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의 사회는 깊고 복잡하다.
과거의 동화들과 청소년소설들이 그런 기저에 깔린 깊이를 보지 않고 표면적인 시련과 갈등에 주목하였다면
최근의 작품에서는 그런 심층적인 속내를 들여다본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오늘 소개할 체리새우가 그런 말하기 힘든 아이들의 깊은 세계를 진정한 의미로 제대로 다룬 작품이었던 것 같다.
뭔가 귀여운 제목과 표지에 어울리지 않게 심오한 세계를 보여준 이 작품의
여운을 느끼며 오늘 한번 리뷰해보고자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다현이의 푸념으로 시작된다. 새학기가 시작되서 발표된 반배정,
거기서 절친이던 다섯손가락의 멤버들과 전부 같은 반이 되지 못한 것에 큰 실망을 하게 된다.
거기에 하필이면 짝은 다섯손가락의 멤버인 아람이가 학교에서 두번째로 싫어하는 아이인 은유.
지병에 가깝던 과민성대장염은 도지고, 절친인 아이들과는 왠지 멀어진 것 같아 우울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하필이면 수행평가 과제를 하게 된 모둠은 은유를 포함한 내키지 않는 아이들의 그룹.
다현이는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어질 것 같은 다섯손가락의 멤버들을 붙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그러면서도 수행평가에 참석을 요구받는 모둠의 일에도 발을 빼지 못하게 된다.
과연 다현이와 다섯손가락의 우정은 잘 이어질 수 있을까?
그리고 은유를 포함한 새로운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의외로 다현이는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자기 내면과 마주한다.
사실 이 작품의 존재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추천받는 권장도서였고
그래서 실제로 집에서 아이들에게도 몇번 읽히게는 했지만, 정작 나는 읽을 기회를 못가지다가
우연히 이번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읽고 나서 왜 이 작품이 그토록 추천을 받았는지 대번에 알 것 같았다.
얼핏 보기에는 이 작품은 다현이가 겪는 중학 생활의 좌충우돌을 생각보다 담백한 문체로 풀어낸
뭔가 일기 같은 느낌의 글이다. 다른 작품에서 보이는 문학적인 표현을 일부러 자제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상당히 간결하고 일상적인 문체와 대화에 집중한 전개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그렇게 단순하고 평이하지 않다.
아이들의 사회에서 발생되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보이지 않는 다툼, 따돌림, 시기와 같은 복잡한 양상을
놀라울 정도로 심도있게, 하지만 멀지 않고 가깝고 친숙하게 다루고 있다.
아마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사회적 동물이고, 그렇기에 발생되는 사회적 관계속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갈등들.
누가 나보다 다른 누구보다 더 친하다던가, 난 별 생각없이 말했지만 너는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거나,
다 같이 따돌리길래 나도 얼떨결에 동조했는데, 어느새 내가 따돌림당하고 있다던가,
그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불쾌한 기억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모두에게 공감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깊은 탄식을 하게 만들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쩜 이리도 우리가 겪은 일들을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담담히 서술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동시에 이제 어른이 된 입장에서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것은 지극히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과 같이 살아가면서, 아마도 이런 불편한 관계를 한번도 겪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놀랍게도 그런 불편함을 유발한 당사자들도, 각자 저마다의 불편함이 상존하고.
그래서 그 누구도 가해자가 아니고, 동시에 피해자일 수 있다는 세상의 차가운 현실이 여기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아이 역시 구성원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참... 고민이 많아지는 이야기다.
마지막에 우리의 주인공 다현이는 체리새우라는 키워드를 통해 다행스럽게도 결국 한단계
성숙해진다는 결말로서 성장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것이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지.
작가님이 던져주신 희망의 실타래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근심을 가지고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이 작품은 어른들도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한번 꼭 읽혀보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이라면 더욱더 읽혀야 할 것 같고.
어쩌면 부질없는 바램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한번쯤 혹시 내가 다현이가 아닌
나머지 다섯손가락이 아닐지, 그리고 스스로를 은유로 착각하고 있지 않을지 돌이켜 볼 기회를 만들어준다면
세상에 이 작품이 기여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리뷰를 마친다.
P.S 1 의외로 아이들의 소감이 흥미로웠다. 뭔가, 막장 드라마를 본 어른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문체가 간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긴 작품을 어떻게 봤나 싶었는데,
역시... 막장의 힘은 과소평가할 게 아닌건가? 농담이고, 그 정도로 필력이 출중한 작품이었다.
P. S 2 은유라는 캐릭터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생각이 깊어지는 기분이었다.
뭔가 복잡하게 꼬인 인간 관계를 푸는 트리거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의 삶이 그저
칭찬하기에는 안타까운 면모가 있다는 점에서 나름 입체적인 기분이었다.
은유와 아람이의 대칭성이 결코 이분법이 아닌 구도하는 점에서, 리뷰 다쓰고 나서도 다시 한번
참 생각할 것이 많다는 기분이다. 여운 오래가고, 작품 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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