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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주시는 막걸리

막걸리 꼬마가 지키는 스칸디아 모스 정원

by 숲배달원
막걸리 꼬마.jpg

수요일은 복지관에 가는 날이다. 이곳엔 어르신들이 오시는데 모두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셨다. 원예 수업은 건강 체조로 시작한다. 커다란 텔레비전에 ‘내 나이가 어때서 기억력 박수 체조’ 영상을 재생시킨다. 음악이 시작되면 한 분 두 분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푸신다. 여기서 내 역할은 화면을 등지고 계신 분들을 위해 체조 동작을 보여 드리는 것이다. 어르신들 앞에서 체조를 하고 있으면 재롱 잔치에서 춤을 추는 것 같다.


몸풀기 체조를 마치면 복지원예사 선생님께서 오늘의 식물을 소개해 주신다. 텔레비전 옆 화이트보드에 큰 글씨로 식물 이름을 쓰신다. 이번 주의 식물은 스칸디아모스였다. 스칸디아모스는 이끼가 아닌 지의류이다. 지의류는 곰팡이와 남세균이 함께 사는 복합 생물체이다. 남세균은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세균이다. 시아노박테리아라고도 부른다. 스칸디아모스는 촉감이 카스텔라 빵처럼 촉촉하고 부드럽다. 스칸디아모스에 수분이 빠지면 역시 카스텔라 빵이 마른 것 같이 딱딱해진다. 건조해진 스칸디아모스는 표면에 직접 물을 주지 않는다. 샤워 후 수증기 가득한 화장실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 두면 다시 부드러워진다. 이끼처럼 끝부분에 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리하기 편해 다양한 곳에 쓰인다. 어르신들께 설명을 드릴 땐 흥미롭고 쉬운 내용을 들려드린다. 스칸디아모스는 순록 이끼이고 폭신폭신하다고 말씀드린다.


이날은 스칸디아 모스에 프리저브드 플라워를 장식해서 손바닥만 한 화분을 꾸미기로 했다. 화분 받침에 올려두고 그 옆에 꼬마 인형을 붙여서 작은 정원을 만들 계획이었다. 부재료가 많고 글루건을 사용해야 하는 어려운 수업이라 걱정이 됐었다. 염려가 무색할 만큼 모두 정원 꾸미기에 몰입하셨다.


뒷자리에 홀로 앉은 할머님이 계신다. 할머님은 가끔씩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젊었을 때 부동산 일을 해서 돈을 아주 많이 벌었어.” “우리 집 밭이 엄청 넓었어.” 그리고 제안하신다. “나랑 같이 시장에 가자. 거기 내가 가는 막걸릿집이 있어. 막걸리 사다가 우리 집에서 같이 먹자.” 매일 시장에서 막걸리 한 병을 드신다고 하셨다. 따뜻한 제안에 감사했지만 선뜻 대답을 드리진 못해 죄송하기도 했다. 할머니께 퐁퐁이를 붙이기 전에 어떤 색으로 붙일까요? 여쭤보면 “아무거나 붙여버려~ 그냥 해버려~” 하신다. 호탕한 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을까? 가끔은 파란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오시기도 한다. 그리고 거울 앞에서 춤 추는 걸 좋아한다고 하신다.


함께 정원을 꾸미는 동안 내가 기억이 나셨는지 존댓말을 하셨던 할머니께서 반말을 하셨다. 반갑고 기분 좋은 반말이었다. 할머니께 꼬마인형 이름을 지어주자고 말씀드렸다. "막걸리라고 지어줄까요?" 할머니께서 예쁜 반달눈을 보이시며 웃으셨다. 스칸디아 모스 정원의 꼬마 인형도 어르신을 닮아 하얗고 예쁜 눈웃음을 가졌다. 어느새 화분 받침 스칸디아 모스 정원이 완성됐다. 할머님은 말씀하셨다. “엄마 집에 가자. 엄마가 막걸리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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