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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숲

병원 원예수업 - 설날에 만드는 테라리움

by 숲배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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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절 수업 요청 - 두마리 토끼는 잡지 못한다.

명절 전 주에

병원 담당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선생님 설명절에 수업하실 수 있으세요?”


올해 설은 조용히 지나가게 되어

가능하다고 말씀드렸다.

지난주 꽃꽂이 수업을 만족하셔서

부담감이 있었다.

환자분들은

공기정화에도 관심이 많으셔서

관엽식물을 심을까 했다.


그러나 다른 센터에서

관엽식물로 수업을 했을 때

결과물이 화려하지 않아

아쉬워하는 분이 계셔서 신경이 쓰였다.


'7,000원의 예산으로 공기정화, 화려함

이 둘을 만족시켜 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됐다.


‘이끼볼에 꽃장식을 해볼까?’


케이크 꽃꽂이가 눈에 들어왔다.

케이크판과 오아시스만 있으면 됐다.

우드락으로 케이크 판을 만들고

오아시스를 작게 자른 후

호일을 감싸 고정시켰다.


집에있는

아스파라거스나누스를 이끼볼로 만들고

오아시스에 올린 후 꽃을 장식했다.


‘꽃은 장미, 라넌큘러스,

소국으로 하면 예산에 맞출 수 있겠어’


사진을 찍어 담당 선생님께 보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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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정화와 화려함을 모두 갖춘

독특한 오브제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내 착각이었다.


“이건 이끼볼도 아니고

꽃꽂이도 아니고 조금 애매하네요 “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치게 됐다.




공기정화 원예수업 - 테라리움 재료준비

공기정화에 집중하기로 하고

작은 테라리움을 만들기로 했다.

적절한 가격의 용기를 찾았다.

티라미수 케이크를 담는 사각형 투명 케이스였다.

도착한 케이스는 높이가 낮았다.


‘여기에 만들어도 되려나?

너무 낮아서 수분이 금방 날아갈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들른 다이소에서

적당한 크기의 원형 케이스를 발견했다.

뚜껑이 있고 입구도 넓어

만드시기에도 편해 보이는 용기였다.

집에 돌아와 샘플을 만들었다.

예상대로 타리미수 케이스에 만든 테라리움은

금방 가득 차 이끼가 뚜껑 코앞까지 올라왔다.

수분을 머금고 있을 것 같은 구조도 아니었다.

원형 케이스에 만들었고

높이와 형태 이끼의 양과 모양이 잘 맞았다.


이끼소분하고 도구를 챙기니 새벽 1시였다.

수업 준비와 정리에

몇 시간이 흐르는 건 쉬운 일이었다.

꼭 필요한 만큼의 재료와 도구들을 준비하면

다니기도 쉽고 과정이 은근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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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함께한 설날

지난주 뵈었던 복지원예사 선배님은

적어도 수업 45분 전에 도착해서 준비해 두고

편의점 등 갑자기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도 미리 봐두신다고 하셨다.

새로운 기준으로

평소보다 일찍 병원에 도착하니

확실히 여유롭고 마음이 편안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두유도 챙겨 먹고

필요할지도 모를 장갑도 사두었다.

차분히 테이블에 도구들을 세팅하고

준비한 수업 자료도 화면에 띄우고 있을 때

처음 보는 꼬마가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똑똑


“안녕하세요~”


꼬마는 90도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센터 선생님의 아드님이었다.


“안녕~”


꼬마는 식물을 좋아해서 집에 29가지의

식물을 키운다고 했다.


“식충 식물도 좋아해?”


네 우리 집에 네펜데스 끈끈이주걱 있어요!”


“정말? 이끼도 좋아해?”


“네 저번에 집에서 네모난 모양에

이끼 만드는 거 해봤어요!”


지난번 이끼 액자 수업 재료로

만들어 봤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 그럼 오늘 것도 잘 만들겠네~”


“배운 적은 없어요!

저번에 만들어 봤는데 재밌었어요!”

“우와~ 예쁘다~”


샘플로 가져온 테라리움을 보는

꼬마의 눈이 반짝였다.

누군가가 식물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진심으로 설레는 모습을 마주하니

신선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예쁘지?”


“네~!”


“선생님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 정말?”


“네!”


꼬마가 수업 준비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 그럼 난석을

여기에 담아줄 수 있을까?

이건 난석이야. 마사토보다 가벼워”


“저 마사토 알아요!

그거 화분 밑에 깔고

또 위에도 뿌리는 거잖아요!

아 하이드로볼도 뿌리고요!”


“오~ 어떻게 알았어?”


정말로 식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꼬마는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며

구름 용기에 난석을 담고

노란 컵에 마사토를 담아줬다.


“고마워!

덕분에 수업 준비를 엄청 빨리 했어!”


준비할 게 많았는데 꼬마의 도움이 컸다.



IMG_7381.JPG 꼬마와 함께 수업 준비 완료!


IMG_7382.JPG 꼬마는 난석과 마사토를 담아주었다.





작은 테라리움 만들기

지난 꽃꽂이 수업 때 참가자 분께서

ppt 소개가 좋으셨다는 피드백을 주셔서

이날도 준비한 자료를 통해

태라리움의 장점과 유래, 원리,

이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테라리움이란?

라틴어다. 테라(땅) +

아리움(공간)의 합성어로

땅의 공간이라는 뜻이다.

유리병이나 투명한 용기에 작은 생태계를 만든다.


테라리움은 19세기

영국 식물학자에 의해 우연히 시작됐다.

곤충을 관찰하기 위해 유리병에 두었는데

병 안에 식물이 자라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영국에서 흔했던 고사리의 포자가

병 속에 날아들어 온 것으로 추정한다.

밀폐된 병에 담긴 흙은

빛을 받아 수분을 증발시키고

병 표면에 맺혀 물방울로 다시 떨어진다.

흙 안의 포자는

물을 머금고 빛을 받는 순환의 과정 겪으며

자라나 병을 초록색으로 가득 채운다.


우리는 3 가지 이끼와 1 종류의 식물을 심었다.


[꼬리이끼]

잎이 촘촘, 꼬리처럼 길고 부드럽다.

숲 속의 바위, 나무줄기, 땅 등에 산다.

습한 환경, 온대 및 열대 지역에 있다.

테라리움에서 바닥을 덮는다.

부드럽고 촘촘한 질감이다.


[털깃털이끼]

새의 깃털처럼 얇고 길다.

밝은 초록색에서 노란빛을 띤다.

바위나 토양, 나무줄기 온대 지역에 있다.

부드러운 질감이다.

습도를 조절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비단이끼]

잎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섬세하다.

정교하고, 촘촘하다.

습기가 많은 산림 지역의

바위나 땅에서 자란다.

테라리움이나 조경에서

장식적 가치가 높다.


[콩자개]

잎이 작고 광택이 난다.

자개의 빛을 띠는 듯한 독특한 외형이다.

열대 및 아열대 지역의 습한 환경에서 자란다.

테라리움이나 화분에서 장식용으로 사용한다.

생태적, 미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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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손길들

수업을 준비하면서

테라리움 공방을 하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이끼 사이에 포인트를 주고 싶은 데

아이비는 어떨까?”


“푸커스 종류의 식물이 좋긴 한데

아이비는 과습에 약해서 금방 무르게 되더라고!”


“콩자개는 어때?”


“괜찮을 것 같아!”


늘 도움을 주는 전문가 친구는

결정을 쉽게 해줬다.


준비해 둔 아이비는 두고

콩자개를 챙겨갔다.

대상자분들은 동글동글

귀여운 모양을 좋아해 주셨다.

난석과 마사토로 배수층을 채우고

상토로 지형을 만들었다.

화산석을 배치하고 돌 사이를 이끼로 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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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끼가 자꾸 올라와요.

지난번 흙은 접착력이 있어서 잘 붙었는데

이번에는 고정이 잘 안 되네요”


액자 프레임에는 넬솔 흙을 사용했다.

넬솔흙은 물을 섞으면 접착력이 생겨

점토처럼 변한다.

액자나 벽에 식물을 부착하는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특수 흙이다.


그보다 스프레이 챙겨 오는 걸 깜빡했다.

상토에 수분이 있어야 고정이 잘되었다.

대상자분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테라리움을 완성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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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다음 타임도 있어서 여기 두시면

제가 분무기 구해서 뿌려둘게요.”


죄송한 마음에 말씀드렸지만

모두 극구 사양하셨다.


“괜찮아요 선생님은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가 다 알아서 물 뿌릴게요.

분무기 없으면 손으로 이렇게 뿌려가면 돼요”


그때 유리문 너머로 꼬마가 보였다.

분무기를 들고 온 것이다.


‘어떻게 알았지?’


꼬마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런 행운도 없다.


“이끼에 물을 뿌리면

초록색으로 살아나는 걸 보실 수 있어요.

이게 또 은근히 재밌고 힐링되어서

직접 해보셨으면 해요 :)”


“그러네요~ :)”


“아 예쁘다. 이렇게 만들고 보니

보람 있고 재밌어요”


“수업이 참 알차고 제일 좋아요”


“병실에 두고 다음날

가족들에게 선물했는데 다들 좋아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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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자분들은 원예 수업의 결과물을

직접 즐기기도 하시지만

가족이나 주변 분들께 선물하며

더 큰 행복을 느끼기도 하신다.


늦게 참여하신 대상자님은 테라리움을 다 만드시고도

활동실을 떠나지 않으셨다.


“선생님 이거 치우셔야 되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가 얼른 치우면 돼요:)”


몇 차례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실례가 되는 것 같았다.


“위에 올라가면 답답해요~ 이거 치우면 되죠?

치우고 같이 나가요”


사용한 가위와 그릇들을 화장실에서

뜨끈뜨끈한 물로 하나씩 세척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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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애들처럼

저를 따라다니시네요 :)”


“이거를 또 집에 가서 하나씩

다 치우셔야 하잖아요 말도 안 돼요~”


“네 그렇긴 해요^^;”


수업 준비 중에는 친구가

수업 준비 전에는 식물 박사 꼬마가,

수업 후에는 언니 같은 대상자님이 함께해 주셔서

참 신기하고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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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자님이 기다리시는 것 같아

짐을 빠르게 챙기고 로비로 나갔다.

센터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대상자님이 부르셨다.


“선생님 여기 와서 이것 좀 드세요”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 과일 컵 두 개와

오렌지만 한 귤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병원에서 제공되는 과일이었다.

카페에서 커피 스틱을 빌려오셔서

어서 앉으라고 하셨다.


"선생님 이거 다 드시고 가셔야 해요.

이건 저희 엄마가 가져오신 귤인데

제주도 귤이라 정말 맛있어요!"


하시며 귤을 까주셨다.

첫 수업 이후 세 번째 뵈어서였을까

함께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편안하고 즐거워 오랜만에

진짜 웃음을 짓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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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복지원예사

어쩌다가 주변 분들께

복지원예사로 센터, 학교, 병원에서

원예수업을 한다고 말씀드리면

대부분 좋은 일?을 한다고 하신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했다.


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는데

봉사가 아닌 이 또한 직업이고

좋아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몇 시간이고 수업을 준비하거나

잠을 못 자고 움직여도

크게 억울? 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재밌는 수업을 대상자분들과 함께하면서

일이라는 생각이 덜 든다.


그러다가 어쩌다 이렇게

대상자분과의 과일 타임이라는

뜻밖의 시간을 마주하면

갚을 수 없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

감사로는 보답이 안될 정도로

마음이 벅차게 되기도 한다.



IMG_7394.JPG 그리고 주머니에 찔러주신 여러가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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