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이 아니라 웬수

2014.07.05

by 종이소리
창신동 2014

2014년 7월 5일.

창신동에 작업실을 계약한 지

한 달이 되었다.


계약할 당시엔

금방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게

쉬운 길만 있을까.


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는

순조로운 항해의 운명을

타고나지는 않았다는

거대한 방점 하나가 찍히는 순간이다.


작년, 2013년 7월이었다.

우송 김대희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와

내가 미루어 두었던 꿈을

더 이상 골방에 묵혀 두지 말라며

꾸준히 끌어주고 밀어주던

큰언니의 갑작스러운 타계로

모든 작업을 중단했었고

그로 인한 내 꿈에 대한 미래는

고방에 갇힌 신세가 되었었다.


쇳대를 잃었었다.

아니 쇳대 찾는 일 자체를

외면했었다는 것이

더 올바른 표기겠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개인 블로그도,

작업실을 드나드는 일도,

강습을 위한 일정도,

그 의무와 목적을 잃었었고

책임을 외면했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주어진 하루 속에 인연을 맡긴 채

시간의 겸허한 노예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막무가내

자포자기식 결심에도

나는 '나중'이라는 시간에게서

완벽한 허락을 받지 못했다.


'잃어버린' 쇳대를 찾아 준 것은

한 장애인 수강생이었다.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쇳대를 쥐어 준 그녀.


9개의 글자로 새겨진 쇳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삼청동과 인사동을 시작으로

수많은 ""를 찾아다니면서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고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며,

바로 가도 될 길을

에둘러 말하는 습관처럼

빙빙 돌아 걷는 시간소비를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니 편안하다고 느낄 만큼

부끄럽지 않았고 조급하지도 않았다.


그저 때를, 시간을,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이런 순례자 같은 행보 속에서

튀어나오거나,

오래전부터 여기 있었는데

내 오만과 무지가

알아보지 못한 '탓'으로라도

기다리고 있을 것을

믿었고 또 자신했기 때문이다.


이 교만스러운 믿음은 바로

"의지가 되는 인연들"이

끊임없이 보내오는

보이지 않는 격려와 토닥임,

우정, 위로, 그리고 사랑에

있음을 당당하게 고백해야겠다.


그 은혜로운 선물꾸러미 속

이름에 대한 인사

나의 오빠, 이 사람부터 시작해야겠다.

각도를 준 현관문의 꿈이 피던2014


"○○아~ 여기 경사가 상당히 재밌어^^

이렇게 기울어졌는데

어떻게 꽃들과 나무들은

저렇게 똑바로 서서 자랄까?

참 신기하지?"


오빠와 그의 아내와는

언니와는 친자매처럼,

오빠와는 친남매처럼,

때로는 아웅다웅 원수처럼

15년이란 인연을 맺은 사이.


그런 오빠가,

입가에 묘한 곡선을 그리며

반짝이는 눈빛을 쏘아댄다.


"우리 입구 문을

경사 각도로 만들어 보까?"


"그게 뭔데? 뭐?, 경사가, 아니, 각도로

뭘 만든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축 감리가 전문인 양반이

내 문에다가 뭘 어쩐다고?

라는 생각이 아니라

내겐 너무 설레는 제안이라서

터져 나온 환호였다.


"음. 그런데 아무래도..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겠구나..

다부, 도로, 다시, 턴, 턴, 턴!!"


내가 쌍수를 들고 환호하자

바로 내빼는 이 상황을 자기는

뭐가 좋아서 크크크 흐느끼는지

그런 그를 보며 따라 웃는 내가

더 이상한가 싶고.


매번 당하면서도 매번 웃음으로

마무리되는 이해 불가한 인연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웬수라고 부른다.


" 오빠는 은인이 아니라 웬수다 웬수!!"


결국 경사 각도 현관은

다음 임차인의 취향을 위해

포기각서로 마무리했다

다소 아쉽지.. 아니 매우 아쉽지만

꿈을 잠시 미룬 것으로 약속했다.

아무런 약속 기일은 없었지만

서로 나누는 미소 속에

응원과 위로가 듬뿍 담겼다는 것이

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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