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숲에서 생긴 일
다양한 책들을 읽다보면, 항상 서로 다른 느낌을 받게 되지만 그 중에서 유독 인상이 깊게 남는 작품은
그 작품 하나에서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서 군더더기가 없는 작품이다.
일필휘지로 더 이상의 사족을 붙일 필요가 없는 완성된 작품. 오늘 소개할 작품이 딱 그런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깔끔하고 시원한 기분마저 느껴지는 완독 후의 기분을 느끼며 리뷰를 시작해본다.
이야기는 주인공 현규가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가면서 시작된다.
평소에 소원하기만 한 가족들과의 불편한 여행에 현규의 마음은 편치가 않고, 그러던 와중에 폭우로 인해
보름달 숲에 갇히게 되자 그 불만은 극에 달한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숲에서 친절한 통나무집 주인 아줌마와 조카를 만나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식사까지 대접받게 되는데, 속이 좋지 않았던 현규는 그것도 먹지를 못한다.
다음날, 갑자기 가족들이 사라지고 그곳에 주인은 수상쩍기 그지 없는 행동을 보인다.
그리고 그 사실에 의심을 하는 현규에게 뭔가 비밀을 숨긴 듯한 주인 아줌마의 조카는 곁을 맴돌면서
뭔가 숨겨진 비밀을 알려주려 하는데... 과연 그 보름달숲과 주인 아줌마가 숨긴 비밀은 무엇일까?
그리고 현규의 가족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의문스러운 이야기는 전래동화에서 비롯되는데.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라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은 모두가 다 아는
구미호가 등장하는 유명한 전래동화를 베이스로 만든 작품이다.
사실 동화에서 유명한 전래동화를 기반으로 리뉴얼하거나 자신만의 리크리에이팅을 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창작 방식이다. 그런데... 이게 참 쉽고 모두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은근히 원작을 넘어서는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그래서, 유감스럽지만 동화 창작 부문에서 농담처럼 도는 이야기가, '제발 구미호는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구미호가 소재로 사용되었고,
의외로 많은 작품이 원전에 비기기 어려운 평작이나 범작이었을까?
그런데 이 작품은 다르다. 중요해서 다시 말하건데 명백하게 다르다.
이 작품은 원작이 담고 있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괴한 분위기와 조금씩 다가오는 초조함과 압박감
그리고 예상을 깨는 반전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이 원작에 비견되는 가히
리파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독창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수준 높은 작픔인 것이다.
얼핏 보면 항상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가족과 소원해서 차라리 게임이나 하는 것이 속편한
무심한 소년이 정체불명의 이상한 존재와 조우하면서 겪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시각각 주변을 둘러싸서 조여들고 스며드는 공포의 압박과, 동시에 주위를 맴돌면서 그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조력하는 조력자의 존재, 그리고 서사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의 정체와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반전까지 어느 하나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정말로 간만에 아이들 작품을 통해 느껴본 스릴러에 가까운 긴장감이었다.
이 작품을 쓰신 최은옥 작가님은 원래 내멋대로 뽑기 시리즈로 유명하신 분인데, 아니...
어떻게 이런 전혀 다른 느낌의 문체의 작품을 쓰실 수가 있었을까?
대표작과는 너무 다른 필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고, 동시에 이런 느낌의 작품이
오히려 작가님의 실력을 보여주는 대표작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가장 감탄하였던 부분은 역시 마무리였다.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기승전결이 모두 담겨져 있고
더 이상의 여운과 여지가 없는 깔끔한 결말. 여기서 다시 한번 감탄하였다.
솔직히 요즘 많은 작품들이 은근 후속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써서, 작중에 모든 이야기를 다 담지 않고
여지를 두거나 혹은 열린 결말로 마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정말로 여기서 깔끔하게 끝을 맺는다.
더 이상의 그 어떤 미적지근한 기분마저 남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그래서 종합적으로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서늘한 긴장감과, 신선한 반전의 충격과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기분좋은 감상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사실, 여름의 무더위에 소개하면 작중의 시간과도 맞고 이 서늘한 느낌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을텐데
조금 늦게 소개를 드린 것이 송구스러울 정도다.
뭔가 모두가 아는 그 전래동화를 현대를 배경으로 이렇게 멋지게 리파인한 작품을 보면서
고급스러운 서늘함을 느끼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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