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차: 회식 투표

이번 주, 나는 익명의 회식 투표를 올린 후, 이 일을 기억하기로 했다.

by 수혁


오늘은 2시 탈출 컬투쇼의 라디오 사연이 귀에 꽂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사무실 공간에서 직원들과의 스몰 토크가 시작됐다. 이야기 주제는 세대 별 회식에 대한 관점 차이였다. 요즘 직장 상사분들은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회식을 잘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부터, 요즘 MZ 신입들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을 수 있기에 회식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까지. 두 가지 관점 모두 그럴듯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처럼, 회식도 그러한 것인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장난기가 돌아 카톡방을 켜고 익명 투표를 생성했다.


“급하게 투표 좀 부탁드릴게요.”



투표 제목은 “회식 이대로 괜찮은가?”였고, 선택지는 1) "점심 회식 원합니다.", 2) "저녁 회식 원합니다.", 3) "안 하기를 원합니다." 정도로 갈무리했다. 투표 기한으로 설정해 둔 7분이 지난 뒤 확인해 보니, D님을 제외하고는 투표를 완료했고, 투표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추가로 확인해 보니 익명 투표는 생성한 사람도 알 수 없었고, 투표 체크 표시는 본인만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나는 웃으며 투표 결과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이거, 안 하고 싶다 누구예요? 전 아닙니다.”

“저도 아닙니다. 하하”

“저도요.”

“저도 진짜 아닙니다. 하하”

“이거 마피아 게임인가요? 빨리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 손을 들어주세요.”


모두가 아닌 상황. 물론, 범인은 당연하게도 나였다. 사무 공간에서 한 번 웃어보자는 마음에 투표를 가볍게 올렸다. 직원들끼리의 회식도 약 6개월 간 없었긴 했어서 가볍게 회식 선호도를 떠보고 싶은 마음은 덤이었다. 그리고 투표 아래에 직원들이 댓글을 올려둔 게 추가로 발견되었다.



마피아 게임이라는 폭력적인 워딩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한 호응들이 너무 신선했다. 그래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농담을 이어나갔다.


“저희 투표 결과에 따라 회식 공지드립니다. 점식 회식 투표하신 두 분은 오늘 12시 30분까지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리시면 함께 회식하시고요. 저녁 회식 투표하신 두 분은 이번 주 금요일 저녁 6시에 사무실에 남아서 회식하시면 됩니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이게 바로 모두가 원하는 회식이자 범인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회식에 관하여 말을 꺼냈지만, 회식 여부는 열린 결말로 두기로 했다. 설 연휴 전까지 처리할 일들이 좀 남아 있었고 설 연휴도 멀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은 당장 회식을 하기 어렵다는 말은 가슴속에 담아두었다. 다만 숨죽여 웃으며 마지막 댓글을 달았다. 아마도 이 댓글을 끝으로 한동안 회식 이야기는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


“나는 기억할 것입니다. (I will remerber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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