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희의 오늘
책을 읽다보면 가끔 트렌드를 타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뭔가 비슷한 톤의 작품을 같은 시기에 동시에 읽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다. 이외로 이런 비슷한 느낌의 작품을 같은 시기에 몰아보는 것은
그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를 좀더 다양한 시선과 입장에서 보게 될 수 있어서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온 기분이 드니깐.
지난 번에 소개한 체리새우처럼 오늘 소개할 동희의 오늘도 그런 느낌으로 보게 된 작품이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지난번 리뷰 작품인 체리새우에서 느낀 느낌과도 연계해가면서 이 작품을 리뷰해보고자 한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 동희가 하루동안 겪는 일이다.
시골에서 필리핀 출신 새엄마와 이복 동생과 살고 있는 주인공 동희는 전날 친구 하연에게서 온 문자 한통에
불안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엄마가 외국인이라는 비밀이 들통났다는 것.
그날은 하필이면 학교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오고 자신있던 영어말하기 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 비밀이 친구 그룹에서 그날 들통이 났고, 자신이 그걸 비밀로 밖에 할 수 없었던 껄끄러운 상대인 유미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배제하고, 동희는 그것이 믿었던 하연의 배신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과연 비밀이 알려진 경위는 무엇일까? 그리고 동희는 무사히 대회를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동희에게 가장 믿음이 되지만, 동시에 문제의 원인이기도 한 새엄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동희에게 아주 긴 하루가 될 시간의 타임라인이 흐르기 시작한다.
사실, 작품의 구성은 놀랍게도 바로 전에 소개한 체리새우와 비슷한 아이들의 그룹에서 발생한
사소한 오해와 갈등, 그리고 인간 관계의 파국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체리새우가 그 계기가 외부에 요인이 있다면, 동희는 그룹 내부의 더 친밀한 사이의
관계에서 유발된 내용이니깐. 그리고 나름 긴 시간적인 흐름을 가지고 서사를 끌어가는
체리새우와는 달리 동희는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 신속하게 갈등의 내러티브를 촘촘히 끌어간다.
그래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체리새우가 8부작 드라마 같은 느낌이었다면,
동희는 한편의 극장 영화 같은 느낌이었다.
우선 이 작품을 보면서 가장 임팩트 있게 느꼈던 것은 역시 시간이다.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작품은 아이의 심리와 갈등, 그리고 그 서사를 유발한 과거의 이야기를 치밀하게 구성하여
스피디하면서도 동시에 흐름이 끊어지지 않는 깔끔한 이야기 구조를 완성하였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 정말로 호흡이 빠른 영화를 본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시간과 분 단위로 표시된 챕터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마침내 갈등의 카타르시스를
만드는 모습에서 작가님이 동시에 거장 영화감독같은 연출을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매력은 역시나 인간 관계의 갈등이다. 체리새우와 마찬가지로 얼핏보면 사소할지도 모를
여자 아이들 사이의 그룹과 그 안에서의 갈등. 그것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서술되며 거기에 제법 놀라운 반전까지 포함하여 완벽하게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지난 번 체리 새우에서도 고민하게 만들었던 소재지만,
이번에는 가족의 출신같은 통제불가능한 요소까지 포함된 아이들 사이의 갈등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차가운 칼날처럼 아이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기분이다.
덕분에 다시 한번 지난번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세상을 살아가며 발생하는 인간 관계의 갈등과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조금 안타까운 것은, 그래도 체리새우가 막연하지만 희망의 단서를 체리새우라는 아이콘으로 던져주었다면
왠지 이 작품에서는 하루가 끝남과 동시에 해소되지 못한 갈등도 끝이 날 것 같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지만 더 차가운 결말로 인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동희는 잘 잤겠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사람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사랑이던 모험이던 절망이던...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을 위한 작품에서, 그런 사람으로 부터 오는 관계의 덧없음과 동시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단
자각이 과거에 막연한 희망을 노래하는 것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느끼며 아쉬움을 느낀다.
이제는 누군가의 말처럼, 좋은 친구를 가려 사귀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친구 다 나중가면 필요없으니 한두명만 두고 크게 연연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뭐, 근데 필자 본인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니.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잘 짜여진 타임라인으로 구성된 완성된 걸작이라 평하고 싶은 작품이며
동시에 인간 관계의 갈등을 현실적이면서도 냉정하게 그리고 있는, 차가운 성숙함을 가진 작품이었다.
체리새우와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 고민이 있는 아이들이나, 혹은 어른들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때로는 본인이 집착하고 있던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하룻동안에 헤프닝인지 깨닭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깐.
P.S 1 작품에서 의외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다. 동희의 새엄마인 카밀라였다.
필리핀 이주 여성이란 핸디캡 포인트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시종일관 당당하고 좋은 엄마이고 좋은 어른인
그녀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래, 매력적인 인물은 바로 이런 거야. 스스로에게 말해본다.
P.S 2 동희가 겪은 하루가 어쩌면 먼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르게단 생각이 근심이 든다.
출생률이 나날이 떨어지는 요즘 시대에, 저런 똑똑하고 됨됨이가 된 혼혈 가정의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과연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뭔가 근 시일 내에 그런 갈등을 다룬 작품을 볼 것 같아 두렵다.
#동희의오늘 #동화 #청소년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