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무섭다.
밤잠을 이루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다가 집어든 책이다.
죽거나 죽이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으니 읽다가 스르르 잠들겠지라는 생각으로.
활자를 읽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더 또렷해진다. 결국 1시간 만에 다 읽어버렸다. 덮을 수가 없다.
무엇 때문에 죽이고 싶었을까? 누가 죽였단 말인가?
살의를 느낄 만큼 고통스러운 일.
‘세상에 이런 일이’ 넘치는 세상이니 이유야 천 가지 만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생각에서 그칠 뿐 실행에 옮기는 일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이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다.
17세 소녀 서은이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단짝 친구 ‘주연’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로 제8회 문화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은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책을 좀 읽는다는 청소년과 부모들 사이에서 이꽃님작가는 아주 유명하다. 소설 제목이 「죽이고 싶은 아이」라니. 꽃님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상반되는 제목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진실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진실이 사실 그대로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
사실이 사실로 인정되지 못하고 믿어주지 않고 믿을 생각도 하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 널렸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 목격자 여러 명이 다른 말을 하니 헷갈린 만도 하다.
보고 있지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어느 위치, 어느 타이밍에서 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으로 기억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편집되고 조작되기도 하니까. 그리하여 스스로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확실하냐고 묻고 또 물으면 더더욱.
학교에서 시체로 발견된 서은이의 살해 용의자로 단짝 주연이가 유력하다. 의심되는 증언과 증거가 있다. 그럼 주연이가 살인자일 가능성이 높은데 뭐가 문제일까?
주연이는 서은이와의 마지막 기억을 잃었다. 17세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사건이다.
독자 입장에서도 헷갈린다. 긴가민가 알듯 말듯하다. 고등학교 1학년인 주연이가 그럴 리가 없다고 믿고 싶다. 불리한 증거를 엎을 만한 진실이 드러나기를 소망한다.
이 아이의 인생이 억울하면 안 되니까 돈과 커리어가 중요한 변호사 말고 진실로 이 아이를 믿고 구원해 줄 구세주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주연이는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로 기억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없을 때는 착하고 공부를 잘하고 친구를 위하는 모범적인 학생이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능숙하게 하고, 상대방을 모함하며 심지어 폭력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인간 내면에 다양한 인격체가 있지 않은가? 위급하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평소와 다른 인격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도 당신도 그러하고 주연이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본 도덕성과 가치관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겠다.
문제는 이런 큰 사건이 터지면 평소 훌륭한 인품을 가졌다는 사람도 털고 털어서 이중인격자로 만들어버리는 사회가 우리 현실이라는 거다. 17세 소녀, 주연이는 용의자가 되면서 이 엄중한 잣대를 피하지 못한다. 주연이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증언,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의 증언, 증언을 누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주느냐에도 영향이 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할 수는 없지만 원수 지고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나에게도 이런 일이!’는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인생이니까.
주연이가 범인이 아니라고 응원하는 이유는
주연이가 서은이를 많이 좋아했고 스스로도 감당이 안될 만큼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편파적인 기사로 편집되어 주연이의 말을 들을 생각도, 믿을 생각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도 화가 났다.
학교 교감선생님이 피디에게 한 말이 있다.
“아직 재판이 끝난 것도 아니고 진행 중인 상황인데, 방송을 너무 편파적으로 하셨더란 말입니다. 의도야 어찌 됐든 마치 가난한 서은이는 천사이자 피해자고, 부유한 주연이는 악마이자 가해자인 것처럼 포장해서 방송이 나왔단 말이지요.
가난은 선이고 부는 악입니까? 죽은 사람은 선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악입니까?”
우리는 진실과 상관없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몰아가기도 하니까.
진실을 알고 싶지만 결국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과학 수사, 표적 수사.
그 속에서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 조각 난 이야기만으로 전부인양 사건을 왜곡하지 않았을까?
주연이가 주변 사람에게 나쁜 아이가 되어버린 사건에는 서은이를 위한 행동도 있었다. 그러면 뭐 하나 과정은 나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결국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이 되고 만다.
책을 읽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든다.
서은이와 주연이의 관계에서 과연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인가?
그들은 정말 친구였을까?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진실이 될 때가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진실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맞다.
함께 드는 생각은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라는 거다. 외로움이 문제다. 이 외로움이란 놈은 나이와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함께 가겠지.
그 외로움에 서로를 이용하는 건지 사랑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내게 훅 들어온 또 다른 메시지는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되겠다.'였다.
최근 업무적으로 알게 된 사람이 있는데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 성격도 일하는 스타일도 너무 달라 힘들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꽤 많지만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으니 그런 사람인가 보다 하고 지낸다.
내가 보는 게 다가 아니고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지.
자라온 환경이나 주변 사람이나 여러 가지 이유들로. 서은이와 주연이의 자라온 환경을 보면서 느꼈다.
그러니 이해가 되고, 그 사람에 대한 화가 좀 누그러진다. 물론 시간이 지나 지금처럼 일하면 열 좀 받겠지만 예전보다는 이해의 폭이 조금 더 생기겠지.
이꽃님 작가의 죽이고 싶은 아이는 인간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 중에 약하고 못나고 못돼 먹은 마음을 사건으로 풀어놓은 게 아닌가 한다.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진실이 왜곡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그런 날이 온다면,
인류의 역사가 끝나갈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