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보다 '꽃사장님'이 좋아요.
내가 만든 꽃을 받은 사람에게서 '얼마짜리냐? 그 금액에 못 미치고 너무 허접해 보인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냥 보아도 예쁜 것이 꽃이거늘.. 그런 꽃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만들어 그저 미안할 뿐이다.
다른 꽃집과 비교하지 않아도 동네 꽃집이라 무시하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사실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아이코,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니.. 믿고 맡겨주셨을 텐데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진심으로 깨닫고 '내 실력이 부족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할 나인데.. 마음이 아팠다. 나의 발전을 위한 피드백은 맞지만 호통치듯 이야기를 하시니 오랜만에 직장 상사한테 된통 혼난 기분이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울컥 서러웠다 해야 하나.
보통 특별한 꽃은 2-3일 전에 미리 주문을 받지만 '꽃이 언제 갑자기 필요할지도 모르니, 되도록 연중무휴로 열어둡니다'의 부모님 뜻을 이어받아 당일 예약도 현재 화원에 있는 꽃에 한하여 주문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 일 같은 경우에는 하루 전날에 주문을 받아 아주 조금 억울하다 느낄 법도 싶지만, 받을 분에 대해 자세히는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라며 나 스스로 착각을 한 것이 실수였다. '화려한 스타일과 붉은색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라는 대략적인 말만 듣고 평소 주문받을 때보다 세심하게 주문을 받지 않은 내 잘못이 크게 느껴졌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은 내가 조금 더 세심하게 주문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만든 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을 것 같아.'라는 자신 없음 보다 인정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각자가 추구하는 예쁨'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 예쁨을 다 내가 만들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모든 사람의 마음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저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내가 그 순간 최선을 다 했다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상대의 몫. 그러니 모두가 내 맘 같을 수는 없다'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름 10년 된 꽃 사장님이라 더 이상 속상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결국 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 오히려 지금은 감사함이 크다. 하지만 호통 피드백에는 아쉬움이 있다.
"결혼해야지" , "이제 아이 낳아야지" , 내 사정을 알리는 없지만 "둘째 낳아야지" , 내 사정을 알고도 "재혼해야지" 등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동네 어른들은 본인이 살아온 삶이 옳고, 맞다 생각해서 마주할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하신다. 그런데 나는 '생각해서 하는 말이 엄청난 상처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내가 더 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상처주진 않았을까. 내 말이 누군가를 아프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조금 촌스러운 것들을 좋아한다. 다채로운 색감을 좋아하기도 하고 소박하고 수수하고 소소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들과 나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고집하는 손님들과 겪는 충돌은 내가 한 발자국 물러 설 수밖에 없다. 엄청 화려하거나 세련된 느낌의 아티스트적인 작품을 원한다면 애초에 다른 곳을 찾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동네 꽃집이 그렇지'라고 말 하기엔 이미 유명세를 겪고 있고, 내 소신만을 밀고 가기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급박한 상태는 아니지만 나의 고충은 10년째 똑같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촌에서 유일한 꽃집이었다. 이제는 너무 흔해진 꽃집이지만 '뽀빠이 화원'만의 스타일과 나름의 매력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플로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앞으로도 '꽃집 아가씨'(는 아쉽게도 이제 들을 수 없겠지만), '꽃집 언니', '꽃사장님'으로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