"로 규정하며 착각 속에 빠졌었던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 착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와는 결이 정말 달랐던 사람을 친구의 친구로 만나게 되었었다. 술 마시고 화려하게 노는 것을 좋아하던,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나와 A부터 Z까지 전혀 달랐던 그 친구를 보며 처음엔 신기한 마음에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었다. 둘이 만나는 것보다 그 친구까지 셋이 만나는 게 더 재밌을 거라 스스로 생각하며 어울리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참 신기한 게 결이 전혀 맞지 않은 사람과는 노력을 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더라.

셋이 만났을 때, 그 친구에게 대화를 건네봐도 전공부터 관심사, 목표까지 무엇하나 맞지 않는 데다가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와 달리 기분이 좋고 나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그 친구를 보며 나는 상처 받기도 했다. 

내가 감정의 쓰레기통인가


만날 때마다 나에게 감정을 한껏 쏟아내는 그 친구를 보면서 난생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으면 안 만나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그러니깐 이십 대 초반의 어릴 때의 나는 잘 몰랐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때로는 유지하는 것보다 인생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며칠간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는 일을 줄여나갔고, 지금 보면 유치한 일이지만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 60자를 과제들로 빼곡히 채워놓았었다. 누가 보면 과제에 쫓겨 친구조차도 만날 시간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바쁜 척'을 했었다.


그러고 나니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었다.

사실 나의 바쁜 척보다도 그 친구나 나나 취업 준비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더 없어지면서 멀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내 의지로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낸 첫 사례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비록 그 친구와 연결된 다른 친구와의 관계까지 끊게 되었지만 그 대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므로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 뒤로도 몇 번 결이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취업을 준비하다가, 학교 수업에서, 직장 동료로. 이제는 바쁜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았다. 처음부터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의, 그러니깐 이십 대 초반의 나라면 그래도 어떻게든 기를 쓰고서라도 일단 친해진 다음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일이 얼마나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관계를 끊어내는 일 따윈 하지 않도록 만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결이 맞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하며 그 사람과 친분 쌓기를 애당초 포기해버린다. 그 편이 훨씬 이득임을 살아가면서 점점 깨닫고 있다.


우리 모두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직장에서 만난 사이라면 좋든 그 사람이 나와 결이 맞든 안 맞든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쌓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선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기 않기 위해 노력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상대방에게도 나 스스로에게도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이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인지 아닌 사람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대신 사적인 관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관계를 쌓기 전에 그 사람이 나와 결이 맞는지 다른지는 감정을 드러내고 몇 번 이야기하면 대충 각이 나온다. 세상에는 스트레스받을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니 첫 대화에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내 인생에 외적인 성공에 도움을 줄만한 사람이든 뭐든 혹은 친구와 엮여있는 또 다른 친구든 시작조차 하지 마시길. 


행여나 다칠 수 있는 마음을 관계를 시작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예방하시길. 

시작했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몸소 시행하시길. 관계를 끊을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관계가 있음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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