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원예수업, 난은 왜 군자를 상징할까?
어머님들과 난 심기
발달장애 어머님들을 위한 원예 수업 어느 날에
복지원예사 선생님은 난을 가져오셨다.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 해질 정도로
한눈에 봐도 고급진?
튼튼하고 화려한 꽃이었다.
한 포트에 12,000원 하는 난이었다.
우리는 난의 썩은 뿌리를 자르고
수태도 새로 바꿔주었다.
난을 심을 땐 흙을 쓰지 않았다.
통풍이 중요해서 화분 맨 밑바닥을
큰 돌로 채워 배수층을 넉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작은 크기의 돌과 바크를 채웠다.
복지원예사님의 수업을 더듬으며
난 심기 수업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설명절을 앞두고
대상자들이 가족, 지인분들께
혹은 스스로에게 난을 선물하셨으면 했다.
양재동 화훼 공판장에서 난 구입하기
난은 어디에서 구할까?
처음으로 양재동 화훼 공판장에 가봤다.
양재 시민의 숲 역 4번 출구로 나와서
곧장 걸어가면 나온다.
이곳은 꽃을 파는 본관과
화분을 파는 가, 나동이 있다.
가동으로 들어갔다.
따듯한 온기와 습기,
각종 식물의 향이 뒤섞인 공간이
서울 식물원을 떠올리게 했다.
고속버스터미널 꽃시장과는 사뭇 다른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었다.
손톱만 한 다육이와
식물원에서 보았던 오렌지 나무,
친구들에게 선물 받았던
알로카시아 프라이덱과
아스파라거스 나누스도 보였다.
‘여기에 다 있었구나!’
벅찬 즐거움은 틈을 주지 않았다.
저 멀리 난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레몬색, 흰색, 푸른 보라색,
물에 번진 자주색 꽃들이 줄지어 있었다.
‘한 포트에 얼마나 할까?
가장 저렴한 게 너무 비싸면 어떡하지?’
괜히 주눅 들어 다육이 가게와
관엽식물 가게를 둘러보다가
몇 군데 난 가게에 들어가 여쭤봤다.
“사장님~
여기에서 제일 저렴한 게 얼마예요? “
구매 기준이 터무니없으셨는지
몇 초간의 정적 후에 말씀해 주셨다.
“제일 저렴한 거… 이거 만원에 드릴게요”
푸른 보라 빛의 작은 난이었다.
예산에 맞추려면 이 꽃을 사야 하는데
마음속에 괜한 욕심이 일었다.
‘좀 더 크고 화사한 꽃을 좋아하실 텐데..’
에라 모르겠다.
“사장님 이건요?”
“그건 2만 원이에요”
“아.. 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사장님.. 혹시
12,000원으로 살 수 있는 난이 있을까요?”
가게를 찬찬히 도시다가 안쪽에서 말씀하셨다.
“이거! 만이천 원에 가져가세요~”
연한 자줏빛 난이었다.
이 정도 색감과 크기라면
대상자분들이 한눈에도
밝게 즐기실 수 있어 보였다.
“이걸로 3개 주세요!”
잎에 윤기 나는 스프레이를 뿌려주시고
신문지로 정성스레 감싸
스테이플러로 꼼꼼히 집어주셨다.
옆 가게에서 레몬색 난 3개를 더 샀다.
‘이 정도면 충분해!’
보자기 포장과 달모양 토퍼 만들기
숙제 한 개가 끝났다.
다음은 포장 준비였다.
어디선가 본 보자기 포장을 하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자기를 찾아봤다.
‘보자기가 원래 이렇게 비쌌나..?’
2,000원의 상아색 보자기로 타협을 봤다.
포장될 화분은 가성비 좋은
슬릿화분으로 개당 1,000원에 구했다.
15,000원의 예산에 딱 맞췄다.
난을 비추는 달은 토퍼 장식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종이에 노란 수채화 물감을
이리저리 번지게 두고
동그라미 자로 둥근달을 그려 잘랐다.
달모양 종이에 난의 상징인
군자의 뜻을 적고
꼬지를 붙여 토퍼를 완성했다.
<달과 난 설명절 선물화분 만들기 수업>
동양 난의 상징, 서양난과 다른 점은?
달빛에 비추인 환한 난을 상상하며
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난 하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고상한.. 선비가 떠올라요”
“오! 해온님 그렇죠?"
역시 해온님이셨다.
왜 난은 고결함, 선비의 정신, 군자를 상징할까?
공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공자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지도자를 찾아
전 세계를 다녔지만
계속된 거절에 좌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가는 길에 숲을 지나는데
공자는 어디선가 좋은 향기를 맡는다.
향을 따라가 보니 수풀 사이에
난이 은은한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공자는 생각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스스로 좋은 향을 발하는
난이야말로 군자가 아닌가!'
“공자 알아요.
제자들을 많이 두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해온님!”
그리고선
”근데 이건 동양란이 아닌가 봐요?”
”네 해온님 동양란은 비싸서
서양난으로 가져왔어요”
고등학생 때 꽃꽂이를 배우셨다는 해온님은
키우기 어려운 율마도 잘 키우시고
식물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계신다.
“어디선가 좋은 향이 나는 것 같아요”
향이 나지 않은 꽃이었지만
해온님이 그렇다고 하시니
좋은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동양 난과 서양난을 비교해 봤다.
동양난
작고 소박함
은은하고 부드러운 향기
온대 지역
고결함과 군자의 품격
균형미, 향기 감상
서양난
크고 화려함
향이 거의 없음
열대 및 아열대
사랑과 열정
꽃의 화려함 감상
기다리는 법 연습하기
포트에서 난을 꺼낸 후
무른 뿌리와 수태를 덜어내고
새로운 수태로 채워주었다.
새 화분에 심은 난을 포장할 차례였다.
보자기로 감싸 주름을 만들고
보라색 매듭 문양의 술을 달았다.
한국적인 느낌이 물씬 들었다.
보자기로 화분을 포장하는 게 손이 많이 갔다.
한분 한분 다 포장해 드리느라
기다리게 해 드릴 수밖에 없어
마음이 초조했다.
때마침 나린님이 외치셨다.
“선생님! 제 것도 봐주세요! 선생님!”
조금만 지체하면 나린님의
짜증 버튼이 눌릴 것 같았다.
“나린님 우리 기다리는 연습 해볼까요?”
옆에 계신 간사님이
나린님을 지도해 주신 덕분에 시간을 벌었다.
“나린님 우리 20까지 새볼까요?
하나, 둘, 셋, 넷…”
”네! 하나, 둘, 셋, 넷...”
감사하게도 나린님이 잘 따라와 주셨다.
“군자! 배우고 노력해서 자신을 바르게 다스리고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나린님 군자 맞죠?”
“네!!”
”나린님 올해부터 군자 되는 거예요~”
“네!!”
간사님의 질문에
나린님의 대답이 씩씩했다.
“군자~ 선생님 뜻이 너무 좋아요~ 멋지다~”
해온님이 미소를 머금으시며 말씀하셨다.
“선생님 꽃이.. 꽃이 너무 예쁘네요.
노란색도 예쁘고 보라색도 예쁘고”
“선생님 예쁜 꽃을 심으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 행복해요.”
“선생님 이건 누구 선물 줘야 할 것 같은데요?
근데 제가 갖고 싶은데요 ^^”
"우리 그럼 해온님께 드리는 선물로 할까요?”
해온님은 3명 자녀가 있는 멀리 사시는
동생분께 선물하실 거라 말씀하시며
행복한 미소를 보이셨다.
발달장애, 감정 표현의 어려움
그때 하람님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셨다.
평소보다 과격한 몸짓이었다.
하람님에게 재료를 드렸다가
편의상 손에 쥔 재료를
잠시 내려놓도록 권유드린 점이었다.
“선생님 하람님 때릴 수도 있어요
조금 떨어져 계세요”
간사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무거워
마음을 졸이며 한 발짝 자리를 옮겼다.
Research in Developmental Disabilities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서
작은 변화에도 과도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감각 과민성에 대해 나온다.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한 불안감,
자신의 방식으로 사물을 배치하거나
소유하는 것에 대한 집착으로
본능적인 저항과 과격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드렸던 물건을 다시 제자리로
두어야 한다면 미리 말씀드리거나
직접 물건을 내려두실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발달장애, 자기 자극
항상 교실 밖에서 유튜브를 보던
은초님이 오늘은 교실로 들어와
꽤 오래 머물러주셨다.
조금 후에 앉아계셨던 의자를 끌고
다시 제자리로 사라지셨지만
교실에 머물러주신 건 의미 있는 변화였다.
은초님은 몸을 앞 뒤로 왔다 갔다 하시며
반복적인 소리를 내신다.
왜 그러시는 걸까?
Self-Stimulatory Behavior, Stimming
감각조절을 위한 자기 자극일 가능성이 있었다.
반복된 행동으로 불안감을 조절해
안정을 찾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센터에 나오신 지 몇 년 되었지만 아직
소음, 조명,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시는 것 같다.
"수업에 함께 해도 괜찮아요"
다음에는 더 부드럽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씀드려야겠다.
돌아보기
복지원예 스승님은 교실 안 밖을 다니시며
모든 대상자분들을 케어하셨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셨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다.
역시 일은 직접 해봐야 아는 것이었다.
모두를 아우르는
선생님의 즐겁고 활기찬 소통은
축척된 지난 시간의 결실이었음을 또다시 느꼈다.
바로 앞에 계신 분들만 봐드리기도 빠듯해서
하람님과 은초님과의 교류가 적어 늘 아쉽다.
어머님의 피드백
수업 후 은초님 어머님께서
은초님을 데리러 오셨다
난 선물을 좋아하셨을까?
며칠 후,
센터 담당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셨다.
"선생님 센터에 오신 어머님께서
화를 많이 내셨었어요."
전날 이끼볼 수업에 비해
난 화분이 너무 비교되어 화가 나셨던 거였다.
"두 수업 모두 좀 더 화려하게
구성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한 달 안에 진행되는 수업에
약간의 밸런스를 둔다는 계획이
어쩌다 보니 잘못 분배된 실수였다.
센터 선생님들과 참가자분들,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과
결과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새로운 숙제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