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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Sep 24. 2020

실평수 6평 오피스텔의 가구 배치

Feat. 집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계약면적 10.5평, 실평수 6평. 우리 집의 이야기다.


모든 오피스텔이 그러하듯 코딱지만 한 공간 속 주방기구는 빌트인이라는 이름으로 집안 곳곳에 숨어있다. 이곳으로 이사 왔을 무렵 독립시기가 비슷했던 고향 친구가 놀러 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희 집은 냉장고가 어디 있지 하면 찬장에 숨어있고, 식탁을 찾고 있자면 벽에서 튀어나온다'라고 '찾는 재미가 있는 집'이라는 명언을 날리고 돌아갔다. 그래, 모름지기 좁아터진 이 집구석에 찾는 재미라도 있으면 다행이겠지 싶었다. 

출처 : 내 사진첩(지금 보이는 사진 속에는 냉장고, 냉동고, 식탁, 찬장, 옷장, 보일러실이 숨어있다.)


어떤 가구를 살까 고민하는 것은 사치였음을 깨달았다.  


이사 오기 전, 각종 인테리어 잡지와 집 꾸미기 어플, 인테리어 유튜버들의 Vlog를 보면서 우리 집에 잘 어울릴 만한 가성비 좋은 가구들을 찾아냈어다. 그런 다음 3D Planner 사이트를 통해 가구 배치 시뮬레이션을 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우리 집'이라 말하고 '우리 방'이라 읽어야 할 것 같은 실평수 6평의 오피스텔은 내가 원하는 가구들을 품기엔 크기가 너무 작았다. 가상의 공간에 침대 하나 놓았을 뿐인데 집이 꽉 차는 느낌이 들어 이십칠 년 만에 과감히 침대 프레임을 사지 않기로 결정해버렸다. 

출처 : 3D planner(https://floorplanner.com/, 내 집이 이것보다 약간 큰 것 같다.)


우선 나의 삶에 꼭 '필요한' 가구만 사야 했다. 


가끔 본가에서 자고 오는 경우가 있었기에 내 방에 있던 가구를 이곳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다 새로 사야 했었다. 프레임 없는 침대를 사기로 결정했던 날, 내 삶에 꼭 필요한 가구만 사기로 다짐했다. 꼭 필요한 것이라면 타협하지 않고 무조건 사자는 심정으로 가구를 골랐다. 


처음 독립을 결심한 이유는 퇴근 후 길 위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와 글을 쓰거나 공부하면서 여유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빌트인으로 마련되어있는 접의식 식탁보다는 노트북, 책, 공부할 거리를 모두 올려놓을 수 있는 넓은 테이블이 필요했다. 


대신 책장은 원목 신발정리대를 활용해 침대맡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사이즈로 구매했다. 재택근무로 인해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해야 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의자 중에서도 안락의자를 선택했다. 확 찐자가 되기 싫어서 아침마다 눈바디를 체크하고자 거울까지 사고 나니 더 이상 자리도, 사고 싶은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구매 목록]

프레임 없는 침대(깔개+매트리스)

1000*600의 식탁 겸 공부책상 겸 작업대 겸 반타원형 테이블과 심신을 달래줄 안락의자

머리맡에 둘 수 있는 작은 책장

매일 눈바디로 몸을 체크할 수 있는 타원형의 거울

출처 : 내 사진첩(미니멀리스트를 지향했으나 지금은 맥시멀 리스트가 되어버린 나의 집)


결국 답은 가구 배치였다. 


주문했던 가구를 하나둘씩 받아 집안을 채우며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자투리 공간을 확보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테트리스 게임하듯이 가구들을 집 안에 놓을 생각만 헀지, 적절하게 '가구 배치'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게 낭패였다. 


#첫 번째, 집 안에 가구를 놓기만 했던 시절

출처 : 내 사진첩(이땐 정말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매트리스 아래에 둘 요량으로 산 깔개가 예상보다 가로나비가 넓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테이블과 일렬로 놓기에는 오피스텔의 가로나비가 좁아서 깔개 위로 테이블 다리를 걸쳐 두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테이블의 균형이 맞지 않아 사진처럼 테이블을 창문 가까이로 옮기고 매트리스를 안쪽 TV 앞으로 더 끌어당겨야 했었다. 그럼에도 자투리 공간이 없어서 옷장을 열려면 매번 테이블을 움직여야 했으며 접의식 테이블을 빼서 쓰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두 번째, 가구 배치를 시도하다.

출처 : 내 사진첩(우리 집은 계속 발전 중이다.)

도저히 가구를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어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임의로 공간을 나누어 봤다. 창문 쪽의 공간을 침실처럼, 테이블이 있는 공간을 거실처럼 쓰고자 침대와 테이블 사이에 안락의자와 책장을 두었다. 단순히 일렬로 놓으려던 가구를 앞뒤로 배치했을 뿐인데 진짜 침실과 거실이 생긴 것처럼 분리형 원룸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침대와 테이블을 벽 쪽으로 붙인 덕분에 공간이 한결 여유로워져 홈트레이닝을 위한 매트와 운동기구까지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 건 단지 가구 배치였을 뿐인데.


사진으로만 봐서는 공간의 크기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짐을 체감할 수 없겠지만 실제로는 더 큰 평수의 오피스텔로 이사 온 느낌마저 들었다. 참 신기했다. 내가 한 것은 단지 가구 배치였을 뿐인데. 가구 배치만으로도 공간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공간만큼이나 마음도 여유로워져 이 작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출처 : 내 사진첩(여유로워진 집만큼이나, 내 삶도 여유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우연히 [신박한 정리]라는 연예인들의 집을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정리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달라진 정돈된 집을 보며 행복해하는 출연진들의 모습 속에서 처음 우리 집의 모습이 생각나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출처 : TVN 신박한 정리 (http://program.tving.com/tvn/thehousedetox)

집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면, 나를 위해서라도 가끔씩 집을 둘러보며 정리하거나 가구 배치에 변화를 주는 것은 어떨까. 우리 모두는 이미 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행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같이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soodolnam/83

https://brunch.co.kr/@soodolnam/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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