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슬프지 않을 때의 슬픔

내게 가장 소중한 너를 지키는 방법

by 송수현

지금 나는 속수무책으로 자책을 하고 있다. 임신기간부터 이혼과정, 그 후로 지금까지 나는 내 아픔과 내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느라 그동안 예나를 방치한 것이 아닐까, 하고 지금 예나에게 일어나는 사소한 모든 일들이 내 잘못으로부터 나오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잘해왔다고, 지금까지 정말 잘했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분명 잘할 거라는 말이 사무치게 듣고 싶다. 진심 어린 위로와 공감이 간절하게 필요하다. 하지만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있는 상황과 문제가 아니라서... 주변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


작년 연말, 전남편의 사망소식을 알게 된 후 (상속포기 등) 해결해야 할 일들이 몰려서 정신없이 시간이 흐른 탓에 예나 감정을 더 돌보아주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그 당시 전혀 슬프지 않은 나의 감정이 예나에게 투명하게 드러나 죽음에 대한 반응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 문제였을까. 아직 인생 6년 차 예나에겐 모든 것이 다 버겁고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 36년 차인 나도 처음 겪는 이런 일들이 이렇게 어려운데, 당연한 거겠지.


"죽은 아빠가 다시 와서 엄마 데려가면 어떡해? 또 엄마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면 어떡해?"

문득 내뱉는 예나의 말에 흠칫 놀란다. 그만큼 예나도 힘들었구나. 아파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구나.


"그래도 나 낳게 해 준 아빠니까. 미웠지만 죽어서 불쌍해. 사실 싫기도 했지만 그렇게 싫지 않았어."

혼란스러운 마음과 생각이 예나를 많이 어렵게 하는구나. 아파하는 엄마 눈치 보느라 진짜 예나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예나는 생각나서 속상하거나 아파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고 아빠 얘기 하고 싶으면 엄마한테 맘껏 꺼내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는데, 그걸로 정말 나아질 수 있을까. 미안해진다.


좋든 싫든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처음 접한 예나인데, 그때 내가 너무 가볍고 쉽게 죽음이란 것을 넘겨버린 것이 잘못이었을까. (엄마의 죽음에 관해서는 분리불안까지 겪으며 극도로 두려움을 겪었으면서도) 죽음에 대한 말을 한 번씩 쉽게 내뱉는 예나를 마주할 때면, 당장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순간 얼어버린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나아질 수는 있는 걸까. 우리가 지내온 지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내가 앞으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싸여 자책을 하게 된 것 같다.


여전히 마음이 어렵다. 슬프지 않은 나를, 슬플 이유가 없을 엄마를 아직 너무 어린 예나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참 어렵다. 착한 거짓말조차도 못하는 나라서 더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예나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니까, 정말 너무 어렵지만 조금의 거짓말을 하기로 선택했다.


죽음은 슬픈 것이 맞다고, 그렇지만 엄마는 예나를 지키고 키워야 하고 힘을 내야 하니까 (32살.. 아직 젊은데 안타까웠다, 진심으로 잘 살길 바랐고, 예나 위해서라도 본인 행복 찾아 잘 지내길 소망했으니까, 그리고 미움과 원망이 많이 사라져서 더더욱 슬플 이유는 없었다, 가 정말 솔직한 마음이지만) 슬픈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예나한테는 아빠긴 하니까 엄마한텐 고마움이 남았다고. 그렇지만 예나는 문득 생각나 울고 싶거나 슬퍼하고 싶으면 언제든 엄마한테 이야기해도 된다고.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혹시 예나가 먼저 죽어도 엄마가 또 울지 않을까 봐, 그게 무서웠어?"


"(눈물 왈칵 엉엉 울며).......엄마 울어줄 거야?"


"그럼 당연하지. 예나가 엄마 곁에 없으면 엄마는 너무너무 슬퍼서 매일매일 힘들 것 같아."


"엄마 죽으면 나는 엄청 울 거야. 매일 밥도 안 먹고, 매일 울기만 할 거야!라고 하면 엄마가 많이 속상할까?"


"혹시라도 나중에 엄마가 먼저 죽으면 엄마는 우리 예나가 너무 오래 엄청 많이는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까지 남은 시간 예나가 예쁜 추억 많이 남겼다가 엄마 만나면 다 자랑해 주면 엄마는 너무 좋을 것 같아."


"알겠어! 엄마 먼저 죽으면 엄마가 못하니까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도와드리고 다 할게. 그리고 내가 먼저 죽으면 엄마는 (참지 말고) 엄청 울어도 괜찮아. 그리고 일도 매일 쉬어도 괜찮아. 알았지? 꼭 그렇게 해야 해."


우리는 이번에도 결국 해답을 찾았다. 또다시 둘이 함께 잘 이겨냈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쓸 때만 해도 과연 풀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마무리는 저녁에 해야지'하고 저장해 두고서 예나 하원하며 스리슬쩍 이야기를 다시 꺼내며 예나를 살펴보았다. 어느 때처럼 소소하게 나눈 대화 속에서 우리만의 답을 찾을 수 있어서 뿌듯했다.


이 글의 마무리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마칠 수 있어서 기쁘다.


모든 죽음이 슬프지 않을 수 있다.

예나와 나 사이의 '30년'이라는 시간과 경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언젠가 예나도, 적어도 30년 후에는 엄마의 마음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뭐가 됐든 우리 예나의 마음이 평안하길 언제나 소망한다.






1730095457142.png 예나 그림 @artist.songy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