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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Sep 17. 2020

북서향 집에서 산다는 것은

때론 남향보다 좋습니다.

이 집은 그래서 남향이에요, 북향이에요?


처음 서울에 오피스텔을 구할 때 부동산 사장님들을 놀라게 하는 나만의 필살기가 있었다. 바로 '나침반 어플'이었다. 회사 동기가 거주 공간에는 해가 들어야 한다며 무조건 남향인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는데 그때 나침반 어플을 추천받았었다. 동기 덕분에 눈에 불을 켜고 남향집만 찾아다녔고 나침반 어플 덕택에 사장님이 거짓말 치는, 이를테면 철저하게 북향임에도 남서향이라고 이야기하시던 사장님들의 술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출처 : 플레이스토어 (나침반 앱 :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app.melon.icompass&hl=ko)


그런 내가 국 고른 건 북향집이었다.


한창 집을 보러 다니던 때는 더운 여름이 막 시작되는 6월이었다. 이사 시즌을 약간 빗겨나간 덕분에 남향을 고집한 결과 사람들이 살기 꺼려하는 최고층 아니면 융자가 많은 집 밖에 매물이 없었다. 예전에 드라마로만 볼 때는 최고층에 살면 세상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좋을 줄 알았는데 실제론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더운 데다가 옥상이랑 가까워 담배냄새가 들어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북향집 중에서도 가장 조건이 좋은 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출처 : 내 사진첩(이 많은 집 중 내 집은 없네)


북서향, 그것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답안


북서향이라. 남향 중에서도 늘 남동향만 고집하던 내게 북향이란 새로웠다. 자고로 인간이라면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북서향 집은 이 모든 것이 반대라는 것을 친절하신 부동산 사장님 덕택에 알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흐릿한 하늘이 나를 맞이해주고 저녁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 여름에는 찜통더위로 고생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봤을 때 사장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집을 보자마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나는 결국 이 집을 계약하겠구나.'

출처 : 내 사진첩(저녁노을이 우리 집에 찾아온 어느 초가을날의 모습)


이 집으로 계약할래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전에 살던 세입자 분께서 여자분이셨고 집을 깨끗하게 썼으며 법인에서 관리하는 집이라 융자가 전혀 없고 전입신고가 가능하던 점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그보다 저녁 무렵 집을 보러 갔을 때 전세입자 분의 침대 머리맡으로 초여름의 저녁노을이 산산이 부서지며 내리쬤을 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집을 보자마자 5분 만에 계약 의사를 밝혔고 두 달 동안의 발품팔이를 끝맺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되네요.


계약 후 마음 한편에서 계속 걱정 공장이 풀가동되었다. '남동향 집이 아니라 북서향 집이라니' '여름에 찜통더위라는데 파주 살던 내가 그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 비염이라 에어컨을 잘 틀지 않고 살기에 곧 다가올 더위와의 싸움에 시합 전부터 진 느낌이 들었다. 이삿날은 빠르게 다가왔고 걱정은 부모님께까지 번져 세 식구가 밥상머리에 앉아 "지금이라도 계약을 깨고 남동향 집을 알아봐야 한다"vs"남동향이나 북서향이나 에어컨 틀고 살면 된다"로 열띤 공방을 펼쳤다. 결국 계약을 깨지 않고 북서향 집에서 첫 자취 라이프의 서문을 열 수 있었다.

출처 : 내 사진첩(초가을날의 우리 집 유리창에서 바라보는 서울 하늘은 정말 멋지다)


북서향도 생각보다 괜찮더라.


약 한 달 넘게 북서향 집에서 살아본 소감은 한마디로 "북서향 집도 살만 하더라!"

물론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등 뒤로 오롯이 받아 몇 번의 찜통더위를 겪기도 했다. 그럴 땐 비염 걱정 없이 에어컨을 켰다. 생각보다 비염이 더 심해지지는 않았다. 이른 아침에 햇살이 내리쬐지 않으니 충분히 잘 수 있다는 것, 북서향이다 보니 집 앞이 아파트로 가로막히지 않았다는 것, 와인을 마시며 저녁 주황빛 노을이 우리 집을 가득 채우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북서향 집의 장점임을 '살아보니' 저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북향이든 남향이든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남들과 똑같은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에 부합되는 집이어야 한다는 사실. 어떤 사람에겐 깨끗한 집이 그 조건에 부합될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지하철역 도보 5분 내외가 그 조건에 포함될 수 있다. 남동향을 고집하였지만 북서향에 살아보니 북서향 집도 매력적임을 알게 된 나. 역시 경험이 중요하다. 뭐든 경험해야 아는구나. 다음 우리 집은 어떤 집일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남향이든, 북향이든, 남동향이든, 북서향이든 매력적인 장점을 품은 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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