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부모님과 마산 광암 해수욕장. 2월 음력설에는 아이들과 영덕 장사해수욕장을 다녀왔습니다.
명절이라도 가족들이 다 모이지 않고 6인 이하로 만나다 보니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내륙에 사는 사람이 바다가 여전히 잘 있는지 궁금해서요.
20대에는 새벽형 인간이라 해뜨기 전부터(새벽 5시) 동네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집으로 오는 중에 해가 뜨기도 했고 집에 도착해서도 어둑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기상 시간이 늦어지더니 요즘은 7시가 한참 지난 시간에도 침대 이불속에서 몸을 말고 누워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불 밖으로 팔만 쏙 내밀어 커튼만 칩니다. 그렇게 해 뜨는 걸 보는 거지요.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다는 말이 다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새해가 되는 첫날은 멀리는 못 가더라도 가까운 산에 올라 해 뜨는 것을 봤었는데 지금은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평소와 다름없이 침대에서 해 뜨는 것을 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스름한 세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걸 보고 있다는 말이 맞겠지요.
2022년 1월 1일은 평소와 똑같은 루틴으로 일어나 밥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고 글을 쓰고 오후에 대구 외곽 신도시에 사시는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도착하니 함께 점심을 먹는다고 한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제 먹어도 엄마의 음식은 최고의 맛집입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답답하니 집에만 있지 말고 가까운 바다로 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바다가 보고 싶었는데 여차여차 시간이 없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가보지 못한 지 여러 달이 후딱 지나버렸네요.
"이 시간에 어떻게 가노?"
"여기서 1시간이면 마산 가잖아요. 수산시장은 자주 가셔도 해수욕장 안 가봤지요? 광암해수욕장이 있는데 야경이 괜찮다는데요."
"니는 밤에 운전해도 괜찮나?"
"네. 밤에도 나 운전 완전 잘하는데요."
"지금 가면 일출 보러 온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은데, 지금 가면 조용할 것 같으니 가시지요."
연세가 드시면서 밤 운전을 자제하시는 아버지는 늦은 시간에 출발해서 운전이 걱정되셨나 봅니다. 운전을 좋아하고 잘하셔서 저와 같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운전하셨지요. 2년 전 제주도 여행에서부터 제가 운전하는 차를 타기 시작하셨지만 완전히 신뢰를 못하신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신뢰를 드리면 되겠지요. 자신만만한 제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이셨는지, 가보지 못한 해수욕장이 궁금하셨는지 식탁만 대강 치우고 우리는 바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3시가 넘어갑니다. 준비성 좋으신 엄마는 그새 물과 간식을 챙기셔서 나오셨습니다. 사실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나시고 집에만 주로 계시니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야호! 바다 보러 갑니다.
4시 조금 넘어서 마산 광암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바다를 만날 수 있었는데 몰랐습니다. 제가 가 본 곳 중에서는 제일 작은 해안입니다. 어두웠으면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없었을 텐데 충분히 바다가 자신의 자리를 잘 보전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산책도 하고 따뜻한 차 한잔도 즐깁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위치한 광암해수욕장은 1970년대에 마산만에 있던 가포해수욕장이었다고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폐쇄되었고 굴 껍데기와 자갈밭이었던 이 자리에 창원군에서 2018년 모래를 쌓아 인공 해수욕장으로 재개장한 곳이라네요. 그렇다고 두산백과에 나와있습니다. 하하하하
마산 광암해수욕장
해가 지면서 빛나는 빨간 등대와 어두운 푸르스름을 지나 남보라를 거쳐 살구색으로 물드는 바다
아담한 해수욕장에서 일몰을 넋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움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래사장으로 걸으며 바다에 손도 담그고 수줍게 치는 파도 소리도 듣습니다. 지는 해를 보면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는데 부모님은 춥다고 빨리 오라고 하시네요. 그렇지요. 겨울이었네요. 오랜만에 겨울바다를 보니 그저 행복합니다. 빨간 등대로 가는 산책 터널은 여러 색의 조명으로 자꾸 변신을 합니다. 앞서가신 부모님을 따라 걸어가 봅니다. 작년에 결혼 50주년을 보내신 부모님은 여전히 사이가 좋으십니다. 여전히? 뭐 초장기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에는 결혼 생활 50년 중 평균 40년은 좋으셨던 거 같고 지금은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드시면서 서로를 더 챙기십니다. 우리가 아주 어릴 때는 이동 수단이 자전거였는데 아빠가 엄마를 잘 태우고 다니셨습니다. 늘 손잡고 다니셨고요.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부 사이가 아닐 것이다. 애인 사이다."
다정한 부부는 왜 애인 사이로 오해받아야 하는 걸까요?
여하튼 지금도 이렇게 다니십니다.
노을을 보러 함께 걸어가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우리 인생의 끝무렵은 일몰의 아름다움과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역동적입니다. 신납니다. 뭐라도 힘차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마음을 다지고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어렵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잊고 새 출발을 기원합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가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저만 아는 이야기인가요? 갑자기 우리 지역에서만 듣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네요. 여행을 가서 고생을 많이 하더라도 마지막을 맛있는 음식으로 마무리하면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하는 것처럼요. 이것도 우리 동네 용어는 아니겠지요? 제가 지역 토박이 티를 팍팍 내는군요.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떠오르는 태양의 화려함도. 역동적인 것도 좋습니다. 행복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가 축하해주잖아요. 기쁩니다. 지는 노을은 차분합니다. 조용한 듯 하지만 노을빛은 넓게 넓게 퍼져나갑니다. 소리 없는 울림입니다.
노을처럼 아름답게 지구에서 잘 살다 가고 싶습니다. 부모님처럼 서로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아껴주고 보듬으면서요. 지구에 존재하는 같은 종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나누면서 살고 싶습니다.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에게 감사하고 산과 들, 바다, 이 땅에 존재하는 자연에 감사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지 않잖아요. 부모님처럼 오랜 시간 서로에게 고마워하면서 현재를 살다 보면 인생의 황혼기에는 아름다운 노을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2월 음력설에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영덕 장사해수욕장입니다. 동해 블루로드의 시작이지요. 정말 넓습니다. 이른 오후에 도착하니 성난 파도가 힘차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파란 하늘이 씩씩하게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10대 팔팔한 사춘기 아이들과 동행해서일까요? 바다도 하늘도 동행자와 닮았습니다. 삶이 그대를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는 푸시킨의 시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현재를 열심히 감사히 생각하며 살렵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맞고 싶으니까요. 그때 아이들이 현재를 잘 살고 간 엄마를 축하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 봅니다. 새해에는 일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