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나는 먹고 싶은 점심 메뉴를 물어봤다.
“오늘은 어떤 거 드시고 싶어요?”
오늘은 오랜만에 점심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이번 주 해외 신혼여행을 마치고 복귀한 A님이 가장 먹고 싶은 메뉴였다고 말한 터였다. 빠른 메뉴 선정에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점심 메뉴에 대한 고민을 이유로 1층 로비를 30초 이상 서성이지 않았던 게 대체 언제였는지 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향한 곳은 처음 방문한 가게였고 약 20여분을 기다렸다. 소시지의 퀄리티와 밥의 익힘 정도가 완벽했다. 함께 간 직원분들보다 최소 세 국자는 더 퍼먹었다. 이미 배는 불러 있었고 시야는 흐려지기 시작했다. 소식하는 직원분들이 많아 내 살이 찌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뒤 사무실에 도착했다.
우리 회사는 사무실 근처에서 자유롭게 메뉴를 선정하여 식사를 하고 온다. 근데 점심 메뉴를 선정하는 게 참 어렵다. 일단, 내 입장은 분명했다. 과거 직장 생활 경험을 통해 흔히 윗사람이 결정하는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이 결정하시는 메뉴라는 게 뻔했다. 제육볶음, 김치찌개, 순대국밥, 돈가스, 한식 뷔페의 범주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심지어 나조차도 뻔한 조합의 굴레에서 벗어난 선택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적어도 동료들이 오늘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하였다.
반면, 동료들이 메뉴를 잘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략 이러했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한 동료는 과거 직장 상사가 매운 음식들을 좋아했었는데, 함께 먹고 싶지 않다고 밝히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끝내 말하지 못했다고 했었다. 식욕이 크게 없는 한 동료는 늘 상대방의 기호에 맞추어 결정하다 보니 선택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었다. 심지어 점심 메뉴 선택을 못하는 또 다른 동료는 과거 직장에서 점심 메뉴를 선택하라는 무언의 압박에 퇴사하고 싶었다는 당시 심경을 고백했다.
종합해 보면 점심 메뉴 선택은 누군가에게는 관계 유지의 수단이었고, 배려의 수단이었으며, 업무 외 지시사항이었다.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메뉴 선택은 직장 내에 행사 가능한 권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의 좁은 직장 경험에서 얻은 일반화의 오류였다. 어설픈 배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같은 질문을 했다.
“오늘은 어떤 거 드시고 싶어요?”
“혹시, 그러시면...”
“네 좋습니다. 거기로 가시죠.”
“아, 네!”
너무 기쁜 마음에 참지 못하고 한 동료의 말을 끊고 말았다. 우리가 이틀 연속으로 점심 메뉴를 이렇게 빠르게 결정한 게 얼마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층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의 점심메뉴가 반계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딱히 어떤 메뉴이든 상관없었다. 이내 따로 식사하겠다고 이야기 한 동료가 생각이 나 카톡을 보냈다. 몸이 안 좋아 며칠간 휴가를 썼던 기억이 나서 보양식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A님이 C님 오시면 반계탕 먹자고 할 생각이었다고 하네요. 식사 합류하시던가 따로라도 드세요.”
“다음 주 월요일에 드시면 어떨까요? 아직 감기 기운이 남아 있을까 우려가 되어서요.”
“저희는 이미 가고 있는 중이라, 편하게 챙겨 드세요.”
'배려를 위한 권유'와 '배려를 위한 거절'이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적절히 오고 갔다. 그러나 월요일에 반계탕을 먹겠다는 약속은 끝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이틀 연속으로 점심 선택이 빠르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었기에.
미안하지만, 내일은 내일의 메뉴가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