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는공간에 있으면 말이죠
2020년 2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살면 어떨까. 28살이면 이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때가 아닐까. 당시 공교롭게도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흔들면서 외출에 대한 부모님의 규제가 더 심해진 가운데 회사와 집만 오고 가는 생활에 실증을 느꼈던 나는 독립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독립을 마음먹고 부모님 설득을 끝냈을 때가 4월이었는데, 집을 찾는 데 생각보다 오랜 걸린 나머지 6월이 되어서야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을 계약할 수가 있었다. 그때 집을 찾는 데 나름 기준이 엄격했기 때문에 나침반 어플까지 켜가면서 '남향'을 외쳤지만 결국 적당한 월세를 찾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도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고, 오피스텔이다 보니 보안도 좋은 편이라 처음에 혼자 사는 것이 그리 겁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현실이 되니 종종 새벽에 작은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잠에서 깨기 일쑤였고, 한 밤 중에 이웃집의 문 여는 소리에 우리 집인 듯싶어 놀란 마음을 몇 번 쓸어내려야 했었다. 해외여행할 때는 새벽에도 혼자 슬리핑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을 만큼 대범하다고 스스로 믿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천상 개복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혼자 사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이었는데, 마음이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면 더운 여름날 맥주 한 캔을 까도,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는지,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님의 걱정 폭탄 속에서 마시는 것을 포기해야 했는데 혼자 살다 보니 그러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내가 맥주를 먹고 싶으면 맥주를 까고 소주를 마시고 싶으면 편의점에 들려 소주 한 병을 사도 뭐라 하지 않는 세상. 내가 이뤄낸 작은 나만의 세상에서 가능한 일들이었다. 게다가 서울 사는 친구를 불러 한밤 중에 놀다가 들어와도, 늦잠 자고 싶어 오후 늦게까지 늘어지며 주말 내내 잠을 자도 누구 하나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리도 좋은 일인지 예전엔 몰랐었다. 아마 알았더라면 더 일찍 더 어린 나이에 독립하려 했겠지.
계속 좋을 줄 알았는데, 독립한 지 6개월쯤 되었을 때 혼자 산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가족과 같이 살 때면 우울한 날에도 나를 걱정해주는 가족 덕택에 곧 기운을 차렸던 것 같은데, 지구의 중력이 온통 내 어깨에 몰린 양 하루가 버겁고 힘들 때면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힘듦을 견뎌내야만 한다는 사실이 버거워 독립을 잠시 후회하기도 했었다.
혼자 살면서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데, 그로 인해 수반되는 외로움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진지하게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등 떠밀지 않고 스스로 독립을 선택했다는 데 책임을 지고 싶어 버텼고 드디어 10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혼자 사는 것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과장님이 몇 년 전 결혼할 시기를 알아차리는 법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과 노는 것도 지겹고 혼자 지내는 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가 바로 결혼할 때라고 했다. 그때는 가족과 함께 살던 때라 그 말이 와 닿지 않았지만, 독립하고 나니 과장님이 이야기하던 그때가 멀지 않은 미래에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1인 가구의 삶이 생각만큼이나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면서 살아나간다는 사실은 여전히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 언젠가 결혼할 때를 깨닫게 되기 전까진 이 1인 가구의 삶을 정말 잘 이어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제 어느덧 7월이면 이 집과의 계약기간도 끝난다. 나름 첫 독립을 이뤄낸 곳인 만큼 애정 하는 공간이었는데, 집을 더 넓히고 싶은 생각이 들어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생활비나 월세 때문에 집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여전히 20대 끝자락에 누리고 싶은 자유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에 서울에 홀로 남아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단물까지 쪽쪽 빼먹기로 했다.
다음 나의 애정하는 공간은 어디가 될지 이제 바쁘게 찾아봐야겠지만, 그마저도 기대가 된다. 다음 나의 애정하는 공간에선 어떤 글을 쓸 수 있게 될까. 몹시 기다려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