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던 어느 밤에
어쩌다 보니 보려고 계획했던 독서 계획과 무관하게 갑자기 이꽃님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워낙에 명불허전의 청소년소설의 거장이시다 보니, 여러가지로 리뷰에도 준비를 고민하고 쓸까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만남에 이어 예전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손을 뗄 수 없는 몰입감,
그리고 그 감정을 그대로 리뷰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 우당탕탕 리뷰를 시작해 본다.
이야기는 주인공 가을의 일상에서 시작한다. 고3이 된 가을은 여러가지로 대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동시에 나이가 들면서 소원해진 절친 유경과 균과의 거리로 인해 고민하게 된다.
그런 가을에게 고민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가족이다. 가을의 엄마는 동네 무당에게서 듣고 온 섬뜩한
점괘에 불안감을 느끼고 가을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쉴것을 강요한다.
그에 비해 유경은 실직한 아버지 덕분인지 묘하게 공부에 집착하며 아등바등 성공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입시기숙학원에 가서 고향 친구들과 얼굴 볼 틈도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균은 엄마의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서 일하며 가을과 유경의 중재자처럼 머물지만, 그 역시도 강압적이고
타산적인 엄마로 인해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생각치도 못한 사건이 생긴다. 소원해진 유경에 대한 푸념을 균에게 털어놓고
편의점을 나오던 가을은 갑자기 들이닥친 음주운전 사고에 휘말린다.
다행스럽게도 아무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을의 귀에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예전에 절친이었던 봄의 목소리가.
그리고 가을은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린다. 서로 계절의 이름 덕분에 같이 단짝으로 어울려 다녔던
9살 시절의 절친 봄. 그 아이는 이상하게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계속 놀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아이들은 나중에 알게 된다. 봄이 부모의 아동학대로 사망하고 나서야.
그렇게 봄은 어른이 되지 못하고 9살에 추운 겨울날 세상을 떠났고,
남겨진 친구들은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어른의 문턱에 다다른 시점에 그 기억을 떠올린다.
그 사건 이후 방황하던 가을은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서서 정처없이 발걸음을 동네에 유명했지만
이제는 폐업한 테마파크 판타지아로 향하고, 뭔가에 홀린 듯이 그곳에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서 재회한다. 예전에 헤어진 친구 봄과. 여전히 9살의 나이로 하나도 자라지 않은 모습으로.
그리고 가을이 그곳을 향하고 남겨진 친구들과 가족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난리가 난다.
갑자기 사라진 가을의 행방을 찾아 다니고, 서울에서 기숙학원에 붙들렸던 유경마저도 달려온다.
그렇게 가을의 행방을 찾아헤매는 아이들은 동시에 가을이 사라진 원인으로 짐작되는
봄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들 역시도 그 아이의 속삭임을 들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과연 그 시절 감당하기 힘든 끔찍한 사건을 겪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원치 않고 성장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어른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은 정말 괜찮은 걸까?
마음이 메마르다 못해 버석해지고 무가치해질 정도로 문드러진 어른들의 이기 속에서 자그마한
감정의 온기와 추억의 등불을 지키려는 아이들의 노력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꽃님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시린 청춘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내용 정리는 이 정도로 하고, 일단 작품의 첫 소감은 명료하다.
역시 이꽃님 작가님은 믿고 보는 청소년 소설의 보증서다.
최근에 여러가지로 독서량을 늘려가면서 이런저런 작품들을 읽게 되고, 동시에 이꽃님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서 조금 과한 반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봐도 역시 그런 의견에 대해서는 좀처럼 수긍하기 어렵다.
확실히 문장을 구사하는 느낌이나 서사의 구조, 수사법 등에 대해서 지독하게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작풍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을 낮게 볼수는 절대 없는 것이
이 책의 주연들이자 동시에 읽을 대상들인 청소년들, 그 감성에 대해 이 정도로 밀도있고 친숙한
화법을 구사하며 자연스럽게 그것을 서사로 연결시키는 부분에서는 비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참 전체적인 작품의 느낌이 그렇다. 그 시절 우리가 아직 어른이 되기 전에 품고 있던
불안감과 미숙함, 그리고 동시에 막연한 희망이 섞인 감정이 어른들에 의해 퇴색되지 않은 느낌
그대로 그려져서 그 거친 화풍이 오히려 초심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래. 우리 모두는 언젠가 청소년이었다. 여기 나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압박에
시달리고 주변의 일들에 고민하고... 동시에 마음 속에 내지르고 싶은 비명을 억지로 참으며
꾸역꾸역 어른의 영역으로 내몰린... 그런 아이들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이야기에 공감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친구의 이야기고, 잊혀진 추억의 이야기며, 치유되지 못한 상처의 이야기다.
어른들이 되면 가장 먼저 시시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일지도 모를 그 세가지에 대한 다이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삶에 찌든 어른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냥 애들이 어린 시절 잊혀진 친구를
그냥 추모하러 추억의 장소에 들어가는 그냥 그런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런 감상을 느낀 어른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디 현실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고. 당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미친듯이 쌓아올리는 타산의
무더기는 생과 사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경계에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그러고 보면 참 리뷰에 대해 다시 한번 시도하기를 후회하는 마음이 든다.
좋은 리뷰라면 좀더 작품에 대한 해부적인 고찰을 하고 위트있고 센스있는 서술로 그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감상을 풀어내고 때로는 내 의견을 담는 것이 왕도이거늘...
작가님 작품을 접하다보면 이래저래 그 시절 감성으로 돌아가 감정이 과잉이 되어서
작품에 대한 리뷰보다는 아이들의 시점에서 느끼는 어른들의 세상에 대한
부조리함의 토로가 주된 이야기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잠시지만 감정 시간이 몇십년 전으로 전이된 기분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리뷰의 마무리는 적절한 결론보다는 읽어보지 못한 분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작중 인물들과의 공감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 역시 너희들과 같이 그 아이를 추억하여 잊지 않으리라 약속할게.
아무리 매서운 겨울이라도 봄은 반드시 찾아오고야 말 테니깐.
작품의 마지막 대사로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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