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동네 산책길이 있다. '나만의 산책길'이라니 뭔가 특별한 길을 발견하고 개척한 듯하다. 별거 아니다. 그냥 많은 이들이 지나는 길이다. 흔한 보통의 길을 나만의 코스로 정했다는 거다. 차가 지나가는 대로와 뒷산, 공원이 이어진 길의 출발과 중간, 도착점이 다르다.
나만의 산책 길은 크게 두 코스다.
동네 구석진 곳까지 세상 환한 시간에는 뒷산과 텃밭이 있는 길을 간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다니는 곳이다.
조금 어둡기 시작하면서 완전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에는 큰 도로변과 공원 쪽으로 걷는다.
이때는 살짝 빨리 걷기와 달리기가 된다. 가로등이 환하고 사람들이 좀 많다. 누가 따라올 사람 없지만 그냥 어둠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야 하나? 하하하. 그건 아니고 저녁시간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따라 하기다. 간혹 가로등이 잘 비취지지 않는 곳에서는 본능적으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도 있다.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반사 신경이 고장 나지는 않았는가 보다.
이 두 코스에 겹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작은 성당이다.
성당 건물 외벽은 붉은빛이 도는 브라운과 아이보리가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어 깔끔하고 정갈하다.
마당을 지나 돌담을 뒤로하고 앞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그 앞에는 작은 화단이 만들어져 있다.
예쁘고 아담하다. 성당 입구는 늘 오픈되어 있다. 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지나는 시간에는 늘 열려있다. 기도하러 오는 이들은 위한 배려인가?
우아하고 따뜻한 미소를 지닌 '성모 마리아상'과 예쁘게 피어난 '꽃'들을 모른 체 하기에는 좀 어려웠는지
산책하는 흔한 어느 날에 나도 모르게 성당 마당을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사람인데 이웃에게 인사 정도는 하고 지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서서 기다리는 '마리아상'에게 안부인사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웃주민입니다."
"예쁜 꽃들 속에서 행복하시겠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처음, 그렇게 이웃에 계신 '마리아상'에게 안면을 텄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뒤는 어렵지 않다. 산책을 할 때마다 늘 밖에 그렇게 나와 계시니 인사를 하고 간다. 어두워도 화단 아래 있는 조명이 얼굴을 비춰주니 눈도장 찍고 간다.
"오늘은 조명이 있어 그런가 더 예뻐 보이시네요."
"오, 옆에 새가 앉았어요."
"오늘은 새로운 꽃들이 활짝 폈어요. 색이 예쁘네요. 좋으시겠어요."
혼자서 그렇게 말을 건네고 지나가는데 어느 날은 나에게 말씀을 하실 때도 있다.
"흔들리지 말고 네 마음에 중심을 잘 잡으면 된다."
"잘하고 있어. 기본에 충실하렴."
그러다 어느 날은 대화하는 수준에 이른다.
비바람이 많이 불고 추운 날이었다. 옷 아래 살짝 나온 발가락이 너무 시릴 것 같았다.
"마리아 님은 추운데 늘 이렇게 계셔야 하니 힘들겠어요"
"아니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무렇지도 않다."
예전 뉴스에서 평화의 소녀상에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들. 옷을 입혀주는 사람들을 봤다. 그 심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옆에서 내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기도하니 지치기도 하겠어요."
"이곳에 있어서 행복하단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마리아상'과 대화는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혹은 듣고 싶었던 말들이라 생각한다.
어떤 날은 한참 마리아상의 얼굴만 빤히 보고 가는 날도 있었고 인사만 얼른 하고 나올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날은 간단한 대화를 나눌 때도 있었다.
어느 날 '마리아상'과 무언의 대화를 하는데 동화 "행복한 왕자"가 떠올랐다.
보석으로 치장한 동상 '행복한 왕자'는 따뜻한 나라를 찾아가지 못한 제비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보석을 떼내어 그들에게 가져다줄 것을 부탁한다.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초라해진 동상이 되어 철거되는 운명이 되고 제비는 얼어 죽지만 결국 그들은 천국에서 행복하는 살았다는 동화 말이다.
물론 성모 마리아상이 초라하지도 않고 그럴 일도 없다. (성당에서 관리해주시지 않을까?) 추워도,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도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리아상을 보면서 행복한 왕자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산책길에서 만난 마리아상은 기도하러 오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믿음, 힘내라는 응원을 해준다.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들어준다. 맞춤형 상담자가 아닌가 한다.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종교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신자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웃인 마리아상의 온화함은 나에게 그렇게 와닿았다.
* 혹시 성당 관계자들분들이 본다면 불편하시려나? 신자도 아닌 사람이 들어와서? 그렇다면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려야 할까? 나쁜 의도가 아니니 이해해주시기를......... 인사만 하고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