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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Aug 01. 2021

성형외과 가 봤니?

그날의 징표

  2020년 늦은 봄에서 여름으로 달려가던 날.

 비장한 마음과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가고 있었다.

한 손은 윗옷 주머니 깊은 곳에 두둑한 현금이 들어있는 봉투를 꼭 쥐고 있다.


도시의 중심가에 내려 한 건물로 들어선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직원들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전한다.


"오늘 10시 예약한 ooo입니다."

"네, 예약 확인되셨고요. 비용은 000입니다."

"네, 여기 있습니다."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주머니에서 꼭 쥐고 있던 봉투를 내민다.

은행에서 보던 현금 세는 기계(지폐 계수기)가 '드르르륵 드르르륵'  내가 가져온 돈을 힘차게 한참을 세고 있다. 직원이 확인하고 접수를 완료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인생 최초의 경험을 하게 되는구나!


위의 상황을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목돈을 들고 상경하여 뭔가를 시도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아름다운 골짜기 산 넘어 남촌에 사는 사람은 아니고,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 토박이 광역 시민인 40대 중반을 넘어 선 아줌마다. 인생 최초의 쌍꺼풀 수술을 하러 가는 여정이다.


 복잡한 시내 중심가에 자가운전하기에는 주차도 신경 쓰이고 수술을 하면 마취를 하게 되니 대중버스를 이용해서 병원에 도착했다. 버스로 15분 거리다. 집이 시내에서 가깝다. 병원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편한데, 현금을 지불할 때와  차이가 있었다. 현금을 계좌로 송금하는 것도 카드와 비용이 다르지 않아. 불편하지만 비용이 할인이 되는 관계로 현금을 찾았다.

마취에 풀리면 가방 챙기는 것도 일이라 싶어 선글라스는 쓰고, 한쪽 주머니에 휴대폰, 나머지 주머니에 현금봉투를 챙겨 왔다.  친구가 따라오겠다는 것을 괜찮다고 사양하고 혼자 비장한? 마음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성형외과는 태어나 처음이다. 부모님이 반반 적당하게 섞어 만들어 주신 얼굴에 불만이 없었고, 살면서 얼굴에 크게 상처를 입은 적도 없다. 정말 감사할 일이다. 20대 후반 한 때 쌍꺼풀이 없어서 '수술을 하면 정말 무진장 예뻐질 눈이 아닐까'하는 열망이 잠깐 있었지만 곧 지나갔다. 태어날 때 그 얼굴 그대로 시간의 흔적, 아니, 성장의 흔적이라 해두자. 그 외에 별 달라진 게 없다.


 쌍꺼풀 수술은 일반적으로 정말 흔하게 하는 수술인 것 같다. 하지만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수술을 결심하게 된 건 인생 계획에 없던 일들이 발생하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고 나서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했고, 아꼈고, 모았다. 남들처럼 차도 사고 집도 넓혔다. 내 명의로 된 것을 넘겨주고 독립을 하고 보니, 내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것을 너무 안 챙겼다는 생각과 배신감 뭐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있었다.


그럼 여태 내가 살았던 방식과 다르게 살아야지. 일탈. 그래 그거 해보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지. 금 이 순간을 사는 거야!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미스터 키딩 선생이 책상 위에서 외쳤던 그 말처럼. '카르페 디엠!'

일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술은 전혀 못 마신다. 맥주 한 잔이면 내 주량은 충분하다. 맥주 한 병을 마셨다가 숙취 해소 음료를 3병 사 먹고, 3일을 두통으로 시달린다. 그래서 음주는 제외시킨다. 일탈이 꼭 방탕한 생활을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 


 평소 외모를 꾸미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다. 옷, 화장품, 가방, 신발, 명품 등등. 그렇다고 전혀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분명 '크게' 관심이 없을 뿐이다. 명품을 착용한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이 명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유명 브랜드도 잘 모른다. 책 욕심은 좀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추구한다.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외모가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분명히 말하지만 나쁘지 않다.


 일탈(脫)의 사전적 의미는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일(逸)의 뜻이 편안한 일, 달아날 일, 탈(脫)은 벗을 탈이다. 편안한 일로부터 달아난다. 벗어난다. 뭐 그런 뜻이다. 편안한 일로부터 벗어나면 두려움도 있겠지만 스릴이나 재미는 넘치겠다. 아니면 무서워 미치겠다. 뭐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말하는가 보다. 그저 '일상에서의 탈출'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가볍지만은 않은 뜻이다.

 그럼 일탈 중에 왜 쌍꺼풀 수술이냐? 눈 끝이 많이 내려왔다. 착하게 순하게 보인다. 사람도 착한데? 착하게 보이는 게 싫었다. 

반세기 인생을 태어난 모양으로 살아봤으니 다르게 살아도, 혹 수술 후 얼굴이 애매한 상태가 되더라도 후회는 없겠지.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몇 군데 상담을 했고 나름 신중하게 결정을 했다.

잘못되면 재수술 확실하게 해 준다고 해서. 의사의 그 자신감에 다른 곳보다 비용은 차이가 좀 있었지만 결정을 했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할 눈이 잘 보이도록 병원에서 준 머리띠를 쓰고 며칠 전 상담했던 원장님과 다시 마주했다. 설명을 다시 해 주신다. 하얀 A4 종이에 적어 내려간다. 수술 날짜와 서명.

그리고 내가 다시 확인한다.

"수술이 잘 안되면 재수술 확실히 보장하셨는데 그 말씀도 한 줄 부탁드립니다."

수술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넓을 수 있다며 재수술해주는 경우를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다시 내 눈을 찍어 수술 후 얼굴을 보여준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말을 한다.

"눈의 크기가 다른데 10에 8명은 균형이 더 맞춰집니다. 그런데 ooo님은 그 8명이 아니라 2명에 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수술하면 지금 상태보다 한쪽 눈은 더 크고 다른 한쪽 눈은 더 작게 보인다고요?"

"네, 그때는 왼쪽 눈만 확인했는데, 지금 두 눈 다시 확인하니 그렇네요. 어떻게 할까요? 수술할지 안 할지 선택하셔야겠습니다."

앞 트임, 뒤트임 다 하고 절개도 해서 토끼눈에서 범의 눈으로 바뀌는 데다 완전 짝눈이 된다면 누가 수술을 할까요?

순한 눈에서 세게 보이는 건 어느 정도 원했지만 심한 짝눈까지 감당할 자신을 없었다.

"그럼 수술은 안 하는 게 낫겠네요."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어영부영 인사를 하고 원장실을 나와서 몇 분 전 수술복을 받았던 접수대에 다시 옷을 반납했다. 다시 지폐 계수기에서 "드르럭 드르럭" 현금을 확인하고 내 주머니에서 나왔던 돈봉투를 받아  주머니에 넣고 상담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궁금해하는 눈들을 뒤로하고 병원문을 나왔다.


집까지 15분 걸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실망감과 안심된 마음. 돈 굳었다는 마음. 허무와 허탈. 신남. 감사 등등의 감정들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거울을 보는데 빵 터졌다. 유난히 훤한 이마가 보인다.

수술을 위해, 앞머리를 올리라고 병원에서 준 검고 얇은 플라스틱 머리띠. 그게 떡하니 내 머리에 왕관처럼  씌워져 있다. 이 상태로 버스를 타고 왔구나. 수술복이라도 벗고 와서  다행이네.

큰 마음을 먹고 수술을 하러 간 병원에서 수술을 안 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아닌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서 그냥 머리에 낀 채로 나왔다. 아마 간호사 분도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라 머리띠를 챙기지 못하셨나 보다.

그 플라스틱 머리띠를 손에 들고서 혼자 한참을 웃었다.  그날의 징표인 검은색 머리띠지금도 내 책상 위 연필꽂이에 꽂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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