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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호 Mar 20. 2018

06 빈티지가 와인 맛과 책 내용을 결정한다

"빈티지는 작가의 삶과 사상이 묻어나오는 결과물이다"

와인은 포도가 수확된 연도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이를 흔히 “빈티지(Vintage)”라고 한다. 포도의 품질은 재배되는 특정 연도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포도는 온도도 높고 건조한 날씨, 낮과 밤의 온도 차가 많이 생겨야 당도가 높아지고 포도가 가진 고유의 풍미가 있게 된다.      


포도가 가진 특성과 토양도 중요하지만, 재배환경 중 수시로 변화하는 날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식물이 열매의 결실을 보는 것은 온도의 차이다. 과실이 생기기 전에는 일정한 일조량과 온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포도의 과일이 생기 위해서는 일조량과 온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대개 과일의 결실기에는 밤과 낮의 기온 차가 커야 당분의 형성이 촉진된다. 온도가 낮거나 높은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과일 형성도 부실해진다. 또한, 결실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현상이 그대로 적용된다.     


여기서 와인 맛은 당도가 중요하고 당도는 날씨 즉, 햇빛에 따라 결정된다. 밤과 낮 날씨가 차이가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책도 이와 비슷하다. 책의 내용은 무엇으로 결정되나? 작가의 삶이다. 특히 우리의 감정과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학 작품이나 철학 분야의 책들은 작가의 집필 당시의 상황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와인 맛이 포도가 수확된 해의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저자나 작가의 인생 역정이 책 내용에 그대로 반영된다. 시련과 고통을 겪을수록 우리에게 생각할 많은 주제가 책 속에 담긴다. 작가의 삶이 책 속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들은 작가의 삶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을 받고 난 이후의 어려움 시기에 집필된 대표적인 역사서이다. 문학 작품 중에는 그러한 사례가 많다.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인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도 피렌체 최고의 공직까지 올랐으나 1302년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20년간 고향을 등지고 타지를 떠돌면서 지은 작품이 바로 ‘신곡’이다. 단테 자신이 정치적으로 성공할 때와 너무 다른 시련이 닥쳤을 때 비로소 지옥과 천국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했다.     


“우리의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단테의 신곡 중에서, 열린책들)‘신곡’의 제 1곡 편 중에서 첫 구절이다. 


그 당시 단테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시로 표현했다. 햇살이 비치는 언덕에서 베르길리우스(로마건국의 신화인 ‘아이네아스’의 지은이)에 안내를 받으며 지옥문으로 가는 상황이다. ‘신곡’의 원제는‘La Comedia di Dante Alighieri’(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로 “단테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삶을 풍자하고 희극적으로 다시 풀어낸다는 것이다. 


2016년 12월 연합뉴스에 "자기의 별,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라"의 제목으로 실린 박상진 교수 단테의 신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우리는 단테가 제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을까 생각해야 해요. 우선 ‘코메디아’라는 말은 우리가 ‘희극’이라고 부르는 것과 상당히 다릅니다.     


단테는 ‘코메디아’라는 용어가 신과 인간의 합일을 의미한다고 밝혔습니다. 간단히 말해 단테는 신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발걸음, 그리고 그 끝에서 성취하는 인간의 구원을 ‘코메디아’라는 용어에 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저는 단테가 신의 섭리보다 인간의 의지와 실천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아요. 이와 함께 ‘단테 알리기에리’라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이유도 중요합니다. 


단테는 인간으로서 의지와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이를 통해 독자들은 단테와 함께 구원의 순례를 떠나면서 인간을 둘러싼 많은 문제를 생각하고 논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경험을 나눈다는 식의 설정은 독자들이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단테와 함께 걷는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인 ‘도스또예프스키’의 작품들도 그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작품들이 출간됐다. 석영중 교수가 펴낸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에서 도스또예프스키가 그의 생애에 걸쳐 “돈”이란 소재를 소설 속에서 어떻게 표현한 것이 그의 경제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였다고 밝힌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의 살인 동기와 행동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3,000루블과 관련하여 주인공 “드미트리” 통해 사실과 진실, 돈에 근본적인 문제를 고발한다.   

  

와인의 빈티지가 포도의 생산 연도의 상황을 알 수 있듯이 책 속에도 작가의 삶과 사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책 자체의 특징을 드러내는 빈티지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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