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맥시멈라이프
그래 나는 이제 미니멀라이프의 삶을 살아가겠어!
처음 자취를 선택했을 때만 해도 나는 결심했었다.
작디작은 열 평 남짓한 이 월세방에 필요 없는 짐은 절대 들이지 말자고.
그 결심은 이사 온 지 만 하루 만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집 한편에 자리 잡은 벽걸이 TV 때문이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벽걸이 TV는 자리만 차지할 뿐이라고 부동산 사장님께 TV를 벽에서 떼면 안 되냐고 사정했었다. 그런데 이사 오고 짐을 풀자마자 TV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혼자 사는 집에 [사람 사는 느낌]을 불어주는 것.
부모님과 같이 살던 공간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한 TV의 역할. 이토록 찬란하고 멋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줄이야. 마치 공산품을 멀리하며 자연으로 돌아가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TV를 멀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아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 자취를 시작했으면서도 외로움을 즐기는 것은 아직 쉽지 않은 법.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내 주위에서 느껴지는 공백감을 TV 속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집]이라는 공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어쩌면 우리 집이 포화상태가 되어도 이 TV만큼은 포기할 수 없게 될 듯하다.
TV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식탁만큼은 사지 말자 생각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마저도 이사온지 일주일 만에 나에게 좌식생활은 좋지 못한 것임을 절실히 깨닫고선 어느새 오늘의 집에서 정신없이 식탁을 고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식탁은 자취 라이프에 있어 중요한 포지션을 담당한다.
필요에 따라 식탁은 작은 작업대도 되었다가 손님들이 오면 훌륭한 집들이 한상이 차려지는 맛의 공간이기도 하다가, 어두컴컴한 저녁 홀로 술 한잔과 안주 한 젓가락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도 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우리 집 세간살이 중 식탁을 고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 같다. 덕분에 이렇게 훌륭한 식탁을 건졌으니 감사히 여겨야 하려나.
마지막으로 내 미니멀라이프를 망친 것, 그것은 놀랍게도 거울이었다.
이쯤 되었을 때 내 친구들이 만약 이 글을 읽는 다면 내게 이런 말을 했을 것 같다.
너 사실 미니멀라이프는 핑계고 사고 싶은 건 다 사들이고 있는 거지?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무슨 말이고 하니.
미니멀라이프로 살고 싶은 건 맞는데 그동안 자취 로망으로 간직했던 자취 템들을 사들이는 건 본능에 의해 치러지는 의식 없는 행위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거울은 산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본가에도 내 방에는 거울이 있다. 눈으로 자신의 몸을 체크하는 [눈바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 이케아에서 하나 장만했었다. 그러나 그 거울은 벽에 고정되어 있기에 내가 보고 싶은 각도로 나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랬기에 우리 집이 좁아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거울만큼은 꼭 들이고 말겠다며 [오늘의 집]과 각종 포털에 최저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신나게 서칭 했었다.
그 결과 어느새 우리 집에는 좁은 방과는 어울리지 않은 이동식 원형거울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TV와 식탁과 거울을 사랑한다.
이 모든 것들이 분명 내 미니멀라이프를 일찌감치 포기하게 만들었을지 몰라도 결국 사람 사는 곳=내가 원하는 것으로 채워 넣는 공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미니멀라이프는 다음 생에 양보하고, 이번 생에는 나를 위해 이 공간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고민하는 삶을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