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아이
우연치 않게 가족들과 같이 주말 오후를 즐길 영화를 찾다가 발견한 숨은 명작이 있었다.
바로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15년도 작품인 괴물의 아이였다.
사실, 영화판이 아니라 만화 버전으로는 따로 봐서 내용을 알고 있기도 했고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에 보는 작품이라 큰 기대없이 뭐 적당히 볼만하다는 생각으로 보았는데,
어라? 생각치도 못한 영화판으로 다시 볼때 느껴지는 의미와 감동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리뷰해보려고 한다.
작품의 내용은 주인공 소년 렌이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친척들이 배려없이 집안을
정리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해 시부야 거리를 헤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갈곳을 잃고 헤매던 렌은 우연히 거리에서 후드를 쓴 남자를 만나고
그러다 그 남자를 쫓다가 골목에서 괴물들이 사는 세상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 괴물들의 세상은 종사라 불리는 지도자 밑에 인간은 없는, 수인들이 살아가는 곳이고
그 수인들 중에 두명의 강한 자가 다음 종사의 자리를 두고 겨룰 날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렌이 만난 남자는 바로 그 강자 중에 하나인 곰 수인, 쿠마테츠였다.
항상 제멋대로이고 혼자 잘난 쿠마테츠는 종사에게 라이벌 이오젠과 격을 맞추려면
적어도 제자 정도는 거두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항상 멋대로인 쿠마테츠에게 질린 수인들은 그의
제자로 있지 못하고 도망가기 일수다. 그래서 쿠마테츠는 렌에게 관심을 보인다.
렌도 이혼한 아빠의 행방은 모르고 엄마는 돌아가셔서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이 지내게 된다.
하지만 결코 그 삶이 만만치는 않다. 제멋대로에 성질만 부리는 쿠마테츠가 렌은 맘에 들지 않고,
렌도 맘대로 이름을 큐타로 바꿔부르고 고집불통인 쿠마테츠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쿠마테츠의 지인인 타타라와 햐쿠슈보 등의 도움과 종사의 조언으로 인해 점차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성장하고, 렌은 17살의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철이 들어 다시 발걸음을 한 인간 세상의 도서관에서 렌은 카에데란 소녀를 만나 도움을 주고
그러면서 점차 인간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도 찾아가고, 아빠와도 재회하게 된다.
그런 렌의 성장과 자아가 마뜩치 않은 쿠마테츠는 렌과 크게 다투고, 그러던 중에 종사의 자리를 둔
이오젠과의 대결의 날이 정해진다. 하지만 이오젠의 아들 이치로히코는 뭔가 쿠마테츠를 노린 음모를 꾸미는데...
과연 쿠마테츠는 그 승부에서 이기고 종사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렌은 자신의 거취를 정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수 있을까?
서툰 아빠와 아들의 서로를 이해하고자 격돌하는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용은 이 정도로 요약하고,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포인트는 바로... 부성애였다.
특히나 딸은 잠시 제외하고 아들과의 관계에 집중된 아버지의 부성애가 대단히 인상깊었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는 묘하게 굳건하지 못한 것이 바로 부성애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안하고, 자식도 낳지 않고, 설령 자식이 있다고 해도, 집안에서 아이들과의 관계는 엄마에게 집중되고
아빠는 외부로 겉돌거나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은 시대다.
거기다, 좀 제대로 된 아빠가 있냐고 하면, 또 그것도 아닌 것이 세상에는 아빠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도 좀 결격인 가부장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보니, 그런 부성애를 말하는 것조차 오래된 추억의
미덕을 논하는 것처럼 진부한 느낌이 들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서 이 작품에서는 의외로 심도깊고 성찰있는 다양한 형태의 부성애를
보여주며 작품에 품격을 높이고 있었다. 이전에 만화 버전으로 봤을 때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그 부성애들의
이야기를 오늘 제대로 느끼고, 하나하나 적어보고 싶어졌다.
우선 지로마루에게 이오젠은 이상적인 부친일 것이다.
처음에는 빌런 졸개 수준이라 생각했던 지로마루는 의외로 대범하고 모범적이면서 옳바른 생각과 판단을
할 줄 아는 이상적인 아이다. 그리고 그런 지로마루의 성장은 많이 챙겨주진 못했지만,
아이의 우상으로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오젠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바른 행동으로 아이를 옳바르고 건실하게 키워냈다는 점에서 이는 가정에 이상적인 부성애라 할 것이다.
그에 비해 이치로히코에게 이오젠은 과욕을 부린 부친이었다.
생판 남인 인간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고, 부족함없이 자신의 자식으로 길렀다. 심지어는 친자인 지로마루보다도
더 큰 애정을 쏟아서. 하지만, 그런 과욕은 이치로히코로 하여금 이상적인 상황이 깨지는 것을
감내할 인성을 담지는 못했고, 그래서 세상에 큰 화를 불러 일으킨다.
남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지금 교육열에 빠져 아이의 성적만 체크하는 아빠들... 조금 뜨끔하지 않는가?
렌의 친아버지는 렌에게 있어 기다려주는 부친이었다.
관련 리뷰를 보면 작중 역할이 너무 적다는 의견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의 삶만 보지 않고, 렌을 찾아다니고 돌아올 자리를 만들고 기다린 렌의
친아버지는 기다림의 부성애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의 인내 또한 렌을 완성시키는 일축이라 생각한다.
타타라는 렌에게 있어서 츤데레 아빠였다.
항상 툴툴거리고, 쓴소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까 안절부절 못하고 떠날때 가장
슬퍼하고 잔정이 넘쳐나는 타타라는 정말로 요즘 말로 츤데레 그 자체 같다. 뭐... 한편으로는 부성애 관련이라
언급하긴 뭐하지만 모성애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어이쿠 이 화상아! 애를 좀 달래라고! 화만 내지 말고!'
이렇게 쿠마테츠 등짝을 때리는 장면이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
햐쿠슈보는 렌에게 있어서 스승이 되어준 부친이었다.
세상에 모든 아들들에게 아버지는 첫 스승이자 길잡이다. 물론 렌의 무술 스승은 쿠마테츠지만
삶에 방식과 태도를 온화하지만 때로는 단호하게 가르친 햐쿠슈보는 진정한 아이의
스승이 되어준 아버지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쿠마테츠. 그는 렌에게 똑닮은 아빠였다.
아들에게 아빠는 보호자인 동시에 넘어야 할 산이다. 친구이지만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기도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울 속으로 보이는 몇십년 전의 나 자신이다.
그래서 둘은 참 닮았다. 서로 사랑받아본 적도 없고, 사랑할줄도 모르는 외토리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가고 고집불통이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고 관계를 성립하였을 때
둘은 맘에 안들지만 똑 닮았고, 그래서 진정한 아버지와 아들이 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렌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쿠마테츠가 독불장군 노총각에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성장하는 것도 담은 성장의 이야기다.
그래서, 한국판 제목은 괴물의 아이지만, 영어 타이틀은 둘이 동등하게
the boy and the beast 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혈연은 아니고 종족마저 다르지만, 아들과 아버지가 만나 서로를 인지하고
부자 관계로 맺어져서 성장하고 견인하고 보듬어 성장하는 것에서 우리는 크나큰 감동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이걸 보면서 예전에 봤던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나왔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의 카메라에 담긴 아빠의 모습을 아빠가 발견하면서, 가족이란 단순히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것만이 아닌,
아이 또한 아빠를 돌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렇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그저 일방적인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보듬고 끌어안고 감싸주면서
같이 성장해 나가는 존재, 어느샌가 집안에 외부인처럼 따돌려지는 아빠들도 그 구성원의 일부분이고,
그래서 쎈척하지만 아빠 역시도 아이들에게 감싸안겨서 살아가는 것이다.
마구잡이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이 다양한 부성애의 멋진 모습들을
더 없이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의 마지막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삶이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도 힘들겠지만 아빠들도 많이 힘든 시간이다.
가끔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따스한 교훈처럼, 그저 일방적인 육아와 가르침이 아닌, 동등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그런 포근한 마음으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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