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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Sep 29. 2022

가려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대하며

상처가 남아도 긁어야 하는

 가려움이다. 가벼움이 아닌.


 한 음절이 다를 뿐인데 그 차이는 형언할 길 없이 무겁다.


 입 밖으로 "가렵다."라고 소리 내어 말하고 보니 위생적이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가려움은  고통이다.

첫 직장인 요양병원에서 정체불명의 접촉성 피부염으로 가볍게 시작한 염증이 온몸으로 조금씩 살금살금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피부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다.  병명도 모른다. 정체불명의 피부염이란다.

가려움과 염증을 가라앉게 하는 연고와 약을 처방을 해 준다.

처음에는 조금 낫다. 일단 가려움은 진정되니까.

그 와중에 병동에 있는 환자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말은 곧 비상 상황이라는 거다. 격리 병실을 만들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AP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얼굴에 투명 실드로 덮은 채 근무를 하게 되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무장이다.

 

 평소에도 신참 간호조무사답게 발바닥이 불이 나도록 빠릿빠릿 하루 종일 움직여 온 몸이 땀인데 식을 새도 없이 그저 내 몸을 땀에 절인다는 뜻이다. 방역을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코로나에 감염될 걱정보다 피부가 더 걱정이 되었다. 땀으로 얼룩진 옷에 하얀 가루가 한가득 자국이 남는다.

땀으로 범벅이 된 피부는 회복되지 못하고 심해졌다.

 정체불명의 피부염은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병원 규모가 꽤 있는 유명한 피부 전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집 가까이 있는 동네 피부과로 옮겨 진료를 다시 받았다. 그렇게 시간만 두 달 가까이 지나가다 결국 처음 다니던 피부 전문병원의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았는데 피부염이 있는 곳을 보자마자 병명을 말씀하신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검사를 통해 확진을 하시고 처방을 해 주셨다.


 병명을 확인하고 제대로 처방을 받은 건 발병하고 4개월 정도가 지난 시간이다.

잠복기가 4주 정도 되는 바람에 제대로 처방받기가 어려웠고 중간에 다른 염증으로 예상하고 바른 연고며 약을 먹은 게 억울하긴 했지만 이 가려움이 해결된다는 희망이 나를 견디게 했다.

가려움도 너무 힘들었지만, 피부가 낫지 않으면 어떡하냐는 두려움이 더 컸다.

처방받고 연고를 바르고 약을 먹었는데 오히려 가려움이 배가 되었다.

바로 다음날 병원을 찾았더니 발진이란다.

 하~~

이 가려움의 끝은 어디란 말인가?


 모기에 물리면 붓고 가려움이 심한 알레르기가 있긴 했는데 그 외에는 피부에 별문제 없이 살았다.

내 피부가 특별한 건가? 어떻든 가려움은 더 심해져서 항히스타민제&항알레르기 약을 먹고 있다.

약을 먹으니 낮에도 잠이 그렇게 쏟아진다. 약을 먹는다고 가려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다. 아주 심한 상태를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게 되는 정도다. 약을 먹지 않으면 더 가려우니 먹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밤에 잠을 이룬다. 잠결에도 가려우니까 긁는다. 긁으면 피부에 상처가 생기는데도 나도 모르게 긁고 있다.

차라리 어디에 긁히거나 날카로운 물체에 베이거나 찔려서 피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피부 어딘가에서 숨어 나를 노리는 놈들을 불살라버렸으면 좋겠는데 보이지가 않으니 죽을 지경이다.

'보이지 않는 적'을 어떻게 당할 것인가. 그냥 이 한 몸 고이 내주어야 하는가?

피부가 화끈거리기도 하고 따끔거리기도 한다. 가려움의 크기는 하늘에 있는 구름을 뚫고 우주로 나갈 기세다.


 성경 속에 나오는 인물 '욥'이 생각났다. 온몸의 가려움에 고통을 부르짖는. 그 욥의 고통이 이러했을까?

그만큼은 아니겠지. 나는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연고도 바르니까.


 가려움의 고통을 맛보면서 가렵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들이 생각났다.

그분들은 정말 많이 힘들었겠다.......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일상이 무너진다. 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집중하기가 어렵다. 회복하기까지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제대로 치료를 하기 위해 결국 사표를 썼다.

감사하게도 회복되면 언제나 다시 와서 근무하라고 말씀해 주신다.

다행히 지금은 극심한 가려움은 벗어나 글을 쓸 만큼의 컨디션이 돌아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인데 환자다. 환자가 아닌 환자가 되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다 보니 참 속상하고 화도 났다.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 못하고 있어서.

답답했다.

부지런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게으른 사람은 아닌 편이라.


누구나 원하지 않는 고난이지만 이 고난이 지나면 한 뼘쯤 자라나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한 번쯤 들어본 말일 거다.

원해서 피부병에 걸리지 않았다. 결코.

이 기회에 말없이 내 몸을 보호해 주는 피부의 소중함을 알았다.

소양증 환자들의 말 못 할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환자들과 가까이하는 직업을 택하면서 환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경험이 아닌가 한다.

환자들을 대할 때 이전보다 조금 더 배려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당부를 하고 싶다.

병원에서 환자들과 밀접 접촉을 하는 직업을 가진 초보 직원은 아무리 급하더라도 환자나 스스로를 위해 필요한 장비나 도구를 꼭 잘 챙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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