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의존, 우리 모두의 이야기.

by 빛날

봄이 시작된 계절에 소리 없는 거센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던 시기가 있었다. 집안에 있어도 밖과 다를 바 없는 혹독한 추위에 스스로 갇혀 있었다. 인간이 되기 위해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는 곰과 호랑이도 아니고 이미 인간이 된 상태라 굳이 100일을 채워야 할까 싶은데 지나 보니 100일 넘게 그렇게 있었던 것 같다.

이미 바닥인데 무슨 두려움이 있으랴. 움츠리던 몸을 일으켜 집을 나와서 무작정 속초 여행을 떠났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강원도는 쉽게 가는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평소 가고 싶어 마음에 담아 둔 곳이었다. 넓은 바다와 설악산을 다 누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여행 첫날,

「완벽한 날들」이라는 북카페를 만났다.

책 제목을 따서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내 삶과 완벽히 상반된 간판을 붙여 놓은 곳에서 따뜻한 차를 한 잔 주문했다. 독립 출판 책들이 많았는데 책 한 권이 시선을 잡았다.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지은이/도하타 가이토. 옮긴이/김영현/다다서재

‘의존’이라고? (依存: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함.)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인데? ‘의지’나 ‘기대다.’라는 말을 더 사용하지 않나? 책 표지에 적힌 문구가 나를 위한 글이다.


일상이 괴로워진 당신을 위한 의존과 돌봄의 심리학.


바른생활이 익숙해 일탈을 꿈꾸며 살았는데 생각하지 못한 일탈이 일상이 되었다. 일상은 괴로운 게 맞는 건가? 의지하고 싶고 돌봄을 받고 싶었던 나는 낯선 여행지에서 첫 책을 구입했다.


지은이는 도하타 가이토는 임상심리사이자 교육학 박사이다. 1983년생으로 교토대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키나와 정신과 클리닉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주몬지학원 여자대학 부교수다. 전문 분야는 임상심리학이며 정신분석, 의료인류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 의존하며 살아갑니다」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저자의 책이다.

초보 임상심리사가 정신장애인이 있는 돌봄 시설에서 보낸 4년의 기록이라고 해서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돌봄 시설의 사람들과 에피소드가 있고 작가의 설명이 있다. 읽다 보니 에세이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것이 장르가 뭔지 모호하다. 출판사에서는 교양서라고 말하고 작가는 학술서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있고 사건이 있어 소설처럼 술술 읽다가 학술서와 같은 내용은 이해를 하며 천천히 읽는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에세이다.

장르가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위로받고 의지하고 싶은 내 마음을 달래줄 글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얻었냐고?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냈다.


있다 와 하다

돌봄 시설에 온 사람들은 사회에 ‘있기’가 어려운 사람들이고 임상심리사로의 임무는 ‘있기’가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었다.

치료는 그다음이다.

‘있기’를 목표로 하는 ‘있기’

나에게 필요한 건 외부로부터 무언가 얻기 이전에 있기가 필요했다.

‘나’로 있기.

함께 있기 위해서는 ‘하기’가 필요하지만

스스로 있을 수 있어야 뭔가 ‘하기’가 된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는데 ‘띵’하고 첫 번째 깨움이 온다.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칩거하면서 혼자 있기의 시간이 있었기에 여행이라는 ‘하기’가 된 거다. 살아보려는 의지를 낸 거겠지.

여전히 ‘있기’는 나에게 어려운 숙제이다. ‘하기’에 초점이 맞춰있어서.

이 초임 임상심리사는 학업에서 배운 이론 대로 ‘치료’를 생각하고 왔건만, 치료가 아닌 ‘있기’의 상황을 먼저 만난다. ‘있기’의 상황은 이 작가에게도 힘든 시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있기’를 넘어 함께 ‘하기’를 하며 치료를 시작한다.


베테랑 스테프와 일하면서 환자들과 서로 의존하며 돌봄을 주고받는다. 일상이 함께다. 전문적일 일을 하겠다고 박사까지 땄건만 승합차 운전사의 역할을 하고 환자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고 카드를 하고 배드민턴을 한다.

‘이래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하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 돌봄과 일상의 중요성을 느낀다.


개성 있는 등장인물이 많다.

20대인 대학생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집중한다. 머릿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아 구멍을 메우기 위해 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 경험이 전무하고 말주변도 없는 류지와 화려하고 수다스러운 캐릭터의 연애 베테랑인 유리와의 연애 이야기도 있다.

업무총괄부장이며 정수리가 반짝 빛나는 간호사는 높은 직책이지만 장을 보는 심부름을 도맡아 한다. 정 많은 싱글맘 등 다양한 스태프와 환자의 일상 속에 감동과 즐거움이 있다.

이들의 일상에서 사회적 문제를 발견한다.

작가는 에바 페더 커테이라는 철학자가 단순노동을 ‘의존 노동’이라 부른다면서 의존 노동에 대해 언급한다.


의존노동은 돌봄 관심, 관계로 특징된다. 돌봄은 취약한 상태에 있는 타인을 수발하는 노동이다. 이 노동은 친밀한 사람들 간의 결합을 지속시키거나 혹은 그 자체로서 친밀함과 신뢰를 만드는, 즉 관계이다.

-p. 101

의존은 인간에게도 본질적인 행위다. 약해졌을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돌봄을 받는다. 혹은 약해진 사람을 도와주고 돌본다. 인간의 본능이다.

원시적이었던 돌봄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분화되어 전문가의 일이 되었다. 몸을 전문으로 진단하는 의사,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영양사, 마음을 전문으로 다루는 임상심리사가 등장했다. 각자의 영역에 특화된 직업이 생겨난 것이다. 돌봄은 치료보다 오래된 것이다.

오늘날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의존노동의 사회적 가치가 낮다는 점이다. -p.104

우리는 개인의 자립을 전제로 하는 사회에 살아가며 스스로 할 일을 가르치며 그 가르침을 잘하는 사람을 칭찬한다. 자립의 활동가치는 눈에 잘 띈다.

영화나 드라마, 우리 일상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지금 조금 열심히 보는 드라마가 일타 스캔들인데 여기서도 의존 노동이 보인다. 문제적 캐릭터의 성격을 제외하고 본다면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일타 강사는 1조 원의 남자지만 지실장이 챙겨주는 식사와 업무처리에 의존한다. 물론 국가대표 반찬가게 사장의 밥과 반찬을 더 잘 먹지만, 그 반찬가게를 찾아낸 것 또한 지실장이 아닌가. 지실장의 월급은 모르겠지만 1조 원 근처도 안 될 것이다. 그래도 지실장은 그에 맞는 급여는 받겠고. 드라마를 떠나 현실로 돌아와 보자.


작가는 일하는 남편과 전업주부의 아내를 예로 들었다. 남편은 자립해서 돈을 벌고 아내는 남편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 역시 식사/세탁/청소라는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아내에게 의존한다. 나무꾼이 밖에서 나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내가 집안일을 맡고 있기 때문이지만 좀처럼 아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아내 역시 ‘나무를 베지 못하니 그냥 빨래나 해야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작년 말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홀로 되신 지 몇 달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연세가 있으시고 지병도 있으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광복을 맞이하고 몇 년 후에 태어나셔서 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전화기도 없던 시대에 살던 분이라 눈도 귀도 나날이 나빠지시는 분에게 아날로그도 힘든데 디지털에 챗봇을 상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엄마에게 가면 늘 따뜻한 밥상을 받는다. 스마트폰으로 엄마에게 온 여러 메시지와 우편물을 정리하고 해결한다. 엄마와 여행도 한다. 딸 셋이 모두 운전을 하는데 이런 딸들이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신다. 엄마는 자식이 오면 해 줄 수 있는 게 음식 밖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엄마 입장에서 보기에 딸들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엄마에게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정성스러운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이며, 험한 세상에서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의 안식처다. 신체적으로는 제일 작은 몸이지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는 가장 큰 나무이다.

의존노동의 가치를 이야기를 하다가 개인적 이야기로 살짝 다른 길로 샜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작가의 글을 만나보자.

의존노동의 사회적 가치는 명백히 낮다.

소아과 의사는 많이 벌지만 보육사는 적게 번다.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펀드매니저는 연봉이 높지만 요양원간병인은 연봉이 낮다. 남 얘기가 아니다. 나 또한 치료가 돌봄보다 멋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p.106


작가는 처음에 단순 노동을 하며 전문가의 나라에서 멀리 유배된 느낌을 받으며 상처받았다고 했다. 4년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그는 치료의 과정 전에 돌봄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가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병원에 근무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으니 더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된다.

제대로 독립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일 때 이 책을 구입했다.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나를 다시 이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생각의 힘을 보탠 책이다. 소설 같기도 하지만 출판사의 말대로 교양서이기도 하고 작가의 말대로 학술서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던 사람을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했고,

의존을 두려워 하지만 마음껏 의존할 때 치료가 된다는 것을 배우게 했다. 돌봄의 가치가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되고 평가받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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