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 반복적인 원예수업의 효과
올해 초 겨울, 처음 H어르신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뵐 때마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계셨다. 주무시는 것인지 앉아 계시는 것인지 늘 미동이 없으셨다. 매주 수요일에 뵈었는데, 6월까지는 거의 같은 모습이셨다. 어느 날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센터 밖으로 나가시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서 재빨리 어르신을 따라나섰다. 혹시 모를 실종 사고에 대비해 센터는 실내에서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문이 열리게 되어 있다. H어르신은 매번 문 앞에서 서성이시다가 보호사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자리로 돌아오곤 하셨다. 어르신은 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셨을까? 원예 수업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으셨지만, 어르신 앞에서 대신 꽃을 심고, 이끼볼 만드는 과정을 보여드렸다.
그러나 이제 H어르신은 꽃을 심으신다. 하나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쪼개 듯, H어르신의 단단한 마음의 바위도 매주 조금씩 깨지고 있다. 이 센터의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 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원예수업이 효과적이었다. 처음엔 매번 똑같은 화분심기 원예 수업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변화를 보며 곧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수업을 꾸준히 수행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면, 어르신들은 그 행동을 점차 기억하고 외우신다. 지금 어르신들은 화분 안에 망을 덮고, 마사토를 담고, 흙을 채우고 포트를 주물러 꽃을 심는 가드닝을 혼자서도 다 하신다. 과거에 일을 많이 하셨던 어르신들은 재빠른 손을 가지고 계신다. 화분 하나쯤은 금방 완성하신다.
H 어르신도 마사토를 화분에 담으셨다. 하나, 둘, 셋. 한 손으로 숟가락을 잡으셨는데, 때때로 뒷면으로 잡으셔서 돌들이 다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는 숟가락을 살짝 돌려 마사토를 다시 담아드렸다. 어르신께서 하실 수 있는 만큼 담으시면, 치료사가 나머지를 다듬었다.
어느 날은 흙을 잘 뜨셨기에 화분으로 옮기시려나 했지만, 이내 입으로 가져가셔서 깜짝 놀랐다. 그 이후로는 어르신께서 흙을 담으실 때 끝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미동도 없고 말도 거의 없으신 어르신께 최대한 많은 질문을 드리려고 했다.
“여기에 놓을까요?”
“어떤 색으로 붙일까요?”
“어르신, 우리 흙 세 번 담아요. 제가 두 번 담고 어르신께서 한 번 담아주실래요?”
어르신께서 3초 정도 생각하시고 “네”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어르신의 대답을 들었을 때의 기쁨을 잊을 수 없다.
지금 어르신은 갑자기 일어나 센터 밖으로 나가시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 늘 쓰고 계셨던 마스크도 보이지 않는다. 원예 프로그램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켜 참여하신다. 김동적인 진전을 이루셨다. 어르신의 변화에 욕심이나 계속 질문을 드리게 된다.
“무슨 색 좋아하세요?”
“어느 방향으로 심어볼까요?”
어르신들과 짧게 나눈 대화 한 마디, 함께 심은 식물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지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