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이 길로 갈래요

2016.07.10

by 종이소리

한 시간이 넘는 대화를 마치고

딸들은 각자 제 방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미성년의 대열을 지나

성년이 되어버린 두 딸과의 대화가

무릎 꿇고 자세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듣는 요즘이 되었다.


" 처음으로 '생각의 가치'를 깨닫게 된 그날은 엄마가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기보다 모든 일을 다 맡겨 준 것에 고마웠어요. 잔소리는 지나칠 만큼 아껴서 우리에게 무관심하다느꼈었는데.. 직접 겪어보고 깨달으란 철학적 충고였던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어린 나이가 뭘 안다고??"


"막내가 여섯 살 때 제 사촌동생에게 했던 일을 보고 깨달았지. 숫자나이로 어리다, 컸다를 가늠할 수 없다고. 많은 경험과 체험에서 얻은 지혜와 지식이 참 자람을 이끌어 줄 거라고. 그 과정에는 잔소리보다 스스로 깨닫는 기회를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고. 그렇게 너희가 가르쳐 준거란다. 그런 면에선 오히려 너희가 내 스승이지 "


그랬었다.

'엄마'와 '어른'이라는 자격

어떤 이름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깨달으며

소름 끼치게 긴장했던 그날은

막내가 여섯 살 때였다.


아랫동서와 커피를 마시려고

뜨거운 커피잔을 식탁에 내려놓았는데

4살 배기 조카가 다가와선

뜨거운 커피잔을 잡으려 했다.

제 엄마는 기겁을 하며

아이를 잡아챘었다.


아이가 다칠세라 터져 나온 비명과

놀라움이 터뜨린 야단에

조카는 민망함과 놀람을 감추지 못해

엉엉 울었고 동서는 우는 아들을

달래기보다 등을 때리며 화를 냈었다.


왜 야단을 맞는지 모르겠다는

아들의 마음은 모르고

엄마는 "큰일 난다. 다친다"만 소리치며

아들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야단이었다.


주방 멀리 거실에서 놀던

여섯 살짜리 누나의 귀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는지

비비안나가 콩콩 달려왔다.


이유를 묻는 비비안나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네 살박이 동생은

누나의 등장에 더 서럽게 울어댔다.


설명을 들은 비비안나는

눈물범벅이 된 사촌동생의 손을 잡더니

"막내야. 이거 만질라고 그랬어? 이렇게 뜨거운데? 자.. 누나가 천천히 만져보게 해 줄게"


그리고는 동생 손가락을 천천히

커피잔에 살짝 데려다주었다.

커피잔에 닿자마자 조카는 부르르 놀라

얼른 손을 떼면서 제 엄마 품에 안겼다.


"뜨겁지? 앗 뜨거워!!라서 다칠까 봐 엄마가 못 만지게 한 거야. 이제 우리 거실 가서 놀까?"


그리고 동생 손을 잡고

거실로 콩콩 데려가며

눈물을 닦아주던 비비안나의 모습과

그 의젓한 행동에 동서도 나도

머~엉~하게 바라볼 뿐

아무도 말을 못 했었다.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 걸까?

나는 저렇게 안 했던 거 같은데.


궁금한 마음에 잠들기 전에 물었더니

"수정이 이모가 가르쳐 줬어. 내가 커피잔 만지려고 했을 때 이모가 그렇게 했거든"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고

생각할수록 더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사람이

부모라는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제대로 아는 것이 없어서

더 긴장된 엄마였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고 모자란다고 핑계처럼

아이들에게 하소연했었는데,

그래서 스스로 알아가는 깨달음이

더 제대로 키워 줄거라 맡겨 버렸는데

따라와 준 딸들이 고맙기만 하다.


40여 일이 지나도록

치료가 만만치 않아서

짜증이 극에 달해

말을 잠그고 사는 요즘.


생각도 잠겼는지

소음이 사라진 영상처럼

멍한 날이 잦은데

딸과의 대화가

담쟁이 발자국 같은

앙징맞은 무늬를 그린다.


"다음은 이 길로 갈래요"

2016.07.10.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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