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의 소설 연적(戀敵)

여행 파트너로 연적, 괜찮으시겠습니까?

by 빛날

연적.

'적'이라는 글자에 꽂혀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부터 떠오른다. 제목만 보고 생각했다. 무협소설인가? 설마! 별로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다. 그러다 바로 정신이 든다. 작가가 김호연인데 무협소설이면 어떨까.


연적(戀敵) 그리워할 연. 대적할 적 : 연애의 경쟁자. 또는 연애를 방해하는 사람.

책을 읽다 보니 처음 떠오른 속담이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원수를 진 사이는 아니지만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가 외나무다리와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만나서 떠나는 여행 이야기니까.

뭐 이렇게도 끼워 맞춘다. 해석은 독자 마음이다.


이 책은 지금 한창 베스트셀러로 순항 중인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가 2015년 '나무 옆 의자'에서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 번째 그의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고 나서 글 참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고스트 라이터즈>, <불편한 편의점>, <연적>을 읽으면서 그는 믿고 읽는 작가가 되었다.

김호연 작가의 책은 한 번 잡으면 끝날 때까지 멈출 수 없다.

손에서 책을 잡는 순간부터 뗄 수 없는 약품처리를 해놓았나? 눈에서 활자 이외의 것에 시선을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희한한 작가다. 독자를 현혹시키는 능력이 있다. 요란하지 않게.

화장도 한 듯 안 한 듯 표시 안 나게 하는 화장이 정성이 더 많이 들어가고 예뻐 보이는 법이다.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 것 같은데 멈추지 않고 읽게 하는 능력의 고수. 시나리오 웹소설, 소설, 만화. 그가 쓰는 것마다 수상 경력이 대단하다. 타고난 천재일까? 알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글 쓰는 재능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정말 많은 글을 쓰고 썼을 거라는 걸.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조만간 읽어 볼) 산문집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에 그의 글쓰기 비법이 있을 것 같다. 그의 첫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에 자신의 '희한한 기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나는 스토리텔러다. 시나리오를 짜고 만화 스토리를 그리며 소설을 쓴다. 10년 넘게 이야기를 써오며 배우고 또 배우는 것이 있다면 바로 ‘진실을 이야기에 담는 기술’이다. 진실과 상관없이 기발한 이야기는 많지만 그것은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 저자의 말 중에서-


옳구나! 진실을 이야기에 담는 기술이었구나. 나도 진실을 담는 글을 쓰는데........? 재미가 없다. 너무 진지한가? 김호연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진지하다. 자신의 인생에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진지하고 진심이다. 표현의 방법. 그 캐릭터들의 진지함을 표현의 방법에 차이가 있다. 캐릭터들이 확실히 살아있다. 촌스럽지 않게, 막 티 나지 않게 스며들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고 나와 다를 바 없는, 살아있는 그대로의 인물이 된다.


그녀가 죽은 지 1년째 되던 날, 나는 연적이었던 놈과 함께 그녀의 유골함을 들고 튀었다.

그녀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자고 떠난 여행에서 두 남자는 서로 경쟁하며 소유하려 든다.

이런 상황. 어떻게 생각하나? 피식 웃음이 나지 않는가?

"있을 때 잘해라!"란 말이 있다. 사랑하는 여인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1년이 지나서 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재미있는 설정이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청년들이 귀한 시간 떠나는 여행인데 그 여행의 파트너로 사랑했던 사람의 전 연인이라. 괜찮을까? 유골함을 좋은 곳에 뿌려주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 모두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남해, 여수, 제주.


혈기 왕성한 두 남자의 동행. 실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면? 옳지 않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여행 파트너다. 그전에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고, 성향도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숙식을 해야 한다니......

그런데 공감대는 있다. 사랑하는, 사랑했던 여인. 연적이지만 의기투합할 수 있는 이유.


여행 중에 예상하지 못한 전개들이 이어진다. 서울로 돌아와 일상을 회복한 듯하나 그녀와 관련된 또 다른 일들이 일어난다. 여행과 글쓰기, 영화, 출판,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살짝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먹먹함... 이 맞을까? 모르겠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 그런가? 다른 단어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적 통쾌함이 있지만 확실한 드라마적 해피앤딩은 아니다. (내 기준에서는) 그래서 우리네 일상 같다. 삶을 사는데 소소한 행복으로 버티는 힘이 현실감이 있다. 인물들의 시, 공간적 배경이나 일어나는 일들이 현실의 우리를 대변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연적과 여행할 일이 내 생전에는 없기를....

아...... 모르겠다. 인생은 모르는 일이 불쑥불쑥 일어나니까. 그럼 나도 드라마틱한 소설 한 편 쓸 수 있을까? 내 일이 아니니까 재미있는 거다. 일단 불편한 인물들은 접속할 일이 없는 생이기를......

사람들에게 잘하고 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서평인지 리뷰인지 모르겠지만-불편한 편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