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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Sep 19. 2020

엄마는 내게 집안일하지 말라했다.

가르치기 싫었던 엄마의 마음

어렸을 때 유독 좋아하던 장난감이 있었다.


그것은 콩순이의 '주방놀이 세트'였다. 주방기구와 모형 식재료로 요리를 하며 엄마놀이를 할 수 있는 그런 장난감이었다. 부엌에서 매일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장난감을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 집안일하느라, 나를 돌보느라 정신없는 엄마를 보며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서 집안일을 도와줄 수 있는 딸이 되고 싶었다.  


그 나이가 되었을 무렵, 엄마로부터 집안일을 금지당했다.


생각해보면 초등학생 때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해보는 숙제가 있었을 때, 엄마는 '어린애가 무슨 집안일이냐며' 아이들에게 이런 숙제를 시킨 학교를 비난했었다. 고등학생 때 이따금씩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하고 용돈을 받는다던 친구들 앞에서 그 쉬운 청소기 조차도 돌려본 적이 없는 나는 '과잉보호' 혹은 '특이한 집' 자식 취급을 받곤 했다. 나는 집안일 한번 해보지 못한 채로 성장했고, 엄마는 남들 앞에서 나를 소개할 때, '마흔에 얻은 자식이라 집안일 한번 시키지 않고 귀하게 키운' 딸이라고 수식어를 붙이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렇게 나는 귀한 딸로 자랐다.


나 대신 아빠가 주말에는 집안일을 가장 열심히 했다. 가끔 집 대청소가 필요한 날이면 내가 학원에 가 있거나 외출했을 때 엄마는 아빠랑 서둘러 청소를 끝내버렸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간단한 요리조차 할 수 없도록 부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이제 어른인데'라는 반항심리가 생겼었다. 집안일 같은 건 쉽게 할 수 있는 어른임을 부모님께, 아니 엄마에게 보여드리고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에 매진했다. 레스토랑 서빙 알바, 결혼식 하객 알바, 카페에서 커피 제조, 도서관 사서, 아웃렛 명품관 직원, SPC브랜드 매장 점원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젊어서 고생' 사서 했다.

※ 실제로는, 고생은 글쎄. 젊어서도, 늙어서도 될 수 있는 한 피하는 게 좋은 게 '고생' 인 듯싶다.


집에서 귀하게 키우면 뭐해.


밖에 나가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당시 엄마는 내게 속상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마냥 아기 같아서, 칼이라도 잘못 써서 다칠까 봐, 못 미더워서 내게 집안일을 맡기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엄마 나이 15살 때, 엄마의 엄마, 그러니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거의 막내로 태어난지라 언니, 오빠들은 모두 결혼해 제 살길 찾느라 바빴고 엄마는 나머지 동생들을 위해 일찍부터 집안일을 했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그 당시 엄마는 이런 결심을 했었다고 했다.

나는 딸 하나만 낳아서 나처럼 손에 물 묻히지 않고 귀하게 키워야지

그런 엄마의 결심은 이뤄져 나 하나로 자식은 만족해야 했고, 본인의 가치관과 부합하는 남자인 우리 아빠를 만나 나를 귀하게 키우는 데 가장 집중했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집안일의 'ㅈ'도 모르고, 요리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다.


딸이라고 엄마의 집안일을 도와줘야만 하는 건 아니야.


딸이라고 집안일을 도와줘야 하고, 아들이라고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되는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게 엄마의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가끔씩 '아들'이라 집안일을 못하게 한다거나 '딸'이라 제사나 김장 때 자신의 일을 돕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한 아주머니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내게 말하곤 한다.  


엄마, 그래도 엄마 딸은 이제 '어느 정도' 집안일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혼자 사는 집인데도 청소며, 빨래, 요리,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등 해야 할 집안일이 태산 같은데 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요즘에 유튜브를 보며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어렵다. 엄마 말처럼 '시집'가면 절로 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란 것을 이번 첫 독립생활에서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어렵다. 집안일은 참 어렵다. 날 때부터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태어나는 건 아닌데. 이 어려운 집안일을 엄마는 어떻게 혼자서 척척 해냈을까. 집안일을 시키지 않으려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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